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미스터 요리왕 - 요리에 전력투구하는, 한 남자의 일생

by Aner병문



스에다 유이치로 원작, 혼죠 케이 글 그림, 미스터 요리왕, S코믹스, 2019. 일본.





사람 삶, 이럴 수가 있을까? 자유롭게 살길 원했지만 몹시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선후가 좀 바뀌어,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에 자유를 갈망했던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 밑을 뛰쳐나와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었지만, 방종의 늪에 빠져 마시던 술도 훌떡 깰만큼 패가망신했으며, 남들 못지 않게 열심히 공부했다 생각했지만, 나보다 재주 많은 이들이 고독 속에 집중하다 비참하게 포기하거나 죽는 꼴도 숱하게 보았고, 스무살때부터 익힌 무공도 그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끽해야 문외한들을 상대로 오래 버티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의 눈가림이었다. 뒤늦게 NGO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그조차도 녹록치 않았다. 그나마 먹물을 먹었다고 시작한 정책팀과 학술팀에서는, 결국 한때 비슷한 학력을 지녔을 이들에게 '필드field 운운' 하는 소리를 들으며 무시당해야했고, 첫 사회 생활의 피로는 학교나 자영업 이상에서 느끼던 이상이었다. 겉보기에는 쾌활하고, 언변은 그럴듯했기에, '현장에서 일하는게 어울리겠다.' 라고 하여 유기커피와 농산물을 팔다가 마지막에는 유기농 레스토랑의 홀 업무까지 보게 되었다. 회사 입장에서야 말 잘하고, 친절하고, 일상회화 정도라면 영어로 무리없이 얘기하니 홀에서 음식 나르며 사람 대하는데 적합하다 생각했겠지만, 적어도 십대 후반부터 요리에 뜻을 두고 주방에서 쓰는 그릇부터 하나하나 배워온 밥 잘하는 유진이에게는, 그깟 영어며 친절이 무엇이길래, 갑작스레 나타나서 홀을 보는가 싶기도 했을 터이다. 생각치도 못했던 요식업계와 인연을 맺으면서 나는 몇 가지를 사무치게 배웠는데, 첫째, 무엇보다 돈 받고 전문적으로 하는 요리는 다른 업종 못지 않게 몹시 중노동이었고, 둘째, 털보 큰형님과 밥 잘하는 유진이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국내 최고의 요리인 축에 속하는 이들이었으며, 셋째, 요리는 건축과 마찬가지로 정말이지 모든 학문의 종합이라 부를만한 종착지와 같은은 것이었다. 그 유명한 브리아 사바랭의 '당신이 무얼 먹는지 말해준다면' 운운하는 이야기나, 삼총사 로도 유명한 뒤마가 '내가 만일 소설가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요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항시 주방에서 양파를 볶고 있을 터이다.' 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전까지 그냥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먹는다는 사실에만 집중했을뿐, 그 요리를 누가 어찌 만드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이 서른 하나, 뒤늦게 사회 생활을 시작하며 유기농 NGO에서 생산자의 입장을 알았고, 유기농 매장에서 물건을 팔며 소비자의 입장을 알았으며, 요식업계의 곁다리에 끼어서 비로소 식자재로 음식을 만들어, 모두를 만족시키는 과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지간히 밥 잘하는 유진이한테 혼도 나고, 또 밥 잘하는 유진이는 우리 도장으로 와서 띠를 매고 도장 훈련도 시작하게 되어 밥 잘하는 유진이와 나 사이에 공유할 만한 여유가 생겼을때, 밥 잘하는 유진이는, 지금도 내게 사무칠한만한 가르침을 하나 전했다. 나는 그 때까지 요리에 서사가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단지, 앞 요리가 뒷 요리의 맛을 가리지 않도록, 약한 맛에서 진한 맛으로 천천히 가야된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급하게 뽑은 이딸리아 레스토랑 출신의 작은 형님이 첫 코스 요리를 선보인 날, 나는 연달아 이어지느 문어와 오징어의 향연에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나 전문 요리인인 털보 큰형님과 밥 잘하는 유진이의 표정은 영 아니올시다 였다. 그 당시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을 작은 형님이 안쓰러워 먹는 입장에서 편을 들어주려고 했다가 따로 밥 잘하는 유진이에게 불려가 혼만 더 났다. 대체, 코스가 뭔지나 알고 그러는거야? 코스는요, 서로 겹치는 음식도 없어야 하구요, 앞 요리와 뒷 요리가 부드럽게 이어져야 하구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요리를 다 먹고 났을 때, 내가 오늘 뭘 먹었구나 명확히 남아야 되는 게 코스예요, 저 오빠처럼 그냥 무턱대고 창고에 식자재 뭐가 남아서, 그냥 되는대로 만드는게 아니라, 오늘 내가 뭘 어떻게 먹여야겠다 라는 주제 아래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하게 따져가면서 만드는게 코스라구요! 그때 나는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때 한마디 되묻고 싶었던 말은, 가슴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그건, 문학이구나. 소설이나 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기승전결의 서사를 가져야 하는 것이구나. 나는 음식을 만드는 쪽이 아니며, 전문적인 기술을 훈련받은 적도 없다. 집에서 지친 아내를 위하여 가사노동에 더하여 밥을 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으나, 그 정도의 소꿉장난 같은 살림으로 전문 요리인들의 세계를 아는 척할 수는 없으려니와, 비로소 요리가 '왜' 하나의 예술의 반열에 드는 것인지도 비로소 몸서리치게 알게 되었다.





그 때의 연을 맺어 아직도 유수의 전문 요리인들 몇의 연락처는 알고 있고, 업장도 알고 있으며, 심심찮게 쉽게 먹어볼 수 있는 음식도 먹어보게 된다. 단순히 돈으로 사 먹는 것이 아니라, 물론 할 수 있는 한 사례도 지불하지만, 일단 연이 닿아 먹어볼 수 있는 것이 크다. 차현 형님과 내가 각자 작가와 독자로서 만난 것과 비슷하다. 그 때마다 나는, 단순히 글을 읽거나 일기를 쓰는 것에 만족하는 나의 수준과 전문 작가와의 수준이 다르다는 점, 또한 사회 체육인으로서의 나와 전문적인 생업 격투기 선수와의 차이점, 고등교육의 언저리에서 포기한 나와 오랜 고행 끝에 학위를 딴 이와 격차 등을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스스로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이기 위해 불과 물, 쇠 앞에서 애쓰는 이들은 모두 위대하다.





여기, 지방의 격식 있는 전통 요릿집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다른 명인의 제자로 들어가 고군분투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옛 중국 무술의 명인들도, 아비로서의 정을 끝내 지우지 못해 혹시나 자녀의 응석을 받아줄까봐, 눈물을 머금고 사랑하는 자식들을 다른 스승에게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 역시 기초는 가능한 내가 떼어줄 생각이지만, 아이가 커서 띠를 매고 도복을 입게 되면, 마땅히 나의 스승이신 사범님께 태권도를 배우게끔 해야 나의 도리이다. 마찬가지로, 젊은이는 도쿄의 격식 있는 요리집에서 오랫동안 여러 가지를 익히게 된다. 원작이 따로 있는 만화이기도 하거니와, 글을 만화로 다시 꾸밀때, 원작자는 음식 만화가 아니라, 요리인에 대한 드라마를 만들자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려 41권에 달하는 이 커다란 서사는, 단순히 음식이나 기술에 그 내용이 머무르지 않는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요리 기술을 마치 소년만화의 전투 설정처럼, 비밀스러운 필살기마냥 극적으로 터뜨리며, 승부로 몰고가는 미스터 초밥왕과도 다르고, 요리를 통해 사회의 모든 것을 진단한다는 거시적 담론은 좋지만, 결국 모든 갈등가 맛있는 음식으로 해소되는 맛의 달인과도 다르며(맛있는 음식 먹으면 누구나 화는 덜 나겠다만), 시간과 분량을 안배하며 무조건 많이 먹어야 하는 먹짱이나 식탐정과 다르고, 그렇다고 음식 자체는 무엇이든 상관없이 결국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심야식당과도 다르다. 심야식당은, 사실 요리 만화치고는 아주 특이한 구성인데, 사실 전개되는 짧은 이야기 속에 다른 음식들을 넣어도 서사 자체는 방해되지 않는다. 몇몇 음식들을 제외하곤, 서사와 인물을 구성하는 음식이 반드시 '그 음식' 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최근 사이타니 우메타로의 오늘의 버거 역시, 작가를 대변하는 주인공 진구지 사토시가 전직 유수의 식품기업 출신의 풍운아답게 전 세계 햄버거 및 식자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대변하며, 거기에 덧붙여 끈기와 노력까지 덧붙이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식상했던 듯 '무슨 맛있는 햄버거 하나 먹였다고 일이 다 해결되냐, 이제 이런 전개는 그만할때도 된거 아니냐.' 는 차가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제 음식이나 인간미 하나로 문제가 해결되는 세상은 지나버린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미스터 요리왕은 그런 면에 있어서, 출판연도 자체도 약간 예전의 만화이긴 하지만, 주인공부터도 휴대전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 등, 옛날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정통 일식 요리인으로서의 한 청년이, 다른 격식 있는 집에서의 수행을 통해, 작게는 요리 기술로부터, 사회인으로서의 선후배 관계, 음식점 운영, 손님맞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요리에 관한 모든 것을 겪으며 인격적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사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되고자 온갖 기술을 익히며 원숙해져가는, 담백한 격투기 만화 '올라운더 메구미' 와도 비슷하다. 요리인이자 경영자 입장에서 성공코자 하는 종합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그 유명한 '라면요리왕' 시리즈와도 비슷한, 라면요리왕 시리즈가 라면이라는 집중된 소재에서 대중들의 기호를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숨가쁘게 시대의 변화에 주목하는 만화라면, 미스터 요리왕은 오래전부터 장대하게 내려온 일식의 전통을 현 시대에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그 전통을 전승하는 젊은이가 현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차분한 호호흡으로 보여준다.




최근에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우울한 아내의 기분 전환으로 결국 부부가 모두 갈 수 있게 되어 털보 큰형님의 팝업 레스토랑 자리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다. 형님은, 뛰어난 요리인이지만, 이미 익숙한 요리의 깊이를 선보이기 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조합의 의미를 찾고자, 자신의 음식을 좋아하는 이들을 종종 초청하여 여러 조합을 선보이곤 한다. 이번 모임에는 전통주와의 조합이었고, 형님은, 스뻬인 등지의 더운 지방에서 와인에 벌레가 꼬이지 않도록 잔 위에 덮어둔 빵과 함께 먹고 마시던 데부터 유래하던 타빠스와 칠리 콘 까르네, 된장 우동 등을 선보여서 우리를 기쁘게 했다. 이십대 초중반의 젊은이들과 함께 하면서, 나는 과연 내 딸이 커서 이러한 맛을 알고 지키고 전해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결국 모든 배움은 갈망으로부터 나온다. 애초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그리워할 수도 없다. 요리인들이 맛을 지키고, 공부한 이가 가르침을 이어나가며, 무공의 초식이 전수되는 것처럼, 부모는 알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녀가 출발하길 바란다. 처자식이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즐겁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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