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 결혼한 이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삶의 기반.
그러므로 공부자께서는 그 유명한 말씀을 남기시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먼저 몸을 돌보고, 이어 가정을 돌보고, 확장하여 나라를 다스리면, 천하도 능히 평해진다는, 전형적인 유학식 사고방식이다. 즉, 가장 작은 개인의 단위인 몸부터 천하에 이르기까지, 이를 살피는 방식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며, 스스로와 가정을 잘 건사하는 이는 능히 나라와 천하도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여긴다. 반면 그 유명한 에밀 뒤르껨의 '자살론' 같은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구조주의는, 아주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오히려 사회의 구조가 역으로 가정이나 개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자살은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하는 행위이므로 아주 개인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 근간은 사회 구조에 깊이 뿌리박혀 있고, 가정이나 학교에서 개인을 사회화시키는 방식 역시, 결론적으로는 사회에서 '쓸모있는' 구성원들을 길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고정되어 있다. 일례로, 어떤 이가 스스로의 신체를 단련하고 감량하여 효험을 본 뒤, 그 건강함을 전파하고자 가정의 구성원에게도 운동을 권하고, 운동을 통한 지역명사가 되어 구의원에도 출마하고(내 고향마을 선거구에도 꽤 오랫동안 지역사회에서 검도관을 운영한 이가 있는데, 지금의 야당 체육위원으로서 구의원 선거에 출마하였다.) 관직에 나가서도 끊임없는 운동 장려 정책을 편다면, 이는 유가의 전통적인 입신양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한 시대의 논란이 되었던 영국의 '설탕세(Sugar tax)' -속칭 비만세처럼 노동 효율이 떨어지는 사회 구성원들을 세금으로 규제하는 사회가 된다면, 그들은 취업이나 사회화를 위해 스스로 운동과 감량을 하게 될터이니, 이는 반대로 사회가 가정과 구성원까지 속속들이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말이 길어진만큼 멀어졌는데, 사실 요즘처럼 가정의 소중함을 더 절감하는 때가 없다. 아내는 겨우 바깥 일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그래도 가정이 있어서 겨우 버티는 듯하고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고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했다. 나는 말할 것도 없다. 나중에 차근차근 풀어 말할 때가 있을 터이지만, 처가 어른들이 연달아 편찮으시고 모두 적잖이 위중하시어 병원 신세를 오래 지셔야했기에 우리 가정뿐 아니라 본가의 모든 역량까지 처가를 돕느라 그야말로 총력적인 상황이었었다. 아내는 부산으로 포항으로 서울로 종횡무진이었고, 나와 여동생과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번갈아가면서 아이를 돌보고, 생업을 지키느라 바빴다. 아내가 돌아와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겨우 한숨을 돌리며 쉴 수 있으셨지만, 다시는 아이를 봐주시지 않겠다며 혀를 차셨다. 사실 요즘 한창 말이 늘고 제 의식이 생긴만큼, 떼와 고집도 갑절로 늘어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말 힘드셨을 터이다. 그나마 아비랍시고 내가 언성을 높여 꾸짖은 뒤 엉덩이를 두어번 팡팡 치거나, 혹은 어린이집에서 아이 다루는데는 이골이 난 제 고모가 꾀어 달래면 그나마 말을 잘 듣는 편인데, 다시금 집에 돌아오고 나서는, 아주 콧대가 높아져서 제 어미고 아비고 뭐든지 제 하고싶은대로 덤벼드는 통에 귀여워 웃다가도, 지치는 날에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결혼할때 아내와 약속하였다.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기쁘거나 슬프거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내와 함께 있기로 본가 목사님과 처가 목사님- 두 목사님께서 주례를 봐주신 앞에서 맹세하였다. 우리 도장의 유단자회 깃발이 나부끼던 앞에서도 맹세하였다. 내 비록 맹자께서 말씀하신 호연지기를 지니고 심성체를 일치시키는 대장부는 못 되어도, 남자가 남의 집 귀한 따님 모셔다가 큰 호강은 못 시켜줄망정, 절대로 배신을 하거나 속을 썩여서는 안된다고 배웠다. 그러므로 한 무제 때 재상 송홍은, 황제의 누이 호양공주를 감히 거절하며 그 유명한 조강지처, 라는 말을 남겼고, 조선 장용위에서 용맹하게 싸웠던 천민 이양생은, 천민 출신 본부인을 절대 축첩하지 않고 평생 함께 살았다. 낙성대에서 떨어진 별의 화신, 강감찬 장군은, 쓰고 짠 국도 한 번에 밥을 말아 먹어치웠는데, 부친이 '야 이 놈아, 국을 먼저 맛을 보고 밥을 말아야지, 무턱대고 밥을 말면 되겠느냐.' 고 면박을 놓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남자가 한번 밥을 말았으면 그만이지, 맛을 보아 무엇하겠습니까?' 라고 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런 위인들의 발끝에나 따라갈까 싶으나 항상 흠모하며 닮게라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