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후드(Hood) -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잉여 재분배에 대한 열망.

by Aner병문

감독 오토 바서스트, 주연 테런 에저턴, 제이미 팍스, 이브 휴슨, 벤 멜든슨, 제이미 다넌, 후드, 미국/헝가리, 2018



집에서 훈련하게 된다면, 시간이 아까워 무엇이든 틀어놓기 마련인데, 아침에는 보통 EBS 외국어 관련 프로그램을 켜놓고, 오후 시간에는 영화라도 틀어놓는다. 서사가 촘촘하고 무거운 영화는 좀처럼 보기 어려우므로, 훈련하면서 쉽게 볼 수 있는 활극물을 주로 켜놓는 편인데, 서양판 왕의 남자(이걸로 사람 속여먹던 파일 업로더들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킹스맨으로 당시 인기를 모으던 테런 에저턴이 주연한 후드다. 내가 알던 후드라면 90년대를 주름잡던 케빈 코스트너, 그리고 거대한 전쟁-정치물에 더 가까웠던 2010년작의 러셀 크로우 에 이어 세 번째인 셈인데, 아닌게 아니라 배우가 훨씬 젊어서인지 영화는 세상말로 '댄디' 했다. 복색이나 전쟁의 고증은 현대물에 훨씬 가까웠고, 사실 시간 때우는 영화에 훨씬 가깝다. 그나마 유튜버로도 유명한 중세 유럽 궁술의 고수가 직접 모든 장면을 지도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위급한 상황에서 활을 연달아 쏘고, 활대로 상대의 목을 걸어 후려치고, 다양한 신체 부위에 활시위를 걸어 쏘는듯한, 마치 서양판 최종병기 활 내지는 중세판 존 윅 같았던 모습만큼은 무척 좋았다. 내가 사는 곳에도 가까이에 국궁장이 있어서, 아내와 나는 적어도 40대에는 국궁을 만져보고자 하고 있다. 아내는 가까이서 치고 받는 일만큼은 정말 싫지만, 멀리로 활을 쏘아 보내는 일에는 관심을 가졌다.



영화 자체의 서사에는 그다지 할 말이 없어 다른 이야기라도 하나 보태고자 한다. 서양에 로빈 후드가 있다면, 동양에는 마땅히 홍길동이나 일지매가 있다. 영화의 대사에도 노골적으로 나오듯, 부의 재분배, 정확히는 잉여의 재분배에 대한 욕망은 많은 이들에게 시대를 대물림하여 이어져왔다. 일지매는 그 이름처럼 한 떨기 매화가 되어 형장의 이슬이 되었고, 홍길동 역시 그 유명한 허균의 소설에 등장하기 이전, 이미 연산군 때 실존했던 검계劍契에 지나지 않았다. 홍길동도 로빈 후드도 뛰어난 궁술과 무술 실력으로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서민들에게 나눠주었고, 나중에는 각자의 일당- 활빈당과 유쾌한 사내들을 거느렸으며, 끝내 율도국과 셔우드 숲으로 상징되는 각자의 낙원까지 건설하기에 이른다. 로빈 후드 소설에서 로빈 후드는 조카에게 속아 수도원에서 비참하게 죽었고, 홍길동은 율도국에서 어찌 최후를 맞았는지 알 길이 없으나 조선을 바꾸진.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한데, 영화에서의 윌이 영국의 의회 정치에 어떻게든 편입하려는 출세지향적인 인물- 조선으로 치면 사대부의 한계를 지닌 인물로 나온다면, 홍길동과 로빈 후드는 모두 그 자체의 판을 뒤집어 엎는 무력 항쟁의 지도자들이다. 그러나 무력만으로는 결국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할 수 없기에, 그들은 모두 완전히 새로운 낙원을 꾸미고자 한다. 연암 선생의 허생전에서, 허생은 조선의 남녀를 데리고 작은 섬에 정착코자 하나 끝내 낙원을 만들지 못했고, 이후 이완 대장에게 조선의 모든 체제를 개혁할 것을 건의했으나 그조차도 막혀버린다. 맑스는 역사란 결국 생산 수단을 독점하여 잉여를 생산한 자들이 독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 계급을 역전시킬 방법에 대해 성토했으나 아직까지도 우리는 이 강력한 '하이어라키(Hierarchy)' 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유튜브에 나온 장승수 변호사께서는, 예전보다 훨씬 더 쉽게 많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요즘 시대야말로 개천에 용이 나기 더 쉬운 세상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아직 자신할 수 없다. 과연 많은 지식의 소유자가 계급의 역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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