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 그저 열심히 하려고 발버둥칠뿐.
아내가 없는 동안, 아이 때문에 세 번 눈물을 보였다. 본가 근처의 좁은 놀이터에 아이를 부려놓았을때, 제 어미가 보고 싶겠지 싶어 아내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더니, 어린 딸은 '엄마? 엄마? 우리 엄마?' 하면서 입을 오리처럼 빼쪽이더니, 제 어미와의 영상통화가 끝난 뒤에도 좁은 놀이터를 계속 돌면서 제 어미를 찾아다녔다. 아마도 제 어미가 아주 가까이에서 저를 보고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어린이집을 보내는 문제도 그렇고, 아무래도 우리 집에서 손녀를 돌보는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우리 집을 찾으셨을 때에도, 아이는 우당탕 계단을 오르더니 제일 먼저 어미와 함께 잠들던 제 잠자리 쪽으로 가서 '엄마? 엄마?' 두어번 부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재삼 확인하고는 무척 서운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인가, TV를 보여달라고 떼를 쓰다 제 할미에게 꽤 맵게 혼이 난 뒤에는 저도 무척 서러웠던지, 옷방에 걸려 있는 제 어미의 길다란 치마옷을 내려다가 온 몸에 둘둘 감고는, 코를 박고 옷결에 배었을 향을 맡으면서, 엄마, 엄마, 또 부르면서 바닥에 혼자 뒹굴었다. 아직 어설프지만 역시 젊은 아비로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정말 눈물 없이는 못 볼 광경이었다. 아내는 오늘 밤에서야 그 얘길 듣고, 아이고, 남자가 그래 눈물이 많아가 어찌니껴? 하며 웃었지만, 내 입장에선 꽤나 슬픈 일이었다.
좌우간 아내가 오니 당연한 말이지만 좋았다. 사실 집안일 때문에 아내가 장시간 자리를 비웠지만, 그동안 어지간히 금슬 좋은 부부인양 가시버시 서로 붙어다니더니, 어째 아이 엄마는 간 곳 없이 할미할비만 자꾸 보이며 아이를 돌보느냐, 집에 무슨 일 있는 것 아니냐, 물어보고픈 온갖 눈빛에 부담스러운 것은 둘째치고, 아내가 없음으로 하여 살풍경한 집안 분위기를 참말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실 몸이 고생스러운 일보다도, 마음이 고생스러움이 더했다. 회사가 한창 바쁠때라 나는 늘상 깎이듯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치 유배지처럼 일찍 내 방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으나, 아랫층은 여전히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를 돌보느라 위압적이시고,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어 나는 늘 눌리듯 잠만 잤다. 책도 읽기 어려웠고, 훈련의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새삼 아내가 집안의 기둥으로서 분위기를 늘 침착하게 잡아주었구나 다시 한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모처럼 강하게 훈련한 지난 주일에 이어 이제서야 겨우 나흘만에 훈련하였다. 역시 바깥 일의 무게를 떨어버리느라, 청소하고 설거지하면서 한 이십분쯤 잠시 머리를 비운 뒤에야 비로소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며 훈련하였다. 파리를 잡듯이 가볍게 가볍게 손을 날리다가, 마침내 무게를 실어 주먹 연습을 하였고, 몸이 풀려 땀이 솟은 뒤에야 보 맞서기 연습과 발차기까지 섞어 연습을 더하고, 클럽벨과 케틀벨을 지칠때까지 들었다. 무게를 다루는 연습은, 저항력이 있어 온 몸에 오래 남는 만족감을 준다. 처자식을 보면서 희멀건한 소주 반 병을 마셨고, 다시금 묵혀둔 책을 읽었다. 처자식이 있으면 시간이 부족하지만, 처자식이 없으면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나는 오늘 훈련을 하며 확실히 깨달았는데, 나는 내일을 걱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일의 걱정이 오늘을 좀먹을때, 나는 책을 읽을 수 없었고, 훈련을 할 수 없었으며, 술을 마셔도 즐겁지 않아 오로지 눌리듯 잠만 자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