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무게를 다루는 위주의 훈련!

by Aner병문

그러므로 한때 동경대 합격도 어렵지 않았다던, 모범생 소년 A - 나루시마 료는 스스로 부모를 죽이고 소년원 생활을 하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검열에 걸려 부모처럼 돌봐준 가정부 부부를 죽인 것으로 각색되었으나,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년에게 오로지 시험과 학력 위주의 출세만을 강요하는 부모의 애정은 감옥처럼 느껴졌을 법하다. 신문에서는 소년 A로 나온다지만, '소년원에서조차 부모를 죽인 자는 사람으로 치지 않는다' 며 나루시마 료의 수감 생활은 험난하기만 하고, 그는 결국 밤새워 골방에서 말 그대로 빈손, 즉 공수(空手)를 단련한다. 그에게 가라테를 알려주는 사범은, 가라테의 정신을 내세워 부패 정치인을 죽이려다 실패한 거물 정치인이자, 한때 가라테의 귀신으로 불렸던 노인 구로카와 겐지인데, 그는 칼 하나 없이 오로지 가라테로 야마토의 지배자들에게 대항했던 류큐의 역사에 빗대어, 나약하기만 한 모범생 소년 A를, 가라테로 무장한 반항적인, 그러나 주체적인 존재로 바꾸어놓는다. 비록 설정은 잔혹하다지만, 원작 서사를 맡은 작가가 그 스스로도 소년원에서 암울한 시기를 가라테로 이겨냈다 회고할만큼, 골방에서 오로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라테를 익히는 모습은, 처절하리만치 세밀하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 피곤한 요즘이었다. 회사에서는 특별히 얼마 남지 않은 연차를 다 소진하여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고, 덕분에 나는 당장 다음주에 있는, 부사범 교육 자격 수련, 11월의 2박 3일간의 거창 대회, 12월의 3단 승단까지 모두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이 편찮으신데, 정작 코로나에 걸려 새벽에 보호자가 되지 못하고 쫓기워 밤길에 홀로 돌아와 아랫층에서 지내는 아내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짠했다. 아내는 가능한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내와 몸은 단절되었으나, 마음이 연결되어 내 머리도 지끈거렸다. 나 역시 언제 코로나에 걸려도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 부부 마음을 아는지 연이어 차가운 비가 내렸고, 나는 다시금 오십도짜리 고량주 한 병을 사왔지만, 감히 아내의 근심 앞에서 병뚜껑을 딸 순 없었다. 아내는 아랫층을, 나는 윗층을 모두 치웠고, 내 방에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겼지만, 태권도의 모든 움직임을 다 펼칠 수는 없어서, 나는 젊었을 적 수없이 보았던 만화 군계(軍鶏), 를 생각하며 영화 하나 틀어놓고 2시간 동안 땀을 흘려가며 훈련했다. 사람 마음을 모르는지, 밖에서는 정오부터 저녁에 이르는 지금까지 축제를 한다고 온갖 트로트와 판소리를 번갈아가며 틀어주고 있었다.



좁은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움직임은 분명히 제한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다. 나는 나란히 서 찌르기 와 앉는서 찌르기로 몸을 풀었고, 태권도의 위아래 기초 동작으로 몸을 풀었고, 이어서는 맞서기의 모든 동작을 반복하면서 섀도우 복싱을 하듯이 연습하였다. 이후 십킬로그램 짜리 페르시안 클럽과 십이킬로짜리 케틀벨과 L바 로 가능한 몸의 근력을 높이고자 무게를 다루는 일을 반복했고, 종아리 스쿼트와 주먹쥐고 팔굽혀펴기, 고당 틀의 시작인 좌우 다리 들어 반 바퀴 돌리기도 평소보다 더 많이 했다. 오랫동안 기술을 고되게 익힌 고수가 규칙 바깥의 싸움에서 늘상 무적을 자신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 상황의 변수가 있겠지만, 기술 위에 항상 그를 깨뜨릴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오로지 기술만으로 맞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술의 깊이 못지 않게 기초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힘이다. 그래서 나는 좁은 방 안에서 내 몸의 힘을 기르는 훈련을 다시금 많이 했다. 이 힘이 가능한 삶을 뚫고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긴 시간을 결코 나약하게 흘려나가지 않기를 결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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