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by Aner병문

너에게는 술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냉장고에 있는 고량주 반 병을 기어이 마셨고, 그 날 하루를 제외하고 나는 닷새 동안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흘째 잠 못 이루고, 처방받은 약을 한 알 먹었는데 전혀 효과가 없어 새벽 두시쯤에 겁도 없이 한 알을 더 먹었는데, 그러자 잠이 마치 내 목을 조르듯 덮쳐와서 그대로 잠들었다가 약기운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 하루종일 헤롱헤롱 돌아버린 혀로 일을 했다. 오죽하면 우리 부서에 온지 얼마 안되는 신입 총각이 '형님, 너무 피곤해보입니다.' 하며 커다란 초콜릿을 하나 줄 정도였다. 나는 염치불구하고 그걸 바로 와구와구 먹어치웠다. 얼마 전 일을 처리해줘서 고맙다며 다른 부서의 여성 직원이 주신 한 통의 커피도 아직 뜯지 않은 채 그대로 내 사물함에 있다. 아내도 나도 연달아 밀어닥친 일에 서로 해야할 일이 많았고, 어머니 아버지 또한 소은이를 돌봐주시랴, 남는 시간에, 우리 집에 생각보다 오래 계실 장모님을 살피시랴 정신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닷새째 되는 날에야 겨우 약기운이 빠져서 제대로 된 잠을 찾아서 잤다. 잠을 자지 않고도 객쩍어서 생각에서 벗어날 겸 훈련했지만, 거동이 어려우신 어르신께서 주무신 다음에야 비로소 옥상에서 혼자 훈련하였다. 몸이 더욱 나약해졌는지, 아니며 마음이 번잡스러워졌는지, 고당 틀의 다리 올리기가 잘 되지 않았다. 나는 그냥 하는만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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