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맹자의 철학-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할 인덕의 정치가

by Aner병문

채인후 지음, 천병돈 옮김, 맹자의 철학, 예문서원, 2010. 초판 4쇄



집안일이 정신없는 동안 나라도 더욱 정신없게 돌아갔다. 즐겁게 보내야할 어느 휴일에, 좁고 가파른 비탈길에서 황망히 떠나버린 젊은 넋들에게 다시 한 번 명복을 빈다. 얼마 전 이야기했듯, 로크의 사회계약론처럼 세금을 내는 우리들은, 세금을 내는만큼 공공서비스가 우리의 안정과 안녕을 적정선까지 보장해줘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고, 한편으로는 정치와 행정을 전문적으로 하는 엘리뜨들이 옛 명군선왕들처럼 백성들을 잘 보살펴줘야 한다는 전통적 향수도 강하게 갖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평가를 떠나서, 새어나가버렸다는 한동훈 법무장관의 사담은 이러한 한국 대중들을 마음을 강하게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들은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게 사회에서 이득 받고 살아온 우리들의 몫이다.' 어느 정도 현실과 이상을 절충한 말이라고 하겠다.



공자의 손자 자사로부터 공자의 도를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는 당대의 철학자 맹자의 시대도 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강신주 선생의 평에 의하면 명문대학급 총장의 위세를 떨쳤던 양주나, 백성들과 직접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목숨을 보호해주었던 묵가가 득세하던 시절이었으니 세상은 여전히 피폐하고 힘들었다. 공자의 문인이라는 소식을 듣고 양나라 혜왕이 맹자를 면접보며 '선생을 등용하면 내가 무슨 이득이 있겠소?' 라고 묻자 면전에다 자신의 고용주에게(!!) '왕께서는 왜 하필 첫 마디부터 이득을 논하십니까?' 라며 천승지국- 즉 천 개의 전투마차를 지닌 나라는 만승지국에게 정벌되고, 백승지국은 다시 천승지국에게 토벌되리라는 약육강식의 비정함을 비난하며, 인의와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고사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학교 다닐때는, 지금의 내 나이 또래이셨을 젊은 선생님께서 '여러분들, 그래도 유가의 경전을 공부하는 우리들이 구절 몇 개쯤 못 외워서야 말이 안되겠죠?' 라고 암송시험을 시키셔서, 아니, 인터넷만 열면 한국고전연구소 강해록까지 다 나오는 세상에.. 꿍시렁꿍시렁 하면서도 올망졸망 소주 마셔가며 외웠던 그 젊은 시절이 선연하다. 여하튼 그 젊은 시절부터 맹자께서는 그렇게 인의의 정치를 여전히 말씀하고 다니셨었다. 하기사 어머님부터가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가신 분 아닌가.



이제 마흔이 가까워 다시 맹자를 읽어보니, 맹자의 학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공부자께서 말씀하시는 성인의 도를 어떻게 수양할 것인지, 세분화하고 심층적으로 다루어 성선설로 흔히 대표되는 심신수양론의 기틀을 잡으셨고, 나머지 하나는 심신수양을 통한 성인과 군자들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할지 제도화하여 말씀하셨다. 아무나 정치하지 말고 철학하는 이들이 정치를 해야한다는 플라톤의 사상과 어느 정도 닿는 구석이 있다. 맹자께서는 또한 털 하나를 뽑아서도 천하를 이롭지 않게 하겠다는 위아론- 개인주의의 양주, 반대로 이마를 갈고 갈아 발뒤꿈치까지 닿는다 할지라도 천하를 위해 죽겠다는 겸애의 묵자를 모두 비판하시면서, 인간이라면 마땅히 사람을 사랑하되, 자기 가족과 친지를 먼저 아낄 수밖에 없고, 다만 타인도 그렇게 대하도록 애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내 자만 우선하겠다는 양주나,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겠다는 묵자는 모두 말도 안되는 허망한 요설이라고 보신 것이다.



젊었을때는 맹자께서 그냥 낙관적으로 몇 개의 개인적 경험으로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 여기신 게 아닌가 싶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그 시적인 낭만이 더하다. 학술적인 근거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복잡하게 하여 여기서 빼겠으나, 그의 인성론은 그 당시 역시 명성을 떨치던 고자(본명은 해, 양주처럼 본인의 저서는 없지만 여러 사상가들의 책에 인용되는 것으로 보아 역시 당대의 철학자로 여겨진다.다만 높여부르면 항상 꽈추형 모셔야 와야할 거 같은 느낌..ㅠ) 와의 논변을 통해 잘 드러나는데, 고자가 버드나무로 그릇을 만드는 것은, 인위적으로 깎아서 만드는 것이요, 물은 네모난 됫박에 부으면 네모나지고, 동그란 그릇에 부으면 동그라지며, 좌로 우로 길을 내는데로 마음대로 흘러가는데, 어찌 인간과 사물에 고정된 본성이 있냐는 말에, 버드나무에 마땅히 그릇으로 만들어지는 성질이 있기에 자연스럽게 그릇이 되는 것이요, 항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본성은 어떻게 생각하냐며, 고자의 주장을 논박하셨다. 덧붙여 그는 '세상의 도를 흐뜨러뜨려 진실로 천하를 망가뜨리는 자는 너일 것이다' 라며 험한 말씀도 주저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맹자에게 있어 하늘이 준 성이 곧 네 개의 마음의 싹으로 자라니, 우리가 익히 외우고 잘 아는 부끄러워하는 마음, 시비를 판단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며, 사람의 마음은 이 어짊으로부터 출발하고, 어질게 행동한 마음이 마땅히 의로움으로 향한다고 하여 마음을 둘 곳과 나아갈 곳을 명확히 하셨다.



당시 약 2,400여년 전의 중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웠을리야 없지만, 백성의 뜻을 우선한다는 민본주의를 주장한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었는데, 주나라 희창이 하나라 주왕을 폐한 일을 두고 '필부 주를 벤 일은 있어도, 왕을 폐한 일은 없다.' 라고 잘라말하며 마땅히 군주의 덕을 다하지 못한 이는, 군주가 아니라 죽어야야할 자라며 역성혁명을 들었으니, 조선왕가에서 공식적으로 맹자를 읽히지 않거나, 듬성듬성 잘라낸 맹자를 교육했음 또한 유명한 일이다. 맹자의 정치 철학은 제자 공손추와의 대담에서 말씀하시듯이 '위로는 마땅히 부모를 봉양하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먹여살리며, 풍년에는 배부르게 하고 흉년에는 굶지 않게 해야 한다. 또한 아내가 없는자, 늙고 남편이 없는 자, 부모가 없는 아이, 자손이 없는 노인 의 네 부류를 우선적으로 나라에서 돌봐야한다.' 라고 축약할 수 있는데, 지금의 나라가 과연 이 짧은 말씀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흉악한 소식이 많이 들리다보니 사람들은 자꾸 강한 법을 바라고, 법가에 매달린다. 그러나 맹자께서는 고자와의 논변에서 '천재지변으로 산이 헐벗었다 해서 사람들이 어찌 저 산이 처음부터 민둥산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나무를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주면 산은 다시 푸르러지며, 그 모습이 곧 산의 본성 아니겠는가?' 라고 반박하셨다. 젊었을때는 별 생각없이 넘어갔는데, 요즘 다시 생각해보면 천하에 다시 없이 마음을 울리는 대장부의 말씀이다. 과연 호연지기. 마흔 전에 읽은 맹자가 이토록 맛있게 읽힐 줄 몰랐다. 아니면 춘추전국 못지 않게 요즘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