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 심신 단련 : 몸과 마음이 아플때 하는 일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머니 말씀처럼 '몇 푼 받도 못하여 부끄러운 가장' 으로서 좌우간 직장에 본업을 두고 매여 살아야 하는 이임은 틀림이 없다. 하여 올해도 직장인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사실 요 며칠 몸고생 마음 고생이 제법 있는데다 훈련을 제대로 못한탓인지 체중 자체는 4킬로 그램 정도 줄었는데, 숫자만 쓱 넘겨다보시던 병원장 의사 선생님께서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으흠, 살을 좀 빼셔야겠어요, 하시기에 나 역시 아, 예, 그냥 그러고 말았는데, 때마침 채혈 끝에 지혈을 한다고 팔뚝을 안으로 접어둔 손으로 진단서류를 집다가 양주먹의 굳은살 옹이가 보인 모양이다. 갑자기 훨씬 더 친근한 말투로, 우우우운동하시나봐? 운동도 아닌, 우우우운동이 퍽이나 따사롭게 들려 또 아, 예 그러니, 갑자기 가타부타 말도 없이 손을 뻗어 내 양 어깨와 팔뚝을 만져보시곤, 아아, 근력이 있으시구나, 그래 무슨 우우운동을 하시나? (이젠 나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태, 태권도요. 아아, 태권도오오오~ 또 말을 길게 늘이시며 이번에는 숫제 허벅지 양옆을 또 꾹꾹 눌러보신다. 그러더니 다시 대수로울 것 없다는 말투로 돌아오시어 그래요, 그럼, 술하고 기름기만 좀 줄이시면 되겠네, 나머진 별 문제 없어요, 담배도 전혀 안 태우시고, 나가보셔요. 그게 끝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연락이 닿은 곽선생은, 180cm에 달하는 키에 기어이 작정하고 몸무게를 70kg초반으로 맞추더니, 이제는 숫제 빨리 걷다 근육 파열이 올 정도로 무리하여 권투 훈련량을 맞추는데, 정작 나는 본업은 본업이거니와 대회 준비, 승단심사준비 등으로 제일 바빠야할 이 시기에 오히려 집안일로 전혀 도장을 못 나간지가 근 한 달이 되어가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거창 대회에 모처럼 가까운 가라테 한 사범님의 울산도장이 함께 참여하신다며 격렬하게 연습하는 모습도 그렇고, 우리 도장을 비롯한 서산 도장, 부산 클럽 등도 한창 열을 올리며 즐겁게 훈련하는데, 나 혼자 집에서나마 정기적인 훈련은커녕, 지금 한창 정점인 회사일은 물론이요, 퇴근하고 와도 늘상 집안일에다가 여러 어른들 눈치보기 바쁘니, 도통 짬을 내어 훈련할 시간이 없었다. 하루종일 신경이 눌려 있는 탓인지, 어머니께서도 니는 어찌 운동한다는 녀석이 그렇게 어깨는 꾸부정허니 수그리고 다녀쌌냐, 핀잔을 주시었지만, 행여나 모두가 예민한 판국에 누구 심기라도 건드릴까봐 나는 오랜만에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 몰래 돌아오던 총각 시절마냥 조용조용 눈치보며 살았고, 덕분에 언제 어데서든 눈만 감으면 숨통 졸리듯 잠은 잘 잤다.
아내가 바깥 일을 대략 정리하고 돌아오고 나서도, 여전히 아이는 감기 잔병치레가 심했고, 거기다 처가 어른들 건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내가 외출해야 했으므로, 아이 또한 부득이하게 다시금 어머니 아버지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삶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더욱 늘어나 나는 좀처럼 걱정과 잔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이 마흔이 가까워서야 마치 공부를 하기 위한 독서실이나 유명한 문필가들의 집필실처럼, 비로소 격리된 환경으로서의 도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속세의 자잘한 일들로 뒤범벅된 시공간 속에서는 좀처럼 온전히 내 태권도를 위한 여유를 절대로 낼 수 없었으므로, 나는 술도 꽤 오랫동안 마시지 아니한채 기도했고, 오늘 새벽에서야 겨우 비로소 맞춤한 시간을 찾아내어 훈련할 수 있었다. 좁아터진 내 다락방을 가능한 치워놓고, 아이와 아내가 깰세라 소리도 켜지 않은 TV 불빛에 의지해서, 제대로 뛰지도, 손발을 펼치지도 못하는 골방에서, 발을 바닥에 붙인 채로 기본 동작 반복으로 오랫만에 몸을 푼 뒤, 보 맞서기 연습을 했고, 섀도우를 했고, 케틀벨과 클럽벨의 무게로 내 몸을 두드려 깨웠다. 하려고 들면 어떻게든 할 수는 있으나, 날이 추워 바깥에서 짧은 팔다리나마 시원시원하게 뻗으며 틀 연습을 할 수 없는 것은 정말 아쉬웠다. 그러므로 영화 블랙BLACK 에서 점점 시력과 기억을 잃어가는 스승이 '삶은 아이스크림과 같죠, 녹기 전에 먹어야 해요.' 라고 말했듯, 옥상도장에서 훈련할 수 있는 계절도 한계가 있고, 내 태권도를 연습할 시간도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그나마 잘 살리려면, 늘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구약 때부터 내일 일은 내가 알수 없다고, 걱정할 수가 없다고, 맡기라고 말했는가보다. 여하튼 이렇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