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이야기)

2023년 계묘년 새해를 맞아 몇 마디 적기

by Aner병문

갑자기 커지는 귀를 감추기 위해 매번 왕관과 모자를 새롭게 바꾸기 때문에 끝내 왕의 비밀을 알게 된 전문 기술자 - 갓장이나 이발사 등이 그 비밀을 감추지 못해 대나무 숲이나 우물에다가 몰래 털어놓았지만 끝내 모두가 알게 된다는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적힌 신라 경문왕 설화라고도 하고, 이솝 우화나 기타 여러 나라에서도 비슷한 구조로 발견된다. 계급은 달라도 사람 사는 삶에 어쩔 수 없이 조우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며, 서사는 그 순간에도 계급과 상관없이 퍼진다. 비밀은 있을 수 없다는 교훈이기도 할 것이며, 공공연히 비밀스럽게 일을 처리하는 상부 지배 계급에 대한 하부 구조 계급의 원통함이기도 할 것이며, 무엇보다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공유하고픈 사회적 본능의 동물임을 시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으면 갈수록 기운이 입에만 몰린다더니, 젊었을때부터 하도 수다가 많아 지청구를 들었음에도, 이제는 늘상 이야기를 들어줄 아내가 있어 좀 덜한가 싶다가도, 새해 정초부터 너가 '혼자 말하지 말라고오오오옷~ 그런건 일기장에 쓰라고오오오옷~' 반농반진으로 혼나서 새벽녘에 이곳에 몇 자 풀어놓습니다. 저 말 잘 듣죠. (재중 군, 아니, 친구여, 보고 있나요 ㅋㅋㅋㅋ)




0. 태권도와 신앙 - 몸과 마음의 건강 지키기



처가 어르신의 일을 오래 겪고 보니, 건강이 무엇보다 소중한 사실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저 단순하게 건강이 최고지, 입버릇처럼 외우는 말이 아니라 참말로 소중하다. 매일 감기에 걸려오는 아이의 기침콧물을 늘상 몸으로 받아 옮겨오면서도 느끼고, 매주 목요일 15분마다 말없이 누워계실 어머님을 조심스레 보고 오는 아내를 보아도 그러하다. 처가 어르신께서 말없이 자리보전하신지 꽤 오래 되었고, 아버님께서 몸소 올라오셔서 우리 집에서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듯한 기다림을 견디신지도 꽤 되었다. 아무리 사위도 아들이라지만, 그래도 사위-딸의 집에서 연말연초를 지내시는 일이 민망하셨는지, 조심스레 며칠 전 이야기를 꺼내시기를, 긍정적인 이야기를 좀 들으면 도로 내려가서 기다리실까 생각중이셨는데, 생사의 엇갈림이야 일상다반사일 의사 선생님은, 무섭도록 냉철하게, 지난 성탄절에 사실 일이 잘못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환자가 잘 버티고 있다- 는 식으로 말을 했다며, 아무래도 좀 더 오래 머물러야겠다고 말씀하시었다. 아내도 그렇거니와 나 역시 몸 속의 어딘가를 반 이상 들어내신 아버님 홀로 내려보내기도 죄송스럽고, 가족은 이럴 때일수록 항시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나는 얼마든지 어른께서 이곳에 계셔도 된다고, 사위도 자식이라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씀드렸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집 안 어르신이 오래 자리보전하시니, 정말이지 집 안에서 웃을 일이라고는 세상 일 알 길 없는 어린 딸아이의 재롱뿐이다. 그러므로 건강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오랫동안 여러 잡다한 무공을 조금씩 배워왔고, 서른살부터야 겨우 태권도에 몸을 두어 지금껏 체계적 훈련을 해오면서 마침내 몇몇 사제 사매들을 건사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사실 몸이 많이 갉아먹혀, 군데군데 비고 뚫린 관절은 매번 수술의 후유증이 있고, 조금씩 조금씩 타격의 무게가 쌓이니 나 역시 몸이 평안한 취미가 아님은 분명히 알고 있다. 오랜만에 사제사매들과 어울려 글러브 끼고 격렬하게 뛰었더니 몸이 피곤한데도, 맞은 곳이 쑤시고, 특히 발바닥이 겉보기에도 퉁퉁 부어 걸음을 옮길때마다 아프다. 살짝 평발 기가 있는데다 충격을 완화해주는 무릎과 발목이 젊을떄부터 고장나 수술을 했으니, 족저근막염도 남보다 잘 생기는 편이다. 하루하루 나이 먹을수록 몸이 녹듯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고, 그러므로 평소의 훈련을 할때마다 몸이 버티지 못하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허락하는 한, 띠를 매고 훈련하고자 한다. 그 것이 내 몸의 건강법이다. 그러지 못하면 나는 또 아내가 안쓰럽도록 밤새 잠을 못 이루어, 뒹굴다가 일어나고 책을 읽다 눈이 퀭해질 터이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편하지 않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정말 알게 되었다. 공정한 세상 이론이라는 말이 있다는 사실도 뉴스를 보다 요즘에야 알았다. 사람들은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고 싶기 때문에, 나만 잘하면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사실 아름다운 믿음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문제는 타인의 잘못을 목도할때 사람이 아주 공격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성적 피해를 보거나 금융 사기를 당한 이들에게 '너희들이 먼저 문란하지 않았더라면' '너희들이 먼저 돈 욕심을 내지 않았더라면' 하는 식으로 세상은 공정한데 피해자들이 처신을 잘못하여 빌미를 제공했다는 식으로 공박하기 쉽다는 것이다. 혹시나 농담으로라도 나도 그러지 않았던가 싶어 돌아보게 되었다. 하여간 젊었을때부터 반성은 잘한다. 시편에서는 '악인의 길이 형통하거나 부유해보여도 결코 그를 부러워하거나 불평하지 말라' 고 되어 있으며, 신약에서는 어째서 악인들을 하나님께서 단번 처벌하지 않느냐는 제자들의 볼멘 소리에 예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들어 추수때에야 비로소 알곡만 가려 곳간에 넣고 가라지는 불태우듯, 심판의 날도 그때 오리라고 말씀하시었다. 예나 지금이나 잘못된 길로 성공을 거두는 듯한 이가 많았다는 뜻일게다. 가정을 가지고 보니, 고작해야 세 사람으로 구성된 공동체 하나 지키는게 쉽지 않도록, 세상의 풍랑이 거칠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고 있다. 온갖 강력범죄가 흉흉하여 아무리 내 스스로 몸가짐을 잘한다 해도 정말이지 매일의 퇴근길조차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감사와 평안이 더 중요하고, 욕심을 버리고 겸손해야할 필요도 느낀다. 얼마 전 너와 곽선생과의 술자리에서 스스로 온갖 책을 항시 놓지 않고 읽었음을 자부하면서도, 정작 성경은 그렇게 주체적으로 읽어본 일이 없음을 고백하면서, 작년에서야 겨우 성경 앱을 다운로드 받아 수시로 자주 읽고 있다. 불경은 나름대로 오래 읽어 그 은은한 맛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성경 역시 세상 말로 인류 최고로 널리 읽힌 글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불경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으며, 비슷한 가르침을 전하기도 한다. 비록 술은 못 끊었지만, 마음의 건강은 늘 믿음으로 지킬 생각이다.



1. 가정과 관계 지키기 - 지금, 다시 한 번 유학



젊었을 때는 유학이 정말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었다. 내 스스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에서 청춘의 한 자락을 보냈으며, 또한 그 학교에서 가장 전문적인 공부를 했으니, 원래 특유의 허세도 있으려니와 내가 고리타분하다고 부정을 해대니 일견 그럴듯해보이기도 했을 터이다. 마치 다른 사람이 말하면 우스워보이겠으나, 서울대학생이 서울대 반대 운동을 벌이면 합리적으로 보이는 맥락과 비슷해보이기도 하겠다. 하여간 그때는 서양철학, 해방신학, 고전-네오 맑스만 줄창 읽어댔던 기억이 있다. 유학에 눈을 돌렸던 때는, 내 스스로도 참담하도록 부끄러운 때의 새벽부터였으며, 그 때 나는 혼자 술을 마시며 사서집주와 성경을 읽으며 가슴을 쳤고, 이후로도 꾸준히 유학 경전을 중심으로 동양 철학을 읽어왔다. 적어도 산업 혁명 이전의 동양은 서양보다 월등히 압도적으로 체계적인 사회를 갖추고 있었고, 주류적인 중심 철학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유학은 정치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송나라 때 형이상학적 기틀을 갖추고, 그 이후로는 개인으로서는 심신수양, 사회적으로는 올바른 사회인을 양성하는데 동아시아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갖추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사회적 고찰을 하기 에는 유학만한 학문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오래 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거니와, 정치를 거부하는 행동(거부할 수 있으랴마는)자체 또한 하나의 정치적 행위로 해석되듯, 제아무리 무인도에서 배구공 하나 벗 삼아 산다 한들, 인간은 기본적으로 무리지어 관계맺고 사는데 특화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 리처드 도킨스처럼 유전자에 각인되었다 해도 좋고, 유학의 선비들처럼 하늘이 내려준 본성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므로 인간이 무리지어 살수밖에 없다면, 마땅히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해야할 터이며, 유학은 예절과 수양, 즉 형식과 내면적 모두를 아우르는 훌륭한 사회인 지침서라고도 볼 수 있다. 공부자께서 큰 기틀을 마련하셨고, 맹자는 심신수양에 주목했으며, 순자는 교육과 예절, 제도적 장치 마련에 힘썼는데, 나는 최근에 순자를 다시 읽으면서, 순자야말로 유학에 생소한 현대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학의 안내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도장에서도 처음부터 어려운 기술을 가르칠 수 없듯, 공부자의 학문에 대한 사랑이나, 맹자의 성선설은, 세상에 지치고 힘든 현대인들에게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물렁하게 보이기 쉽다. 에수님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쉬려고 교회에 찾아갔더니 나보다 더 약한 사람도 사랑하고,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며, 봉사활동을 나가게 하고, 헌금을 부탁하고, 교리를 잘잘 외우게 하면, 오히려 반감을 사기 쉬움과 비슷하겠다. 그래서 나는 새해부터 나의 얕은 유학을 좀 더 가다듬어 아이가 좀 더 크고, 둘째도 갖게 된다면, 올바로 가정에서부터 진정한 수신제가를 시도해볼 생각이다.



수신제가, 말이 참 좋다. 서양 고대의 문명 제국을 이룬 로마인들의 평균 수명은 25세 정도였다고 하며, 그래서 키케로는 건설적이고 교양있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덕목은 문무를 겸비하고, 명예를 중시 여기며, 거기에 안정적인 가정을 꾸미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라는 사회 공동체의 기초가 가정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가 말하듯, 서로 달리 살아온 남녀가 각자의 생활습관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몸과 마음의 합의점을 찾아 서로를 믿고 오래 살기를 결심한다는 점은, 과장되게 말하여 기적에 가깝다. 우리는 늘 그런 기적을 체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 기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우자를 믿어야 하고, 또 믿음을 주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여러 일기장을 돌아다녔지만, 이 곳처럼 정형화된 출판의 형태를 고집하는 곳은 좀처럼 보지 못했으며, 상위권의 이야기들은 주로 헤어짐에 관한 내용이었다. 타인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왈가왈부할 마음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겠으나, 여하튼 내 입장에서는, 사내대장부가 한번 가정을 꾸리고 산다고 했으면 사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석달만에 열두번의 주말을 지내며 열두번만에 결혼했기 때문에, 내게는 항상 아내가 혹시나 좀 더 알아보고 결혼할걸, 이라는 후회를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숙제 비슷한 의무가 있는 셈이다. 나는 아내와 딸을 몹시 사랑하고, 가정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는 더이상 한량이나 예술가적으로 살기를 동경하기보다, 역사의 어느 한자락에 이름을 남기기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여 가정을 건사하여 사회구성원의 한명으로서 일조하는 일 또한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유학은 여기에서도 통할테지만, 유학을 떠나서 한 명의 남편이자 아비로서, 여하튼 가정에 위화감을 주는 일은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생각도 없다. 나이를 먹으며 나도 겁이 많아졌다. 가만히 있어서 찾아오는 행복은 없다. 욕심 부리지 않고,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하게 대하며 하루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평안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



2. 술과 글 - 아직 포기할 수 없는 도락.



교회 집사지만, 술을 아직 못 끊어서 아내와 목사님의 심려가 적지 않으신 줄 안다. 교회에서까지 술 타령을 하진 않지만, 매일 한 이불 덮고 자는 아내는, 내게 대체적으로 무던하지만, 술과 교회에서만큼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내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술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며, 내가 일주일에 이틀 이상, 두 병 이상 술 마시는 일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또한 자녀들이 커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몸서리를 친다. 그 하나만큼은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서만큼 아내가 아예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하기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 일이려니와 나도 자녀가 속세에 상처를 받아 스스로 깨달아 교회에 오기보다, 그저 교회를 다니면 물론 좋으므로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매주마다 가끔씩 습관적으로 커피 마시듯 술을 찾을때마다 아내에게 자주 혼나곤 한다. 젊었을때는 습관적으로 반주를 마셨고, 어머니 아버지 눈을 피해 책을 읽거나 거리를 걸으면서도 몰래 술을 마셨으므로 아내는 크게 걱정했고, 술을 줄이도록 꾸짖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술과 커피를 많이 줄이긴 했지만, 지금도 커피를 듬뿍 마셨을때의 활력이라거나, 술을 즐겁게 마셨을때 마음 한켠이 살살 풀어지면서, 속엣말이 새듯이 나오는 기분은 무척 좋다. 술 자체를 끊을 수는 없으나, 건강을 위해서 고주망태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볼 생각이다. 안그래도 작년부터 주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져서, 언젠가 너와 이야기하다, 이제 한 잔을 마셔도 효율적으로 마셔야되지 않겠냐며, 고량주에서 벗어나 위스키들을 조금씩 알아보는 중이다.



글은 술처럼 늘상 마음을 적신다. 입으로는 체계적인 글을 쓰는 일을 포기했다곤 하지만, 아직도 몇 개의 습작을 조금씩 쓰고 있다. 몸이 한가하면 마음이 여유가 없고, 마음에서 글이 움트면 몸이 받쳐주질 못한다. 그래서 일부 작가들은 혼자 살거나, 혹은 단명하였다. 글을 쓰는 환경을 유지하기란, 마치 사회에서 격리된 도장에서의 훈련처럼 그렇게 쉽지 않은 줄 안다. 아내의 허락을 받아 퇴사하고, 기자 생활할때처럼 매일 출퇴근하듯이 집필실에서 무조건 글을 썼다는 장강명 선생이나, 여러 방송에 나오며 마치 한국의 알랭 드 보똥처럼 하나의 보편적인 직업처럼 글을 쓰고 가르치는 김영하 선생, 혹은 친애하는 나의 차현 형님(아, 연락드려야 하는데!), 매일 원고지 열 장의 글을 반드시 써낸다는 바다 건너 하루키 선생 같은 이가 얼마나 많은지 나는 알 수 없다. 내게 있어 글은 아직, 당연하겠지만 생업도 아니려니와, 그렇게 안정적인 기분으로 매일 쓸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벼락을 맞듯이, 지금 당장 내 마음 속에서 들끓어 내뱉지 않으면 안되는 누군가들의 이야기를 엮어서 여백에 채우는 것이라, 스스로 밀어내듯이 마음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며 안된다. 그러나 매일 출퇴근하고, 가정을 돌보고, 태권도를 해야하는 세속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럴듯한 일기를 쓸 수는 있을지언정, 전혀 다른 세상 속의 소설과 연결되어 있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젊은 날의 외수 선생님은 스스로 쇠창살을 단 철문 속에서 얼음밥을 드시며 글을 쓰셨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코르크 마개로 가득 찬 방에서 글을 썼다고 했다. 바로 전 문장을 쓰기 직전, 그가 미셸 푸꼬인지 미셸 푸르니에인지 마르셀 프루스트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낫는데, 저 사람들을 돌려가며 구글에 검색하니 바로 나왔다. 뛰어난 무공과 지식은 모두 몸에 배어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나오지만, 이제는 물리적인 힘보다는 배경처럼 갖고 있는 사회적 부와 권세가 더 강력하고, 지식은 이처럼 언제든 찾아서 아는 척 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실은 무엇을 많이 외우거나 알기보다, 그를 알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서 몸에 밴 품격과 고상함이 비로소 인격을 형성하지 않는가 한다.



3. 마지막, 빈(斌)


글을 뜻하는 문, 무공을 뜻하는 무- 흔히 문무를 겸비하다 할때 쓰는 글자인데, 이를 합치면 빛날 빈 자가 된다. 나는 아들을 낳으면 꼭 이름에 이 글자를 붙이고 싶었다. 내가 다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맡기고 싶었고, 내가 포기한 지점부터 아들이 출발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싶었다. 평소에 이리 생각하다 이러한 생각 자체가 내가 그토록 젊었을때부터 어머니에게 늘 무섭고 도망치고 싶었던 그 욕심이 아니었는가 싶어 화닥닥 술이 깼다. 어머니는 정말 공부하고 싶으셨고, 최선을 다해 공부하셨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셨고 그 희망은 고스란히 내가 이어받았다. 나는 어설피 젊은 부모가 되어서야 겨우 어머니의 열에 일고여덟 정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차라리 일찍 부모가 되었다며 어머니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을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나로서 크기에, 멀리 돌아서 큰 세월이 너무 길었다. 나는 늦게 어른이 되었고, 휘어지고 결핍된 곳이 많아 위태위태하게 컸다가 겨우 사람 꼴을 하고 가정을 갖게 되었다. 이런 청춘을 가졌던 내가 이름부터 벌써 지어가며 내가 다 못 다한 것을 아들이 이뤄주기 바라니,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어 스스로에게 배신감이 들 지경이고, 한편으로는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인가 한다. 아내도 너도 말도 안되는 폭력에 가깝다며 웃지만, 나는 지금도 꿈꾸고는 있다. 절대 폭력적이지 않게, 아비가 남자로서 못 다한 일을, 다음 남자인 아들이 가능하면 공유해주기를, 솔직히 당연히 못할 수 있고, 하고 싶지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하려고 시도는 해준다음에야 도저히 자기 길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남자였으면 좋겠다. 아비가 허물어지도록 약한 남자이므로, 나는 딸보다는 아들을 조금 더 원했었고, 아비의 빈 곳을 채워 강함을 공유해줄 아들이 있기를 소망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딸이 아쉽거나 서운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당연히 이 새벽녘 여백에 다 하지 못할 헛물 켤 말들이 많을 터이다. 여하튼 서른아홉, 아직 봄을 기다리기에 추운 1월 생각에는 그렇다. 나는 낡 밝아 내가 지낼 일조차 알지 못한다. 다만 풀을 뜯는 염소처럼 노을 보듯 지나온 세월을 돌아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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