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수리남 - 오랜만에 숨도 못 쉬고 열렬하게 본 드라마

by Aner병문

감독 윤종빈, 주연 하정우, 황정민, 현봉식, 조우진, 박해수, 유연석, 그리고 장첸, 수리남, 한국, 2022.



대사를 쓴다면 최동훈 감독이 약간 더 재기발랄하다는 정도일까? 영화가 문학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모두가 공유한다고 할때, 최동훈 감독이 조금 더 재기발랄한 대사를 통해 인물의 생동감을 더하고, 그래서 더 발랄하다는 점을 뺀다면, 윤종빈 감독은 서사 자체가 매끄럽게 흘러가는데 중점을 두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건, 영화 자체를 보고 나서 '정말 재미있는 영화를 보았다' 고 느낄 수 있으므로 결국 서사가 정말 매력적인 셈이다. 그래도 내게는 윤종빈 감독이 아직까지는 이야기를 짜는데에 좀 더 능숙하다는 느낌이 든다.


드라마를 보는 일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육아를 하지 않는 총각 시절에도, 부모님 눈을 피해 할 일이 많았다. 책을 읽어야 했고, 교회도 다녀야했고, 술 마셔가며 속도 풀어야했고, 반드시 훈련도 해야 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시간 맞춰 더군다나 가족들이 모여 있는 거실에 나가 TV를 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사실 좋아하지도 않았다. 내가 아는 한, 한국의 드라마란 매일 출세지향적인 남녀들이 지지고 볶다가 결국 저들끼리만 행복한 이야기라고만 느꼈기에, 나는 늘 몰래 숨겨놓은 술병과 책과 운동기구 사이에서 내 몸만 뉘이면 그만인 내 방에 틀어박혀 온갖 책을 읽는데만 열중했다. 특히 웬만한 공립도서관이라면 없을수가 없는 민음사 전집에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민음사의 전집은 내 좁고 작은 방에도 특히 남미의 감미로운 열풍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내 방에서 팔굽혀펴기 좀 하고 몰래 숨겨놓은 술병을 몇 번 쭉쭉 빨다가 책만 펴면 어느 시대의 어느 나라든 누비며, 드라마보다 더한 인물상들을 늘상 볼 수 있는데, 기껏해야 드라마에 목 매듯 보고 싶지 아니하였다. 지금까지도 내가 본 한국 드라마는 유일하게 별순검 시리즈와(어쩔 수 없는 추리쟁이..) 추노(어쩔 수 없는 무협+사극쟁이..), 그리고 단편 드라마 중 걸작으로 꼽히는 태릉선수촌 시리즈와 단막극인 태권, 도를 아십니까 정도일 뿐이다. 제목을 지금도 기억할 정도로 내가 챙겨본 드라마는 정말 손에 꼽으며, 주짓수 하다가 다쳐서 병원 신세를 졌을떄야 비로소 밤새워 미국 수사물 드라마를 좀 오래 봤을 뿐이다.



사람들이 하도 수리남, 수리남 하기에 반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얼마나 흥행이기에 드라마의 배경인 나라에서 손수 '우리 나라 그렇게 심하지 않다!' 라고 발끈할 정도란 말인가. 도장의 어느 동갑내기 사제는, 하룻밤만에 꼴딱 새워서 6편을 다 봤다고 했다. 그럴 정도인가 싶다가, 마침내 이번에 기침 감기가 심하여 도통 밤잠 못 이루고 무엇이든 효율이 높지 않기에 그냥 무엇이든 보자 싶어 수리남을 보았다가 아주 홀딱 빠져서 보았다. 사실 영화 공작:흑금성에서 이미 윤종빈 감독은 특별히 시각적 연출 없이도 오로지 대사와 상황만으로 가능한 연극적 연출에서도 훌륭히 관객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서사적 능력을 선보였다. 그런 그에게 긴 호흡을 가져갈 수 있는 드라마는 어쩌면 훨씬 더 편했을지 모른다. 이제는 거의 다 아는 이 드라마의 서사는, 보고 나면 전형적인 영웅 서사시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모든 서사를 꿰기 전까지 바로 다음 장면을 끊임없이 보게끔 밀어붙이는 추동력이 아주 절묘하다. 이제껏 절찬한 서사를 완성하기까지는, 설정, 인물, 대사, 연출 모든 것이 빈틈이 없다. 굳이 하나 아쉽자면, 계약이 썩 좋지 않았는지, 마지막 6화에서 갑자기 급진전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정말이지 옥의 티라면 티였다. 여하튼 모처럼 정말 재미있게 본 영상물이었다. 특히 돈을 벌어야 하는 아비로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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