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정해진 과정을 그대로 따라할 수 있다는 장점.

by Aner병문

아내는 제일 바빠야할 때에 혼자 코로나에 걸려 무척 민망하고 면구스러운 모양이었다. 아내는 집에 혼자 틀어박혔고, 자신의 삶에 좀처럼 없을, 여러 전화들을 연달아 받으면서 마치 전장의 통신병처럼 이 곳의 이야기를 저 곳에 전달해주고, 또 저 곳의 기척을 이 곳에 전달해주느라 정신없었다. 내가 없는 동안 아내는 혼자 적적하고 쓸쓸했으며, 그래서 청소고 빨래도 다 손을 놓고,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유튜브를 보거나 잠을 자면서 그냥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다고 했다. 나는 소은이를 돌봐야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예전의 거주지로 잠시 돌아가야 했는데, 근 4년만에 다시 오랫동안 묻어두고, 잊고 지냈던 고슴도치 소굴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고슴도치도 그냥 고슴도치가 아니라, 빨갛게 달아오른 무쇠가시를 촘촘히 박아둔 고슴도치들 새로 들어가는 기분이라, 나는 오로지 애비로서 딸이 혹시나 그러한 분위기에 압박을 받을까 노심초사하며 가능한 밖에 있었다. 밤새 투정하는 소은이는 늘 그렇다 치더라도, 작게는 베개부터 이불까지 전부 내 것이 아니어서 늘 잠을 제대로 못 이뤘고, 집 자체가 이른바 나의 '스윗 마이 홈' 도 아니었기에 나는 늘 퀭한 얼굴로 딸을 어린이집으로 보낸 다음, 늦은 아침에야 여러 심부름을 마치고 비로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내가 늘상 아내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했던만큼, 아내도 밤새 그러했던, 힘들고 어려운만큼 애틋한 나날들이었다. 나는 때떄로 소은이가 지쳐서 예상치 못하게 잠들 때를 대비하여 그 유명한 C.S 루이스의 두꺼운 완역판 '나니아 연대기' 단권을 들고 갔는데, 정말로 보살핌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우리 모두가 겪는 신산한 고통 역시 나니아의 연대기 안에 들어갈만한 신의 섭리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여하튼 아내가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고, 남편이 없는 집이 너무나 적적하고 외로우며, 자신 혼자 시간을 보내어 우울한 생각과 거리를 두는데 한계가 있다고 하므로, 나는 마치 제 형제가 모두 죽어 긴급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라이언 일병처럼 겨우 돌아왔다. 아내나 나나 서로 지쳐서 서로 퀭하였고, 서로 외로웠다. 아내의 몸에는 지루한 나른함이 있었고, 내 몸에는 미처 다 떨구지 못한 압박과 피로가 가득했다. 나는 바로 훈련을 좀 하고 싶었지만, 아내가 나와 좀 더 있기를 원하여 우리는 야밤에 조금 오래 걸었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발자국 새로 빵가루 대신 우울한 감정을 떨구었다. 그리고 아내가 오늘 아침 일찍 보건소로 갔을때 나는 뒤따라 일어나 바로 드디어 훈련을 했다.


어제 아내와 함께 있을때 일본에 머무는 잘생긴 최 상이 연락했다. 그는 나의 어줍잖은 일기를 본다고 말하는 몇 안되는 도장 사형제들 중 하나다. 나는 가능한 도장의 사생활을 공개하고 싶지 않고, 그래서 마치 김종광 선생의 자전소설 '첫 경험' 처럼 어줍잖은 별호로 늘 여러 사람을 표현하곤 했다. 그는 나더러 너무 바쁘게 사는 것 아니냐며, 거창 대회나 다른 대회를 나올 수 있느냐 물었다. 당연히 나는 어려웠고, 그는 아쉬워하며 내년 월드컵을 기약하자고 했다. 일본의 ITF수준은 매우 높으며, 일본어에 능통한 최 상은 우리 도장에서 초단 띠를 받은 뒤 이후 소개받은 일본 도장에서 아주 열심히 훈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때때로 내 일기를 보며 나의 훈련을 의식한다고 할때 나는 부끄러웠다. 공권유술의 강준 총재께서는, 우리는 돈 받고 훈련량을 채우고 승패를 성사시켜야할 프로가 아니라, 본업과 여러 관계를 유지한 채 도장을 다녀야 하는 아마추어이므로 일할때 일하고, 설거지할때 설거지하고, 애볼때 보고, 그리고 남는 시간에 도장을 꾸준히 다니는게 제일 좋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러면 지도자와 지도 과정이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끊임없이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이 그 분의 지론이시었다.



어떤 무공은 틀, 품새, 카타, 투로, 본(本), 주루스(jurus) 등의 정해진 움직임을 따라하는 연습과정이 있고, 또 어떤 무공은 그러한 연습 과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나 역시 젊었을때는 허공에 특정한 움직임을 계속 반복하여 연습하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어 주로 헤비백이나 사람을 치고 차고 꺾고 던지고 눕히는 기술에만 주력해왔다. 정해진 움직임을 따라 연습하는 과정의 장점을 알게 된건, 태권도의 틀을 본격적으로 연습하게 된 서른살 초반부터다. 그 이전에 중국무공의 투로나 카타 등을 배운다고 배웠어도 내 스스로 자주 꾸준히 연습하지 않았고, 그 기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 들지 않았기에 내 몸에 올바로 배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사람 몸의 움직임은 서로 닮은 점이 많고, 그래서 요즘에는 틀 연습을 하다가, 문득 예전에 익혔던 아, 충추 라거나, 당랑포선 이라거나, 이러저러한 움직임이 비슷하거나 다른 점이 많구나, 라고 혼자 느끼고 아득해지곤 한다. 그나마 강한 잡념에 몸이 눌려 힘들고 어려울때, 아무런 생각없이 정해진 과정을 따라서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몸이 눌리면, 상상력도 나오지 않고, 문장은 물론이거니와 허공치기 연습에 필요한 상황도 상상되지 않는다. 그조차도 역시 서사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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