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르루, 성귀수 역, 오페라의 유령, 문학동네, 2009.
진씨 성을 가진 한 젊은이가 죽었다. 나는 오래 전 TV에서 그를 보았다. 워렌 버핏처럼 재벌이 될 사람인지라 스스로 이름을 진워렌버핏으로 바꾸어, 훗날 진의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그는, 공중파 방송에서 비교적 절제된 모습을 보였음에도 사람들의 경악을 피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진행자들의 표표정과 눈빛이 아주도 눈에 선연하다. 그는 군대에서 6개월만에 심신미약으로 쫓겨났고, 인터넷 방송 플랫폼을 전전하며 관심을 구걸할 뿐,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 않았다. 몇몇 팬들이 제발 사람 한 번 살려달라고 애걸하고, 또 어느 호인께서 하루 6시간이라도 꾸준히 일해보라고, 자신의 운동 기구 매장에 취직시켜주기도 했지만, 그조차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렸다고 했다. 대신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방송에서 온갖 기행을 벌여왔다. 기행이라고 말하기도 부족한, 추하고 더러운 짓들이었다. 발가락으로 짜장면을 비벼먹고, 노부모에게 희한한 내용이 적힌 패찰을 들게 하여 희화화하고, 위아래 깔깔이를 입은 채 여고 앞에서 '여고생과 결혼하고 싶다, 여고생을 껴안아보고 싶다' 소리지르고, 심지어 명동 한복판에서 벌거벗고 전직 남성 대통령에게 구애하기도 했다. 바다 건너 큰 나라의, 영화로 유명한 거리에서는, 일부러 괴상한 짓을 벌여 주목을 받아 취재를 쉽게 하는 기자도 있다던데,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이름마저 워렌버핏이며, 일론머스크며 희한하게 바꾸어 나 관심 받고 싶다고 힘주어 표현하는 것일까. 저런 사람의 방송을 돈을 주고 사보는 이가 있고, 후원하는 사람도 있으며, 또 심지어 동거하거나 거두어 먹이고 키우는 이도 있으니 참말 세상은 넓다. 하기사 모수자천 낭중지추의 고사를 만든 논객 모수도 평원군이 거두기 전에는 일개 식객이었고, 천하명장 배수진의 한신도 한때는 불량배의 가랑이를 지나 다니며 기생과 시장 할머니에게 밥을 빌어먹었으니, 하물며 나 같은, 되다만 반가통(半可通)이겠나. 나 역시 어린 시절에는 내 마음의 빈곤과 불우함을 핑계로 여러 사람 달라붙고 상처주다 저 혼자 우울해야 하지 않았나. 누구나 사랑을 주고 받고 살고 싶은 마음은 같다. 그러므로 나이 마흔에 옥상 바깥으로 몸을 던진 저 광대 같은 사내나 나나 반근팔량(半斤八兩), 다를게 없다.
여기, 한 때 외모 컴플렉스에 깊이 찌들어 거울 안의 내 얼굴을 칼날로 그어버리고 싶었던 사춘기 시절의 나와 비슷한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에릭이지만,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의 본명을 모르고, 불릴 일조차 적다. 추악한 얼굴을 반쪽짜리 가면으로 감추고, 몰래 오페라의 마돈나 크리스틴 다에를 지도하는, 신과 같은 목소리를 지녔으며, 동시에 악마와도 같은 수법으로 자신의 외사랑을 방해하는 자는 모조리 제거하는 이 남자의 정체는, 한때 페르시아의 마술사이자 건축가, 과학자, 그리고 고문기술자다. 페르시아의 왕과 어린 왕비에게 신비로운 마술로 깜짝깜짝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앞으로는 비밀스러운 살인 기술과 다채로운 고문 기술로 그들의 가학적인 취미를 만족시키는 자였다. 낳아준 어미조차 내다버릴 정도로 얼굴이 추하게 일그러지 않았다면, 그래서 가면을 쓰고 유령 행세를 하며 크리스틴을 짝사랑하고, 잘생긴 약혼자를 질투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의 삶은 훨씬 행복했을까? 페르시아의 경찰청장이자 유일하게 에릭의 수법 몇 가지와 그 정체를 알고 있는 다로가는 크리스틴의 약혼자 라울 대위와 함께 그의 살인을 멈추게 하고자 쫓는다. 그러므로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로 널리 알려진 명성 이전에, 추리 소설이자 심리 스릴러 소설이며, 미스터리 잔혹극이기도 하다. 친구의 열정적인 설득에도, 질투와 소유욕에 깊이 사로잡힌 유령 에릭은 온갖 함정을 설치하여 두 남자를 잔혹하게 괴롭힌다.
검을 들면 당대의 검객이었고, 펜을 들면 쥘 베른 울고 갈 환상소설을 척척 써낼 정도로 문무를 겸비했지만, 코가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스로의 외모에 신경쓰다, 비참한 죽음 앞에서야 겨우 사랑을 맞이하게 된 시라노 드 벨 쥬락은 어떠한가? 우리는 애초에 부족한 인간이지만, 바로 그 부족함을 가리려고 애쓰고 허세를 부리다 오히려 삶을 망쳐버린 이를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진워렌버핏 말고도 '한국의 워렌 버핏' 소리를 듣고자 주식으로 벌어들인 400억을 아낌없이 기부로 뿌리는 듯 보였던 박철상 군은 폰지 사기로 남의 돈으로 거들먹거리며 거부 행세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세계에 몇 대 없다는 수퍼카와 으리으리한 집을 내세우며 눈먼 돈을 빼먹다 끝내 제 부모까지 빚쟁이들이 복수에 잃게 된 청담동 이희진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영화 리플리 에서 맷 데이먼은 자신이 별 생각없이 꺼내놓았던 허세와 거짓말이 점점 자신을 옭아매어, 죽을만큼 괴로워한다. 우리는 누구나 '변신' 을 동경하고 꿈꾸지만, 결코 스스로를 거짓으로 꾸며서는 안된다.
나 역시 한때는 촌스럽게 들리는 내 이름과 외모가 싫어, 필명을 쓰고 늘 내 모습을 가리며 살려고 했다. 사막 도마뱀이 적을 만나면 프릴을 펼쳐 제 몸을 크게 보이듯이, 나도 그렇게 부끄럽게 살았다. 그러므로 자꾸만 이름을 바꾸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온갖 기행을 보이며, 어쩌다 관심을 보이는 이가 있으며 옷을 훌렁훌렁 벗고 음란행위에 집착하다 끝내 죽어버린 이 남자가 끝내 안쓰럽다. 그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요, 그를 동정하고 구원코자 하는 것도 아니요,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들 뿐이다. 누구나 사랑을 주고 받기에도 부족한 삶에, 그는 어째서 40년을 살면서 누구의 말도 귀담이 듣지 못했을까, 왜 누가 주변에서 조금만 더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채워가며 살아보란 얘기를 하지 못했을까, 아마 그의 마음이 막혀서, 또 대저 인터넷 방송이라는 환경이 워낙 요사스럽고 정신없어, 대덕고승이라도 능히 황진이 앞 지족선사마냥 넋을 빼놓기 마련이므로, 그가 평생 쌓아온 삶을 되돌아볼 여유는 없었을 터이다.
지인이 마지막으로 받았다는 그의 문자에는, 공포와 분노가 엿보였다. 그는 자신의 팬을 자처하는 여성에게 또다시 호감을 보였고, 부모님과도 같이 사는 그녀의 집을 밤늦게 수시로 찾아가거나, 영상통화에서 음란행위 등을 하다가 끝내 고소당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는 그 이전에도 여러 방송국에서 영구정지를 당했으며, 연말 시상식에 난입하여 제발 영구정지를 풀어달라는 등의 아우성을 치다가 끝내 감옥 생활을 하게되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정말 공포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는 다시는 감옥에 가고 싶지 않았을 터이고, 상황을 이렇게 만든 여인과, 또 그 여인의 고소에 도움을 준 다른 인터넷 방송인도 싫었을 터이다. 그러므로 그는 차라리 20층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길을 택했다. 아무도 그를 사랑해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까마득한 높이에서 몇 마디 말을 남기고 비루한 삶을 마쳤다. 그가 죽은 장소는, 놀랍게도, 내가 다시는 그 곳으로 소변조차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십 몇 년 전 내가 가게를 했던 근방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욕망대로 살다가 큰 망신을 당했고, 가게를 정리했으며, 몇몇 벗들의 애정으로 겨우 버티어 처자식을 두고 산다. 내가 겨우 빠져 나온 그 구덩이에서 누군가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에, 나는 주위 사람들이 죽을만한 사람 죽었다 라는 비웃음에도 좀처럼 웃을 수가 없었다. 그는 분명 비루하고 남루한 죄인이지만, 나와 닿는 구석이 있어서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 그는 정말이지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한 인생을 제멋대로 망쳐버린 인터넷 방송의 유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