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를 번갈아보면서.

by Aner병문

훗날 다시 정리하여 이야기할때가 있겠지만, 집안 어른들이 연달아 위중하게 편찮으신 날들이 닥치고 나서야, 나는 그동안 주로 삶에 치중하여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아내를 만났고, 딸을 낳았고, 그리고 아내와 딸을 건사하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국제시장, 에서 황정민 배우가 열연한, 우리 아버지 세대의 '아부지, 내 이만하모 열심히 살았지예, 그치예.' 를 이해하며 훌쩍이기도 했고, 좀처럼 드라마를 챙겨서 보지 않는 나조차도 제법 볼만하던 느낀 넷플릭스 시리즈의 그 유명한 수리남 첫 도입부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하정우 배우가 열연한 인구의 모습도 그러했듯이, 나 역시 평범하고 생각 얕은 남편이자 아비였을 터이다. 그러므로 연달아 두 어른이 편찮으신 상황에서, 내 딸은 또다시 기약없이 서울의 어머니 아버지께 맡겨졌고, 아내와 처남 형님, 그리고 내가 번갈아가며 어른들을 모셔야 했다. 물론 마땅히 해야할 일이었다. 아내와 처남 형님은, 부산에서 주로 머물렀고, 그중 한 어른께서 서울에 진단을 오랫동안 받게 되시어 기꺼이 우리 집에 묵게 되시었는데, 나는 참으로 그 때 병이 사람을 갉아먹는 과정이 이런 것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 달랐고, 매시매분매초가 달랐다. 나는 어른의 몸을 안은 채, 늘 화장실을 다녀오고, 옷을 갈아입혀드렸는데, 어른의 몸 반쪽은, 이미 뇌가 반쯤 짓눌린 영향을 그대로 받아 전혀 움직이실 수 없었다. 나는 어른께서 건강하셨을때 얼마나 우아하고 품격있는 분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해지시고 고집스러워지시어 오로지 자존심만 남으신 어른의 모습이 슬펐다. 등에 땅에 붙는 어른의 몸은 무른 살점보차 얼마 없었지만, 어찌나 무거우신지, 이 것이 그동안 살아오신 삶의 무게인가, 싶을 정도였다. 젊었을 때 나는 권투를 하면서 52kg의 몸으로 턱걸이 30개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고, 그보다 20kg쯤 늘은 지금도 태권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100kg의 역기 정도는 어렵지 않게 누워 들 수 있었는데, 60kg도 채 안되는 어른의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2시간마다 한번씩 어른을 화장실로 모셔다드렸고, 어른의 속옷 수발을 들었고, 어른의 말라가는 몸을 주물러드렸다. 택시를 타고 멀리 신촌 병원까지 함께 모셔다드렸고, 거기에서 그 동안 처자식을 건사하느라 미처 살피고 생각치 못한 죽음들을 보았다. 내가 그동안 즐겁게 살며 잊고, 무시했던 수많은 죽음과 병마와 아픔이 곳곳에 있었다. 어른의 동년배들은 말할 것도 없었으나, 내 나이의 젊고 팔팔한 장정들도 수두룩했고, 딸 나이의 어린 소녀들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간 곳이 간 곳이라, 모두 파르라니 머리를 깎고, 나무껍질처럼 마른 몸으로 멍하니 침대에 실려 어딘가로 오고 갔다. 웃으며 기운찬 이들은, 이 병원에서 출근하거나 퇴근하는 이들, 혹은 이미 편찮으신 분들을 보러 오거나 모시러 오는 이들인가 보았다. 나 역시 어른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북돋워드리려고 유독 사투리로 새살을 떨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훈련 역시, 이러한 기억들을 조금이라도 떨치고 멀리하기 위함이다. 나는 부산에서 올라온 아내와 교대하였다. 아내는 어른을 모시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도 입원 허가가 나서 어른의 나날은 약간이라도 더 편해질 것이다. 나는 때늦은 모기에 뜯겨가며, 달밤의 훈련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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