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988일차 - 훈련은 늘 체계적으로 꾸준히!
최근에 두어 번, 난감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 (추억의 PC통신 게시판식 이모티콘..ㅋ)
아내가 처가에서 소은이와 함께, 어머님께서 남겨두신 흔적들을 모두 정리하고, 또한 아이의 짐을 정리하여, 어머니와 아버지 차를 타고 함께 올라온 저녁의 일이다. 일주일 정도 빈 집에서 혼자 지낸 나는, 적적하고 힘들어서, 아내와의 약속을 지켜 혼자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고, 술 약속은 반드시 아내가 아는 친구들하고만 하여 '감시하에' (믿을 녀석 하나 없네! ㅋㅋ 나보다 내 아내의 말을 더 잘 듣다니?! ㅋㅋ) 술을 마셨으며, 퇴근 이후의 시간은 전부 도장에서 연습하고, 집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그리하여 한 주가 끝나는 주일 저녁에 아내와 딸, 어머니 아버지가 오셨을때, 당연히 식사를 대접해야 하므로, 내가 어렸을때부터 자주 갔던 해물찜집으로 갔으나, 그때 어머니는, 아직 젊으신 사돈의 상에 많이 상심하시어 건강에 바짝 긴장하신 터였다. 술 먹지 말어라잉, 정 물라면(먹으려면) 한 병만 나눠마셔, 머 좋은 것이간디 느그 아부지랑 그렇게 술을 먹을라 해쌌냐? 나도 아버지도 오랜만에 뵈어 그래봐야 17도짜리 화학소주 한 병 둘이서 나눠 마시는게 좋을리 없다. 부자간에 서로 눈치만 보면서, 언제 적어도 한 병을 더 주문하나 하던 찰나에, 소은이가 우유를 다 마셔버렸다며, 어머니가 빨리 가서 맞은편 편의점에서 우유 좀 사오라셨다. 우유 사오면서 어머니 좋아하시는 꿀차라도 사면서 한 병만 더 마신다 해볼까 어쩔까 생각하다, 편의점에서 나오면서, 웬 소년들과 쾅쾅 연달아 부딪혔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하면서 얼른 고개를 숙였지만, 솔직히 문 열면서 서로 같이 부딪힌 거라 내 잘못만은 아니었다.
소년들은 세 명이었고, 나보다 조금 더 작고 많이 말랐으며, 입과 귀와 코에 웬 구멍을 많이 뚫고 고리를 주렁주렁 달았는지, 바다 건너 대륙의 토인들같기도 했다. 기껏해야 중학생들 정도 되어보이는 소년들이었는데 그 중 대장격인 듯한 소년이 우렁차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나머지 둘도 씨부렁대면서 나를 훑어보았다. 일단 포위당하면 안되니까, 나는 뒤로 두어 번 크게 물러나면서 세 사람을 빠르게 위아래로 살폈다. 그들의 머리는 내 목젖 정도에 왔고, 모두 말랐으며, 무기를 숨긴 것 같지는 않았다. 내 키도 160을 겨우 넘기니, 그렇게 크지도 완강해보이지도 않는 어린 소년 셋, 솔직히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할 수 있다고 진짜로 하는 사람이 어딨어. 평소 나는 도장에서 절대 싸우지 말라고 가르쳤고, 져주라고 가르쳤고, 빌어서 해결된다면 빌라고 가르쳤다. 맞고 오는 것과 맞아주고 오는 것이 다르듯이, 지는 것과 져주는 것이 다르고, 져주는 것은 진짜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방어는 도망칠 곳이 없을때, 공격은 벗어날 수 없을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가하는 일이라고 늘 가르쳐왔다. 더군다나 솔직히 스무살도 안된 학생들하고 대거리해서 뭐하나, 나 지금 빨리 가서 아버지랑 술 한 병 더 마셔야 하는데, 그 생각밖에 없어서 나는 그냥 계속해서 아이고, 미안합니다, 제가 잘 못 봤습니다,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하면서 허리를 숙였지만, 사실 고개를 숙이진 않았고, 눈을 살짝 치떠서 계속 그 친구들 어깨와 허리만 보고 있었다. 혹시나 바로 치고 들어오면 어떻게 막고 어떻게 피해서 빨리 도망쳐야지, 술 살짝 들어간 머리가 팽팽팽팽 막 돌고 있던 차였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흐르자, 또 대장 소년이 뭐라고 욕짓거리를 하면서, 야, 가자, 하고 나머지 두 명을 끌고 편의점으로 쑥 들어갔다. 담배라도 사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고, 고맙습니다아! 하면서 얼른 해물찜집으로 들어갔다.
해물찜집은 큰 통유리로 싸여 있었고, 아내는 그 유리를 마주보며 앉아 있었는데, 헤헤 웃고 있길래 내가 밖에서 싹싹 비는 모습을 보고 웃겨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상황이나 설명하려고, 소은엄마, 밖에서 나 하는거 봤는가? 아따, 사람 웃기는 겁나게 웃어쌌네, 묻자, 아니오? 내 소은이 재롱 보고 있었어요, 어머이 아버이하고, 그래서 웃은긴데, 먼 일 있었능교? 하기에 간단히 상황이 그래서 빌고 그냥 상황 종료했다, 하자 뜻밖에도 어머니가 허공을 막 손으로 긁어내리시면서, 그려,그려 니가 잘한거여, 니가 져준거이 잘한거여, 갸네들 한대 쳐부러야 뭐허냐(칠 생각도 없었는데? 세 사람이었는데?) 잘 생각한거여, 계속 그러시길래, 아따, 그러믄 어무이, 나 아부지랑 한 잔만 더 먹네요잉? 해서 재빨리 한 병을 더 챙겼다. 실제로는 좀 더 웃겼는데, 막상 문장으로 옮기니 별로 안 웃겨서 아쉽다.
최근에 아내의 허락을 받아 도장 다녀오고 늦게 집으로 돌아올때도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었다. 내가 탄 버스에는 늦은 시간이라, 젊은 여학생 하나, 우리 아버지 또래의 연세 지긋한 신사분 하나, 나, 이렇게 셋이서 만약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남쪽으로 진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버스 기사님이 차를 세우시더니 진짜 질펀하게도 창문을 열고 욕을 하시었다. 밖에 있는 택시 기사님과 싸움이 붙은 것이다. 버스 기사님이나 택시 기사님이나 서로 어찌나 욕설이 걸판지던지, 게다가 기사님 운전이 점점 격렬해져서, 우리 셋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이번 정류장에서 내려야겠다, 하고 내렸다. 다행히도 집과는 두어 정류장 떨어진 곳이라 충분히 걸을 만했다. 그런데 버스가 정류장에서 멈추니, 그 택시가 버스 앞을 가로막고 끼이이익 멈추더니 화가 잔뜩 난 택시 기사님이 씨근덕거리면서 내렸다. 버스 기사님 역시 오냐 하는 식으로 씩씩대며 마주 내렸다. 나는 아내가 평소 다른 사람 싸움에 절대 끼어들지 말고 집에 얼른 들어오라고 신신당부해서 총각 때처럼 적극적으로 끼어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뭔 일 있으면 막기는 해야지 싶어서 서너발 정도의 간격만 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두 기사님들은 거리에 질펀한 욕설을 던지면서, 두어번 서로의 상체를 밀었다. 여기까진 익숙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좀 솔직히 웃겼다.
솔직히 어른들의 지혜라고도 할 수 있고, 어쩌면 운전하시는 분들끼리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성질대로 해서 다치거나 하면 손해보는 사람은 본인이 아닌가. 그래서였을까? 두 분 모두 약속이나 한듯이 양손을 주머니에 꽂더니, 팔꿈치를 가지고 상대의 배와 가슴을 찍으면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무슨 배치기 싸움 같기도 했고, 캥거루 다툼 같기도 했다. 이 새끼가? 이 새끼가? 하면서 욕설은 날카로웠지만, 솔직히 옆에서 보는 나는 진짜 웃겼다. 겉으로 대놓고 웃을 수는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차라리 저렇게 하시는게 다행인거 같기도 했다. 때마침 택시에서 젊은 아가씨 하나가 내리길래 아, 여자 손님이구나 했는데, 아빠! 아빠! 진짜 왜 그래, 아빠! 하면서 택시 기사님을 끌어당기기에 그제서야 따님인 줄 알았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저기요, 좀 말려주세요!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나 역시 딸 가진 애빈데 참 거기서 더 몸을 사릴수가 없어서, 버스 기사님의 오른쪽 팔짱 (ㅋㅋㅋ) 을 왼손으로 부드럽게 나꿔채면서 명분을 좀 드렸다. 아이고, 그만하셔요, 기사님도, 저쪽 기사님도 딴 사람도 아니고 따님 데리고 가시는 길인데, 이제 그만하셔요, 하면서 ㄴ자 서기로 버틴 뒤 중심을 뒤로 끌면서 버스 기사님을 살살 뒤로 끌었다. 그런데 웬걸, 버스 기사님도 입만 거칠다 뿐이지 순순히 부드럽게 따라오시는 것이다. 그제서야 버스 기사님도 명분이 필요했구먼 싶었다. 나는 오른손잡이니까 전투경찰 시절부터 상대를 오른손으로 방어하려고, 보통 왼손으로 상대 몸을 많이 막는 편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버스 기사님은 순순히 부드럽게 끌려오셔서 버스에 타셨다. 오히려 따님이 말리는 택시 기사님 쪽이 기가 살아서 따님을 밀치고 두어번 버스 쪽으로 다가왔으나, 그때마다 내가 막았다. 아이고, 왜 그러셔요, 따님 데리고 집에 좋게 가시는 아버님이, 버스 기사님도 이제 탔으니까 그만허셔요, 좋게 집에 가시면 되죠, 왜들 이러셔요. 하면서 내가 길을 내주지 않았다. 젊은 따님도 고맙다면서 다시 택시 기사님을 데려다 차에 태웠다. 두 기사님이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나서야 정작 버스에 탔었던 우리 세 사람은 피식 웃으면서, 양쪽 기사가 다 똑같구먼, 자 우린 걸어갑시다, 해서 걸어왔다.
이 이야기를 아직 도장에서 사제사매들에게 해주진 못했지만, 항상 거리에서 불필요한 싸움에 휘말리지 말기를, 싸움에 휘말린다면, 기꺼이 져주거나 (안 다치게) 맞아줘서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진짜 강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사범님을 도와 태권도를 알려 드리고 있다. 태권도에는 약 삼천여가지의 기술이 있으며, 이십대 떄의 나는 분명히 다양한 기술을 거리에서 써서 상대를 쓰러뜨리고 나를 각인시키려고 안달이 난 사람이었다. 마흔을 앞두고 나서야, 진짜 이겨서 다스려야할 사람은 내 스스로이며, 아무 일 없이 집으로 평안히 들어와 처자식 웃는 모습 보면서 집반찬에 고량주 한잔 기울이는 일이 진짜 행복임을 다시 깨닫는 요즘이다. 그래서 회사 일을 대략 끝마치고 시간을 내어 도장에서 다시 연습을 했다. 삼일 틀의 절반 이상을 왔다. 내가 틀을 연습하고 헤비백을 치고 무공을 익히는 일은, 누군가를 때려눕히기 위함이 아니라, 체계적인 움직임을 반복하여 몸을 단련하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싸움질을 배우고 싶으면 싸움을 많이 하면 된다. 싸움을 많이 하면 주변에 남는 이가 없다. 후회하기 전에 그 허리에 띠를 매주고 올바른 움직임을 알려주는 일이, 퇴근 후 아내가 허락했을때 도장에 와서 내가 하는 일이다. 태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