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 궁하면 통하는 법!
여러 번 했던 이야기이지만 젊었을때는 카타나 품새, 투로, 틀 연무 등이 특별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다. 끽해야 자기만족이겠지 싶었다. 젊은 날의 최배달 총재께서도 고류 가라테의 슨도메 규칙과 카타 연무를 보면서 실전적인 연습이 없다면 춤에 불과하다고 극단적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가 세운 극진 유파에서도 여전히 카타 연무는 계속되고 있다. 나 역시 서른 들어서 틀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편이라 틀 연무의 효용성은 많이 깨달았지만, 궁금증은 계속되었다. 요컨대 한때 극진의 최강자라 불렸던 글라우베 페이토자나 프란시스코 필리오도 그렇거니와 '푸른 눈의 사무라이' 정도회관 출신의 앤디 훅도 그렇고, 꼭 가라테 유파가 아니더라도 태권도, 중국 무술 등, 글러브를 쓰지 않는 무공들이 링과 글러브가 있는 무대에만 서면 모두가 비슷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물론 규칙이 공방을 낳고, 그 공방 속에서 주고 받는 인간의 움직임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가라테나 태권도, 남북계열의 중국무술처럼 글러브 없이 맨손발로 치고받는 무공들은 마치 춤을 추듯이 합을 맞추고 각도와 속도를 맞추어 싸우게 되는 것일까. 고류 태권도의 형태 중 하나인 토조산 연무를 보면 지금의 현대적 격투 스포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나는 한동안 그에 대해 고민하다 아무래도 몸을 덜 쓰게 되었던 최근에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특히 가라테의 역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라테는 널리 알려졌듯이, 야마토 중앙정부의 사무라이들로부터 대항하기 위한 오키나와 류큐 왕국민들의 맨손 무공이었다. 중국 남쪽 연안의 권법에서부터 비롯되었기에 당나라의 권법-당수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지금도 오키나와 테 라는 이름으로 가장 그 형태에 근접한, 오래된 고류 가라테를 전승하는 이들이 많다. 긴 칼을 찬 사무라이들과 겨루는 일인만큼, 그들은 상대가 칼을 뽑기 전에 선수를 치거나, 혹은 칼을 뽑지 못하도록 상대의 중심을 먼저 막거나 가둬놓은 다음 필살의 일격을 날리는 방식을 썼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지나온 일제치하가 그랬듯이, 류큐인들이 먼저 시비를 걸리는 일 또한 많았을 터이므로, 방어를 먼저 한 다음 비로소 반격을 하게 되었을텐데, 가라테류의 타격기에서 이른바 무공은 폭력이 아니라는 뜻으로, '가라테에 선수(先手 : 먼저 공격하는 일) 없다.' 는 말은 그로부터 전래되었다. 실제로 가라테는 모든 카타가 방어부터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내가 하는 한, 가라테를 개량하여 출발한 ITF 의 틀 역시 방어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상대의 공격을 막거나, 중심을 가둬놓고 일격을 상대에게 깊숙히 꽂아 공방을 일거에 끝장내는 틀/카타의 방식은, 글러브를 찬 채 공격과 방어를 모두 준비하는 스포츠 경기에 적용되기 어려웠을 터이다.
말이 길어진만큼 멀어졌는데, 그러므로 추워지는 초겨울 실내에서 부족한 운동량은, 기초 동작 연습과 섀도우와 무게 단련으로 어떻게든 메워볼 수 있겠으나, 이토록 중요한 틀 연무는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다락방을 아무리 치워도 충분한 공간은 나오지 않아서, 결국 나는 내 스스로 발 중심을 옮겨가면서 제자리에서 연습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은 도장에서도 많은 사형제 사자매들이 와서 공간이 부족할때, 내가 연무선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제자리에서 중심을 옮겨가며 연습하는 고육지책이었는데, 이 방법을 결국 마흔이 가까운 이 나이에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아이와 아내가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아 날밤을 새우고도 잠이 오지 않던 흰 아침에 TV를 틀어놓고 막상 혼자 해보니, 그럭저럭 할만하였다.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해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고당 틀은 미처 하지 못했지만, 다른 틀들은 부족하나마 충분히 연습히 했고, 또 클럽벨을 들고 앉았다 일어나기도 충분히 했다. 어떻게든 하려면 할수는 있는 법이다. 하지 않는 것보다는 충분히 나으려니와 사실 늘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방법으로만 연습하면, 배경 하나만 달라져도 틀이 낯설어 틀리는 경우도 종종 있으므로 항상 여러 환경에서 달리 연습하며, 관성적으로 틀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틀의 모든 동작을 낱개로 알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