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 개인들의 보호자, 혹은 무자비한 착취의 주체.
그러므로 로크와 홉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앞세워 남의 잉여를 빼앗으려는 못된 무리들로부터 스스로의 재산을 지켜야 하기에 국가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계약을 맺어 세금과 의무를 다하는 대신 보호를 받게 되었다는 사회계약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비슷한 시대의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부르짖으며, 오히려 국가는 잉여를 강제로 독점한 부르쥬아들의 이득을 보호하고, 약자들의 항의를 무력화시키는 방패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서구에서 베스트팔렌 조약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국경의 개념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때는 16세기 이후, 봉건제의 영향으로 작위와 가문을 물려받던 귀족들의 시대도 저물고, 인도를 수탈하기 위한 영국의 동인도회사에서 비로소 시험을 보아 사람들을 능력 위주로 쓰기 시작할 무렵, 이미 동양은 오래전부터 춘추전국의 시대에서부터 국가 공동체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골몰하였고, 제자백가들은 하나같이 입신양명을 꿈꾸며 각자가 생각하는 국가가 무엇인지, 과연 필요한지, 백성들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로부터 수없는 시간이 흘렀지만 인간은 여전하다. 헤겔이 말하는 세계정신은 과연 실현되었을까? 과연 정치하는 이들은, 공부자와 동중서의 주장대로, 하늘과 땅을 서로 이어 인간의 뜻을 올바로 전달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토마스 쿤은, 인간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대상이 변할뿐이며, 시대상이 변함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사상이나 기술 등이 바뀌는 것일뿐이라고 주장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한 시대의 상- 곧 그 당시의 인간 세상을 설명하는 틀이 곧,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 패러다임(paradigm)이다. 옛 글을 읽어보아도 단지 쓰는 도구들이나 세세한 이념들만 변했을뿐, 사실 인간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느낄때도 많다.
과연 우리에게 국가는 필요할까? 농사짓던 시절 내가 만난 외국인들이나 혹은 교포들은, 왜 한국 사람들이 하나같이 국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킨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은 공권력을 크게 믿지 않고 직접 총을 사서 지니거나 집에 걸어둔다. 반면 우리 나라는 세금을 내는만큼 공공 치안이 좋아야 한다고 믿기에 범죄가 일어나거나 일이 있을때마다 공권력을 탓한다. 수사를 비롯한 법의 적용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부패를 저질렀을때, 사기를 칠 때, 성범죄를 비롯한 여러 강력범죄를 저질렀을때, 사람들은 올바른 신상필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고, 사형제의 부활을 부르짖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나라는 이미 오래 전부터 법가의 시대에 들어섰다.
공부자께서는 이미 오래 전 말씀하셨다. 엄한 형벌로 사람을 다스리려 들면, 그가 무서워 오히려 피하려만 들지 진정한 감화는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내 생각도 그렇다. 벌을 받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죄인들에게 전부 벌을 줄수도 없으며, 하염없이 벌만 주고 있을수도 없다. 종신형이라는 영구적인 사회적 격리를 말하지만, 그에 대한 비용은 만만치 않을 것이며, 강력범죄를 저지른 모든 이들의 생명을 모두 박탈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바보 같은 말일지라도, 나는 인성을 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법은 늘 옳다. 옳게 적용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이의 인성이 올바르지 않다면, 제아무리 법이 좋아도 유명무실하다. 그래서 맹자는 증자로부터 공부자의 도를 배운 뒤, 그의 인성론을 체계화하여 심성을 올바로 다스리는 법을 만들었다. 심성이 올바로 선 자가 정치를 잘 할 수 있기에 그는 정치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고, 정전제와 같은 제도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많은 일이 있었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서 남편이 거짓을 둘러대고 처자식을 모두 죽인 일이 동네에 채 모두 회자되기도 전에 이태원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으며, 그 전에는 이미 수많은 강력범죄와 부패와 사기를 저지른 이들이 올바로 처벌되지 않는다며 매일매일 정부를 성토하는 기사만이 올라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를 핍박하고 비난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며, 이 일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시대에 순응하는 이가 있고, 시대에 항거하여 진화를 꾀하는 이가 있기에, 시대에 항거하는 자들의 정신이 세계정신에 스미어, 다시 시대에 순응하는 이들을 발전시키는 정반합의 매력적인 변증법을 성토해내었다. 나는 단지 오래 전 그렇게 느꼈지만, 자끄 랑씨에르의 에쎄이를 읽고 나서 한 번 더 느끼기기로, 더이상 정당정치나 국가 등으로 통용되는 대의민주주의는 진정으로 내 뜻을 반영하는 정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든 백성들이 올바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때 세상은 비로소 올바로 펼쳐질 터이다. 세상을 우리와 분리시켜 스스로 정화되도록 기다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