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760일차 - 이무회우(以武會友)!
어쩐지 밥 잘하는 유진이한테 연락이나 한 번 해볼까 싶었던 날에, 때마침 내 할 말 사돈이 한다고, 밥 잘하는 유진이에게 연락이 왔다. 한때 인사동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직장 상사이자 동료였었고, 어줍잖은 책상물림 회사원인 나에게 주방과 홀의 생리를 냉엄하게 가르친 훌륭한 스승이며, 동시에 도장의 가장 믿음직한 사매이기도 하다. 8월 승단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한동안 연락을 못 드린 사범님이며, 도장의 사형제자매들은 모두 건강한지 물었더니, 그런거 궁금하면 도장 함 오지 그래? 담주가 바로 유단자 수련일인데, 한다. 앗차, 한동안 도장에 신경을 못 쓰고 처자식과 함께 유모차 끌며 걷는데만 집중하느라 도장 단톡방의 공지도 대충 넘겨버리고 말았다. 서둘러 확인해보니 아닌게 아니라 다음주 월요일- 그러니까 어제가 유단자 수련일이었다. 한동안 도장도 못 가고 해서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보니, 아내가 곱게 눈을 흘기며, 아이고, 또 사범님이캉 죽이 맞아가 샐샐 재밌게 태권도 실컷 하고 오시겠지~ 요즘 고생하셨으이까네 그라이소, 내는 혼자 애 보모 힘드니까 어머이 아부지한테 가 있으께, 대신에 당근마켓에서 기저귀 거래하기로 했으이까네 올 때 그거나 좀 갖다주이소. 그리하여 퇴근길에 하기스 기저귀 한 무더기 싸가지고 도장으로 가니 사범님과 밥 잘하는 유진이가 그 자리에서 바로 뒤집어졌다. 어우 씨, 저거 니 거 아니냐? 오늘 얼마나 지리려고 그래?
밥 잘하는 유진이는 8월에 곧 2단 승단을 앞두고 있는데, 그동안 얼마나 훈련을 열심히 해왔는지 몸이 1/3으로 줄어들어 보일 정도로 날씬하고 날렵해졌다. 게다가 몸놀림이 얼마나 정확해졌는지, 틀을 연무할때마다 관절의 연동이 부드럽고, 마지막 동작 이전에는 각이 딱딱 잡혀서, 그야말로 오하아몽(吳下阿蒙) 괄목상대( 刮目相對), 내 총각 시절 색깔 띠를 매고 힘으로만 태권도를 하던 그 때 그 밥 잘하는 유진이가 아니었다. 특히 화랑 틀의 ㄴ자서솟은주먹올려찌르기를 할 때 눈에 보일 정도로 손목의 회전이 부드럽고 마지막 타격의 위력이 생생히 전해져서 와, 정말 많이 늘었구나 멀리서도 감탄할 정도였다. 그 때 나는 겨우 사주찌르기/막기에서부터 유급자 틀 마지막인 충무 틀을 마치고 헐떡헐떡 마스크 바깥으로 더운 김을 내뿜으며 늘어져 있엇는데, 사범님 말씀하시기를, 이거 완전히 마인부우 됐구만 마인부우, 아직도 살이 이렇게 쪄서 어떡할거야? 핀잔을 주시었다. 윤유진 수련자는 승단 준비한다고 매일 나와서 1kg짜리 아령들고 기본기 반복했었어, 그러니까 저렇게 실력도 늘고 몸도 더 좋아지지. 아.. 부럽다.. 가정 없는 아가씨여...(?!)
어제의 유단자 수련은 정말 너무 알차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남자는 양손에 2kg씩, 여자는 1kg씩 아령을 들고 유급자 틀 2회 반복 및 맞서기 주먹 기술 연습! 사이사이 1~2분씩 쉰걸 제외하면 정말 2시간이 꼬박 걸리는 여정이었는데, 사범님 말씀처럼 지금도 양 팔뚝과 어깨가 시리고 무거워서 제대로 타자를 치지도 못하겠다. 오타가 설설 난다. 나는 한동안 훈련을 쉰데다가 근력이 모자라져서 나중에 정말이지 어영부영, 고작해야 양손에 총 4kg 아령을 들었을 뿐인데,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온 몸이 땀으로 푹 젖고 하체까지 무거워졌으며 나중에는 온 몸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나마 평소에 훈련을 꾸준히 해온 밥 잘하는 유진이나 잡초 양이나 경희대 누님, 혹은 원래 몸이 좋았던 짭기하나 닥터 권은 그럭저럭 아령 훈련을 소화해냈는데, 나는 나중에 거의 혼자 망나니 칼춤을 추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훈련을 하니 정말 좋았다. 마지막으로 단련대를 친 뒤에 스트렛칭하고 총 하루 3시간 30분의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물론 이렇게 갑자기 무리한 날은, 몸은 정말 피곤한데 아드레날린이 쫙 올라와서 밤새 잠을 잘 이루지 못하게 되므로 지금도 멍하다.
이문회우 이우보인(以文會友 以友輔仁)이란 본디, 안회가 죽고 나서 공부자의 적통을 이어 그 손자 자사에게 글을 가르쳤다는 증자가 한 말로 논어 안연편에 기록되어 있다. 공부자께서는 생전에 증삼-증자야말로 유학의 요체를 깨달은 이라고 격려하시었다. 그 뜻은 아주 가깝다. 군자는, 글을 공부하여 벗을 사귀고, 벗을 사귀어 어진 성정에 더욱 보탬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말이다. 일찍이 근현대의 일본은 엘리뜨 기업전사들을 장려하기 위해 이른바 잇쇼겐메이(一所懸命 : 일소현명, 한 장소에서 목숨을 걸다, 즉 평생직장이 되도록 노력하다.) 정신으로 기업을 육성했는데, 회사에서 숙식을 제공함은 물론이요, 취미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사우(社友)까지 만들어주어 회사를 제2의 집으로 만들어주는 정책을 폈다. (지금 생각하면 소오오오름...)
비록 그 사생활에 논란은 있으나, 고수를 찾아서 라는 TV-책 양쪽에 길이 남을만한 작품을 남긴 한병철 박사가 오씨개문팔극권의 오련지 노사를 맞았을 때, 그는 이무회우(以武會友)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앞선 예에 따르자면, 무공을 익히는 이는 마땅히 그 무공을 통해 좋은 벗을 사귄다는 뜻일게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도 우리 나라에서도 각종 다양한 격투기와 무공을 하는 이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은데 땀흘려 서로 모여 훈련하고, 존중하는 관계에서 권각을 나누니, '공부하는 자에게 술과 밥과 친구는 자연히 찾아온다' 라는 고미숙 선생의 말씀이 생각나는 바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밥 잘하는 유진이, 함께 일할 때는 갈굴 때 갈구더라도 늘 온갖 요리에 좋은 술을 챙겨주고, 도장에서도 후배로서 역할을 다하면서, 어젯밤도 이러다 송장 치우겠다며 본인도 피곤할텐데 손수 우리 집까지 태워다주었다. 정말이지 이무회우, 고마운 도장 사형제 사자매들. ㅠㅠ 나도 어서 빨리 우리 딸내미랑 다시 도장 나가고 싶구나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