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태권도를 배우는 것과 태권도함을 배우는 것.

by Aner병문

매해의 시작이나 끝마다 강신주 선생의 신구판 철학VS철학 을 늘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적지 않은 청춘의 세월, 고등교육의 말석에나마 자리하며 고전을 읽었답시고, 강신주 선생 특유의 '래디컬한' (우리 말에 영어 섞어쓰는 걸 썩 좋아하진 않으나, 정말 세상말로 이렇게 표현할 도리밖에 없다.) 해석만 좀 걷어내면, 이처럼 간명하게 동서양 철학의 통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멋진 책도 드물다. 저자 스스로도 본인의 가장 큰 대표작이라고 자부하신다 들었다. 몇 년을 시도했더니 제법 책장이 나달나달해지고, 밑줄들이 켜켜이 쌓여 마치 마지막 사법고시를 놓치지 않고자 애쓰는 어느 학원가 고시생의 법전마냥 그럴듯해졌다. 또다른 책으로는 그 유명한 이진경 선생의 '철학과 굴뚝청소부' 혹은 진중권 선생의 '미학 오디세이' 3권이 그러하다. 특히 철학과 굴뚝청소부, 는 일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천명관 선생의 고령화가족, 과 더불어 백수시절 시즌 1, 2를 유지해주던 중요한 책이었는데, 너가 한두 잔씩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끊임없이 읽고 이야기나누다, 그만 커피까지 쏟아서, 안 그래도 낡고 휘어진 책이 커핏물까지 들어 보기 흉해졌다. 너와 나는 각각 각자의 짝을 찾아 결혼하기 전, 중반까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마다 내 책을 보면서 너는 내가 공부하는 모든 책들이 전부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며 얼굴을 찡그렸었다. 안타깝게도 동양 철학을 오랫동안 전공한 나는, 정작 마련해둔 채인후 선생의 공맹순 철학 3부작이라든가, 이택후 선생(이 위대한 학자 또한 작년에 작고하셨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의 불세출의 저작 중국사상사론 3부작, 또한 타고난 재능으로 평생 공부를 하는 진짜 사내란 어떤 남자인지 몸소 보여주는 환산진남(丸山眞男) -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 등은 아직까지 그렇게 힘을 기울여 읽지 못했다. 하물며 그 유명한 조셉 니담의 SGC- 중국의 과학과 문명 은 아예 마련조차 하지 못했다. 고작해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그리고 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사 편력 3부작을 구해서 소은이가 태어날 무렵을 기다리는 밤을 새워 읽었을 뿐이다. 여하튼 갑자기 쓸데없는 독서 편력을 늘어놓았는데, 태권도의 기술을 아무리 반복한다 해도 내 몸에 새겨졌는지 죽는 그 날까지도 자신할 수 없듯이, 쉼없이 읽어온 시간과 세월만은 자부하나, 그 앎이 과연 공부자나 장자의 말씀처럼 내 몸에 깊이 새겨졌는지 나는 전혀 자신할 수 없다. 동양철학의 근간이 결국 앎을 통해 내 스스로를 바꾸는 실천의 영역이며, 태권도 또한 도복을 입고 기술을 익힌 자는 마땅히 그렇지 않은 자와 달라야 하므로, 나는 늘상 내 노력이 나를 변화시키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매번 같은 기술을 연습한다 해도 숙련도에 따라 그 의미를 좀 더 깊고 넓게 깨달아가듯이, 모름지기 좋은 책은 반복해서 읽을수록 마치 좋은 술과 같아 지루하긴커녕 오히려 더욱 새롭게 재미나게 읽힌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으나 카카오톡이 불통이라 전국이 들썩이던 어느 주말에, 마침내 아내가 나를 구출하여 모처럼 호젓이 반나절 서로 한가해진 우리 부부는, 각자의 일에 몰두했는데, 나는 이 때다 싶어 충분히 훈련을 하고, 씻은 다음 다시 철학VS철학을 꺼내들었다. 사실 언젠가 이 책들을 인쇄소에 가져가서, 전부 인물별로 나누어 떡제본으로 꿴 다음, 필요한 부분만 쏙쏙 들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수가 없는데다, 웬만한 목침만한 책 두 권을 모두 짊어지고 다닐수도 없으니(신판이라고 해서 구판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는 건 또 아니라서 결국 두 권을 모두 읽어야 한다.) 결국 집에서 여유가 있을때 몰아서 읽을 수밖에 없다. 소설책처럼 배 깔고 편히 볼 수 있는 책도 아니고보니, 늘상 색색 볼펜을 준비하여 내용을 읽곤 하는데, 그 때 내게 모처럼 치받아 달려오는 문장이 또 그럴듯하였다. 강신주 선생은, 늘 본인의 단호한 말씀처럼, 우리는 단순하게 정규 과정에 편입되어 어느 철학자의 글만 읽는 '철학' 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철학의 소재를 가지고 내 삶을 증명하고 설명하는, '철학함' 을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오래토록 그 문장에 밑줄을 긋고 곱씹고 있었더랬다.



강신주 선생은 무릇 인문학의 본분이란, 먼저 나를 내 스스로에게 합당하게 소개하고 설명하며, 동시에 이렇게 증명된 나를 타인과 올바로 관계맺게 하는 역할이라고 보았다. 서양 철학은 여러 수학, 과학으로부터 움터서 개인이 관계맺는 바깥 세상을 올바로 증명하는데 애썼고, 동양 철학은 공부자의 정치술이 그랬듯이, 말 그대로 사회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하고 그 일원이 어떻게 원만히 삶을 유지하는지에 대해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넓게 보자면 강신주 선생의 철학/철학함, 그리고 인문학 본분의 내 스스로를 증빙하고, 나아가 타인과 관계맺기와 같은 내용은, 태권도의 훈련 방식과도 매우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삼십여년전 지금보다 훨씬 더 서슬퍼렇고 자신만만했을 젊은 도올 선생은, 그 유명한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 에서 이미 정해진 움직임을 반복하여 숙련하는 틀/품새 의 방식과 실제로 타인과 손발을 섞으며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맞서기/겨루기의 방식이 몹시 달라 마치 성경의 율법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로 상충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도 토로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 일이 한번에 몰아닥쳐 피곤하고 난삽한 이 해의 그늘에,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강신주 선생의 문장을 오랫토록 곱씹고 있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옥상도장도 또 내년 봄을 기약해야할까 싶을 때가 왔다. 그래도 어제는 훈훈하여, 모기에 뜯겨가며 다시 틀 연습을 했다. 저 네팔이나 인도의 ITF 수련자들이 맨발에 도복만 입고 흙바닥이나 산비탈에서 태권도를 연습하는 동영상을 볼때마다, 틀의 연무선을 올곧게 따라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은 정말 소중하구나 깨닫는다. 바닥이 적당히 편편하고, 재질이 좋으며, 무엇보다 분위기를 공유하는 사형제 사자매들이 가득한 도장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에는 충분한 여유가 있을때 맑고 훈훈한 날씨의 옥상도장도 한 몫을 한다. 그러므로 나는 어젯밤에도 조금이라도 멈추면 달려드는 모기를 피해가며 열심히 훈련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ITF의 싸인 웨이브를 할때, 몸이 높아지는 동작에서는 중심이 같이 높아지고, 몸이 낮아지는 동작에서는 중심이 같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모든 틀의 동작은 하나의 힘이 끊임없이 흐르고 유지되는 것인데, 높이 치거나 찰 때 내 힘은 함께 위로 솟았고, 낮게 치거나 찰 때 중심은 낮게 깔려서 무거웠다. 그래서 높이 차는 동작이 없는 포은 틀이나 충장 틀을 할때, 내 허벅지는 더욱 정확하게 앉는서기를 유지하기 위해 크게 부풀어야 했고, 반면 충무 틀이나 계백 틀처럼 높이 차거나 뛰어 차야할 때, 나의 발끝은 정확히 서면서도 중심을 유지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 때 나는, 말 그대로 달밤의 체조가 아닌 태권도를 하면서, 내 스스로 단순히 태권도의 기술을 반복하는 것을 넘어서서, 내 스스로 느끼고 체득한 태권도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명확하게 하게 되었다.



살아가며 어찌 태권도뿐만이 그럴까. 일 자체가 타인에게 낯선 일을 쉼없이 알려주는 일이다보니, 나와 상대 사이를 건너가는 말에도 늘 신경써야 하고, 처자식을 돌보는 아주 사소한 일도 사실은 사소하지 않아서 쌓이고 쌓이다보면 언젠가 내게 다시 돌아온다. 삶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을 신경쓰기 어려워, 삶의 중요한 가르침과 비밀을 찾는 어떤 이들은 과감히 속세의 인연을 끊고 출가하지만, 또 어떤 이는 이처럼 속세에서 치여가며 사는 삶이야말로 가장 큰 고행이라며 기꺼이 이 세상에 남는다. 나는 김훈 선생의 소설을 영화화한 남한산성에서, 수어사 이시백을 마치 무인처럼 연기한 박희순 배우의 대사를 뇌까린다. '나는 그저 적이 오면 칼을 들어 베는 무인일 뿐이오.' 한때 그와 함께 글을 읽었으며, 남한산성에서 힘겹게 버티는 조선 정부에서 유일하다시피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은 씁쓸하게 웃는다. '나도 이럴 줄 알았으면 수어사처럼 무인이 될걸 그랬나보오.' 그러므로 오컴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일수록 가장 단려하고 간명하다는 면도날 같은 명언을 내놓는다. 나는 지금껏 이 태권도 훈련일지에 얼마나 많은 잡설을 썼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가 할 줄 아는 몇 안되는 기술들이 그 무엇보다도 날카롭고, 묵직하고, 정확하여 다른 말이 덧붙을 필요가 없으면 좋겠다. 실은, 내 삶이 전부 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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