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무엇이든 몸으로 겪어야 안다!

by Aner병문

흔히들 서양무술이 실전적이고 과학적이며, 동양무술은 신비한 양생의 비법이나 내공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서양철학하면 뭔가 좀 더 치열하게 현실적인듯하고, 동양철학하면 잘해야 '어, 혹시 손금 관상 보세요?' 로 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동양철학에 잠시 몸을 담았고, 좌우간 동양무공을 취미로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이러한 선입견을 한번에 뒤집을만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공부자에 이어 패검한 철학자- 즉 칼 찬 철학자로 유명한 양명 왕수인이다. 몇 번 언급을 한 기억도 있는데, 한 사람의 성리학자이기 앞서 그는 당시 여러 농민 반란, 소수민족의 반란, 변방 귀족이나 황족들의 반란에 이르기까지 아울러 약 70여차례의 반란을 진압한, 그야말로 내란 진압 전문가였다. 초상화에서 보이듯이 깡마르고 예민해보이는 그는, 결핵과 발작, 두통 등으로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편이었으나, 소년 시절부터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데 능했고, 서역에서 들여온 불랑기포를 전장에 도입한 명장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모택동은 공산당을 이끌고 인민들과 대장정을 수행하며 스스로 낮에 걷고 밤에는 읽고 썼음을 자랑했지만, 실은 이미 왕양명이 그러했던 셈이다. 문무를 겸비한 이답게 그는 주자학의 선지후행- 즉 먼저 제대로 알아야 올바로 행할 수 있다는 이론적 면모를 비판하고, 지행합일- 가르침을 직접 실천해나가면서 비로소 깨달아나간다는 입장을 강하게 부각시켰는데, 실제로 모든 기를 아울러 지배하는 리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주자가 '사과 씨앗에는 사과가 되는 리가, 대나무 안에는 대나무가 되는 리가 들어있다. 끊임없이 지켜보면 안다' 는 비유를 보고 실제로 근 보름을 대나무만 쳐다보다 실신하기도 했다는 유명한 고사가 있다. 이후 왕양명은 스스로 대나무를 보름간 지켜보았으나 하늘의 리가 자신에게 들어 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사변적 이론은 결코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강하게 주장하며 양명학의 기초를 세웠다. 양명의 이론은 훗날 탁오 이지에게로 다시 전해지며, 탁오 이지 역시 이른바 양명좌파- 그러나 학문을 하는 이로서 가장 날카롭고 탁월한 지성을 지닌 이로서 역시 일세의 영명을 떨쳤다.



얼마 전 짬을 내어 메를로 뽕띠에 관해 읽을 내용이 있었는데, 메를로 뽕띠를 읽다보니 문득 왕양명 생각이 떠올랐다. 서양의 왕양명이라고 할 정도로 메를로 뽕띠는 신체적으로 직접 겪은 체험을 매우 중시한다. 강신주 선생의 표현대로 하자면 고대로부터 근대까지의 철학이 한번쯤 거쳐가는 저수지와도 같다는 칸트가 사물 자체- 즉 물 자체는 비록 있으나 우리 인식의 표상으로만 헤아릴 수 있을뿐 실제 물 자체는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한 이후로, 에드문트 훗설은 강하게 그를 비판했다. 우리의 인식으로 헤아려지지 않는 물 자체가 설사 있다 한들, 그 물 자체가 과연 인간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마치 나부끼는 것은 깃발도 바람도 아니요, 우리의 마음이라고 했던 혜능선사처럼, 시체에 고여 썩은 추깃물조차 내 목이 마를때는 달더라며 당나라 유학을 포기했던 일체유심조의 소성거사 원효스님처럼,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어느때고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았던 천릿길의 전도사 바울처럼, 훗설은 우리의 마음이 대상에 가 닿아야만 비로소 인식되고 해석되며 의미를 가진다는 현상학의 기초를 세운다. 유태인 스승 훗설의 수제자였던 하이데거는 심한 의처증에다 나치부역자였고, 그 번쩍이는 지성에도 세파는 거스를 수 없었던지 스승 훗설이 비참하게 죽도록 내버려둔다. 그나마 루뱅 대학의 훗설 아카이브가 유고로 남아 있어 발터 베냐민, 메를로 뽕띠 같은 젊은 철학자들이 위대한 지성이 남긴 글을 읽고 자신들의 이론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기 시작한다. 메를로 뽕띠는 그 중 훗설의 현상학 또한 그 스스로의 신체로 겪고, 삶의 체험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들 중 눈을 감고 주변 환경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누구나 자신이 직접 보고, 만졌던 경험들을 토대로 주변을 재구성하듯이, 신체적 경험은 대상을 파악하는데 절대적인 그림을 제공하는 단서였고, 그를 기억해내는 힘 또한 삶의 체험이 뒷받침 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메를로 뽕띠에게 인간은, 위대한 삶의 존재나 이성적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모든 감정과 기억을 흔적삼아 살아가야 하는 '함몰' 이나 '주름' 과도 같았다. 나는 메를로 뽕띠의 탁월한 체험론을 읽으면서, 이 양반 진짜 왕양명 같네, 개론만 읽을게 아니라 언제 한번 이 사람의 글을 직접 읽어봐야겠다 생각할 정도였다.



말이 길어진만큼 멀어졌는데, 세상에 몸을 쓰는 일, 특히나 누군가와 정정당당하게 손발이나 솜씨를 겨루는 일만큼 극명한 체험이 어디 있을까. 승부가 걸렸으니 당연히 최선을 다해 훈련하고 임할 것이며, 무승부가 있다 한들 드물고, 뉜가는 이기고 지게 마련인데, 모두가 손에 잡히는 과정에서부터 결론까지 명확하니, 오랫동안 말과 글과 생각을 다루는 공부를 해온 나로서는 이처럼 명료한 세상이 따로 없어보였다. 나도 내 스스로 무른 몸과 성격이 싫어 스무살때부터 온갖 무공과 병기를 다 접해보았고, 제가 눈만 껌뻑이면 산을 넘을 수 있네, 실은 장풍쏘아 건물도 허무는 내가고수입네, 하는 이들도 못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마흔을 앞두어 좌우간 이십년 가까이 무공의 곁다리나마 취미로 익혀보니, 피땀 어린 육체의 경험없이 단련되는 기술은 없으며, 아주 기초적인 찌르기와 막기를 할때에 허리를 틀어 던져주는 동작부터 모든 무게를 허리로 지탱하고 발끝에서 손끝으로 중심을 이동하여 뻗는 내용까지 내 스스로 직접 배우고 익히고 반복하지 아니하면 깨닫기 어려웠던 일들이다. 나는 늘상 모든 글들을 그렇게 반복하여 읽었고, 무공도 그렇게 하려 한다. 남들처럼 성취야 빠르지 않지만, 내가 아는만큼만 하면 된다. 그래서 오늘 새벽도 온 몸에 신경쓰면서 기초 기술을 반복하고, 무게들을 들었다. 오랜만에 삼일 연속으로 훈련했더니 어깨 허리가 빠질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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