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철도원 삼대 - 노동과 역사를 이야기하기에는 3대로는 모자랐던.

by Aner병문

황석영, 철도원 삼대, 창비, 2020, 한국



아내와 나는 함께 교회를 다니고, 서로를 몹시 사랑하지만,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아내는 교회에서 나고 자랐다 말해도 될 정도로 독실한 어머님 밑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 술을 좋아하지 않으며, 체질상 받지도 아니한다. 그래서 그런지 개신교 이외의 다른 종교에 대해 논하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따로 종교는 없었으나, 불경과 동양철학을 오래 읽었고, 마음이 편해서 절에 몇 번 다니다가 개인적 경험으로 후에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술은 대학에서 배웠으나 이후 몸에 인이 박혔는지 현재까지도 책 읽거나 훈련을 하듯이 습관적으로 자주 찾는다. 유일신을 믿지만, 성경이 진리라고는 생각치 않으며, 필요하다면 다른 종교의 경전이나 인문학적 저서를 인용한다고 해서 내 신앙을 부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하튼 아내는 내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과한 훈련이나 음주를 허락하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가끔 내공 있어 뵈는 낡은 술집이나, 혹은 위스키 및 독주를 취급하는 상점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 에비에비, 뭐하능교? 차라리 책을 사줄게, 책 보러 가입시더, 해서 나를 헌책방으로 이끌고 간다. 하기사 소주값도 밖에서 사마시면 한 병에 오천원이요, 헌책방에서 그 값으로 잘 고르면 평생을 두고두고 행복할 책들을 고를 수 있다. 황석영 선생의 책들도 주로 그런 곳에서 만나곤 한다.


황석영 선생을 처음 알게 된건, 아직 한창 더 젊을 때, 내 업장에서 열심히 일할때였다. 지금은 거의 없어진것 같지만, 한때 편의점에서도 소설류를 취급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봐야 악명높은 공항 서점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지만, 때마침 강호동 씨가 한복을 입고 도사 흉내를 내던 프로그램에서 황석영 선생이 출연해서였을까, 황석영 선생의 여러 책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때 아마 그 유명한 바리데기, 를 먼저 사보았는지, 아니면 잠시 나를 마음에 들어했던 연상의 어느 부인께서, 매일 도복에 긁혀 흉터 있는 얼굴로 낮에는 커피 팔고, 밤에는 술 팔면서, 짬짬이 종합격투의 기술을 익히고 책을 읽는 내가 귀여웠는지, 친필로 몇 자 적어주신 개밥바라기별이 먼저 였는지, 벌써 나는 이 밤에 흰 여백을 메우면서 좀처럼 잊혀지지 않으리라 여겼던 청춘의 한 자락을 또 이렇게 잊었다. 여하튼 그러한 계기로 황석영 선생을 정신없이 읽었던 것만 기억났다. 김성동 선생처럼 조숙했으나 그는 지금도 알 수 있듯 골격이 남달랐고, 태권도와 권투 등도 꽤 수준급으로 익혔던 듯 하며, 스물이 되기도 전에 등단했고, 아버지처럼 전국 곳곳을 방랑하며 스스로 생산적인 고생을 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학교를 스스로 나왔다고 생각했고, 밑도 끝도 없이 노점상으로 시작하여 내 스스로 고생을 하며 삶을 못살게 굴면, 부모님 밑에서 뒤늦게 나와 나만의 자아를 찾을 수 있다 믿던, 아직 철 덜 든 20대였다. 나에게 사춘기는 너무 늦게 왔고, 철은 더 늦게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자아를 세우고 자신의 삶을 돌파해나갔던 황석영 선생을 몹시 동경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낮밤이 한참 바뀐 생활이었고, 나는 새벽 5시쯤에야 술을 배우던 바Bar의 문을 닫고, '아가씨' 들을 전부 집에 바래다준 뒤에야 비로소 잠이 들었고, 다시 점심때쯤 부시시 일어나 무공을 익히고, 오후에 까페 문을 열어 보드게임을 가르쳐주고, 차를 팔다가, 밤이 되면 다시 바로 나가 잔을 닦으며 술을 배우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제 스스로 대단한 낭만을 누리고 있다 착각하던 세월이었다.



말이 길었는데, 황석영 선생을 한동안 열심히 찾아 읽었으나 근작으로 갈수록 조금 시들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바리데기나 개밥바라기별, 심청-연꽃의 길, 오래된 정원, 무기의 그늘, 객지, 장길산- 무엇보다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을때부터, 이보다 더한 '로드무비' 는 나올 수 없다 생각했던 삼포 가는 길까지, 황석영 선생의 글은 유용주 선생이나 박노해 시인처럼, 스스로 몸으로 일구어 겪어낸 삶의 경험이 가득했고, 거기에 항상 낭만의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적어도 강남몽부터였을까, 뒤로 갈수록 그의 글은, 스스로 일궈낸 경험보다, 마치 자료로만 조사한듯한 르뽀에, 적당히 등장인물만 꾸며 써넣은 듯한 인상을 많이 받아서, 젊었을때처럼 마음을 강하게 흔드는 충동이 오지 않았다. 물론 나 같은 백면서생 평범한 독자가 감히 세계적인 대가를 헤아릴 수야 없겠으나, 그래도 한때 애독했던 이로서, 아쉬움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그 인상은, 이번에 오랜만에 헌책방에서 깨끗한 상태로 발견하여 사서 읽은, 철도원 삼대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철도원 삼대는 마치, 그 유명한 펄 벅 여사의 대지 3부작처럼(보통 1부만이 많이 번역되어, 왕룽이 죽으면서 끝나는 줄 아는 경우가 많은데, 그 후대의 이야기까지 3부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방의 작은 소군벌로서 삶을 꾸려나가는 삼남 왕싼-왕삼의 삶을 다룬 2부가 제일 재미있었다.) 독립운동을 겸한 노동운동을 했던 어떤 집안의 이야기다. 아버지 이백만 - 아들 한쇠/두쇠, 즉 이일철과 이이철 - 손자인 이진오까지 내려가는 3대에서, 아버지 이백만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현실적인 안정을 추구하고, 그래서 당시 일본이 조선을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가설한 철도에 착안하여 그 시스템에 안착하기를 바라며, 한쇠와 두쇠 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인으로서의 마음까지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백만과 장남 이일철에게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은 못해도, 조국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데다 장남으로서 집안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장남 한쇠-이일철이 철도국 직원이 되어 일본인들에게 기술을 배우고 기차 조타수가 된데 비해, 공장 노동자가 된 차남 두쇠- 이이철은, 노동운동에 헌신하게 되고, 노동운동 역시 자본가 역할을 하는 일본을 타파해야 한다는데서 결국 독립운동과 결이 닿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반동의 맥은, 끝내 손자인 이진오에게까지 가게 된다. 소설의 서막을 열기도 하는 이진오는, 모기업의 착취에 반대하여 해고된 노동자들을 대표하여 폐허가 된 공장 옥상에서 버티며 투쟁시위를 하는 이다.



성경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뱀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먹는 바람에 낙원에서 쫓겨나 노동과 출산의 고통을 지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는 소은이를 낳았고, 나는 혼자 벌어 두 처자식을 먹이는 입장이다 보니 이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 부부간에 피차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맑스는 노동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했다. 하기사 일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자는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을 해서 삶을 건사한다. 그러므로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이는 많지 않다. 철도원 삼대를 읽으면서 노장의 필력은 거장으로서 건재하고, 활력이 넘쳐 좋았다.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이 분리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루어지고자 노력했으며,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스뻬인이니 러시아니 하는 외세의 이른바 '근본 라인' 에 집착하여 국내에 걸맞는 운동 형태가 효과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좋았다. 그러나 소제목에 썼듯이, 삼대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하기에는 분량이 모자랐고, 노동 운동의 절절함을 말하기에는 삼대로도 부족했다. 소설의 말미에도, 노동운동은 완결되지 못하고, 또다시 누군가가 올라갈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되풀이된다. 모든 사회적 운동이 그렇듯이, 노동운동 역시 더이상 필요가 없어지는 사회를 지향한다. 즉 자기소멸을 위해 운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홍성원의 무사와 악사, 에서처럼, 악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노동운동 역시 오히려 더욱 심화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 수는 줄어든다는데, 경쟁은 오히려 격화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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