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관계 - 어쩌면 맞서기와도 같은 것.

by Aner병문

난 사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라는 두루뭉수리한 말을 '팩트' 라는 말만큼이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1=2 만큼이나 명약관화하게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팩트' 가 과연 인간사에 얼마나 있을까? 상대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겠다는 고집을 부리는 이들만이, 마치 생크림을 걷어낸 케이크마냥 '팩트만 말해, 팩트만!' 이라며 신경질을 부리기 일쑤다. 즉, 팩트 라는 단어는, 사실을 뜻하는 이국의 단어와는 전혀 달리, '너의 감상이나 의견 같은건 전혀 듣고 싶지 않으니, 그건 빼고 말해!' 라는 패악질이나 다름없다. 더 좋게 말하는 방법도 있을 터이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라는 말 역시 실은 본인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상황을, 마치 모두가 공유하는 상식인양 비꼬면서 끌어다불일때 주로 쓰이기 마련이다. '이건' 대체 뭘 정확히 지시하는 대명사이며, 아니긴 아닌데, 뭐가 정확히 누구에게 어떻게 아니라는 건지, 아무런 설명도 없으면서, 그저 눈살을 찌푸리며 빈정거리는 어투로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라는 식으로 말을 탁 던져버리면, 마치 아무 이유없이 던져진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보는 양, 내가 도대체 이 말을 받아서 뭘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돌려줘야할지 그저 알 수 없고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정말 적어도 나는 말을 할때, 사실 한국어나 한자어를 쓸 수 있는데, 굳이 외국어나 경박한 속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특히나 '팩트' 나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는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한 용도로 쓰이는 단어를 받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이런 말을 던지는 내 스스로도 괴롭고 용납이 안된다. 그런 나야말로 정말 아니지 않나요, 다.




그러므로 그러한 맥락에서 최근에서야 느끼게 되었는데, 사실 아내는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일뿐, 최근에서야 비로소 개인별 대중매체의 발달로 그저 더욱 자주 드러나게 되었을 뿐이라지만, 여하튼 '내가 납득되지 않으면'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 짜증내고 화를 내며 상대를 아프고 다치게 하는 사람들이 정말 드물지 않게 보인다. '팩트' 만 말해주지 않거나 '이건 좀 아니라는데'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욕을 하거나 자해조차도 넘어서 상대에게도 위해를 가한다. 분을 못이겨 거리를 돌아다니다 전혀 모르는 이를 벽돌로 내리찍거나, 발로 차거나 하는 일이 부지기수니, 이제는 차라리 원한이 있다고 하면 그러려니 납득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작년 여름쯤의 일인데, 이미 경찰이 왔다지만, 나는 퇴근길 젊은이들이 주로 노는 역 앞 술집 많은 거리에서, 저에게 전화번호를 넘겨주지 않았다고 벽돌로 머리통을 찍어 젊은 아가씨 정수리를 깨버린, 머리 노란 젊은 남성을 아직 기억한다. 다음날 분명히 신문이건 뉴스에건 나왔겠지 싶었는데, 웬걸, 일언반구도 없었다. 전투경찰 생활을 2년 하면서, 신문에 나오지도 않을 수많은 범죄가 하룻새에 일어난다는 사실도 알았고, 세상의 모든 일이 전부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바로 눈 앞에서 본 일인데, 조만간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지난날의 일화로 끝나버린다니, 놀랍고 안타까웠다.



하여간 내가 우선인 세상이 되었다. 외수 선생님은 살아 생전,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그 분의 소설, 황금비늘에서 '나뿐인 놈- 곧 나만 아는 놈들이 나쁜 놈들이 된다'고 쓰셨다.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니 틀리지가 않는 말씀이다. 내 기분을, 내 욕망을 맞춰주지 않으면 죽어 마땅하다. 내 기분은, 약을 써서라도 좋아져야 하기에, 내가 술 먹는 수준은 어림도 없이 온갖 각성제며, 향정신성 약물들이 자꾸만 밤거리를 좀먹어가고 있다. 소위 말하는 '약쟁이' 를 본 것은, 딱 한 번의 기억이지만,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인간 꼴을 한 짐승이 있다면 바로 그럴 터이다. 대화는커녕, 먹고 자는 것도 잊고, 오로지 하나의 자극만 갈구하면서 침흘리며 주변을 뱅뱅 돌았다.



취미로 익혀온 무공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나는 각종 대련이나 스파링, 겨루기, 맞서기 등이 곧 인간관계와 똑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온지도 오래 되었다. 따지고보면 격투의 기술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대화의 방식이다. 설득되지 않는 이에게 최종적으로 내 의지를 관철시키고야 말겠다는 물리적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타격과 관절을 막론하고, 상대를 맞닥뜨릴 때, 나는 내 공격이 통하면서 상대의 공격이 닿지 않는 거리를 늘상 조절해야 하고, 제아무리 열심히 훈련한 공격이라도 상대에게 통하지 않으면, 내 노력이 모자랐음을 인정해야 하며, 내 방어가 무력하다면 상대가 나보다 나은 이임을 인정해야 한다. ITF태권도의 맞서기는 공식 1회에 2분을 넘기지 않으며, 30초 쉰 뒤 1회를 더 진행한다. 그 짧은 시간에도 상대와의 거리, 각도, 빠르기, 무게 등을 생각하며 나의 흔적을 상대에게 남기고, 나는 상대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고민하느라 머리가 타고 몸 끝이 날아갈 듯하다. 하물며 사람 간의 관계일까. 불가근 불가원-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말라고 누가 말했던가. 인간 관계의 조절은 맞서기만큼이나 어렵다. 단 한번도 맞지 않고 상대만 야무지게 때리는 절대적인 거리가 없듯이, 절대로 내가 상처받지 않으면서, 상대와 사랑만 주고 받을 수 있는 절대적 거리 역시 없을 터이다. 사람과 사람 역시 주먹처럼 마음을 주고받아야 비로소 진심을 알 터이다.



가장 소중한 벗이 몇 남지 않았다. 사실 내가 제일 철이 늦게 들어, 나는 엄격한 부모님 밑에 자랐다는 사실을 핑계삼아, 어렸을 때부터 나의 철들지 않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합리화했으며, 나의 불쌍함을 알면 당연히 누구나 날 사랑해줄 줄 알고, 애정을 구걸하며 이십대를 보냈다. 그럴듯한 책 몇 권을 흉내내며, 요사한 말주변으로 사람을 홀리고, 내가 불쌍하니 마땅히 내가 사랑받을 줄 알고, 들을 준비도 되지 않은 이들을 귀찮게 굴면서 인내심을 바닥내고, 내 멋대로 그 선을 넘으려 했다. 조금이라도 철이 들고, 내가 부족했음을 깨달은 건, 최선을 다해 내게 말해주고, 화내주고, 때로는 연락없이 멀어지고, 고독을 주어 스스로 침잠할 시간을 주었던 소중한 벗들 때문이다. 그 벗들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야, 소중한 인연들에게 상처주어, 내 스스로의 복을 찬 뒤에야 나는 아슬아슬하게 정신을 차렸다. 타인의 선을 함부로 넘었듯이, 내 스스로 선을 더 많이 넘었다면, 난 단순히 한 번의 실수로 끝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는게 그렇게 무섭다. 부끄러울 치 자는, 그래서 귀 이 자 옆에 마음 심을 붙여쓴다. 마음을 다해 상대방의 소중한 말을 들으란 뜻일게다.



그 유명한 하루키는, '돈이 없는데 위스키를 마시고 싶다면 조니 워커를 마시라' 고 말할 정도였다. 조니 워커 블랙은 블렌디드 위스키 중에서도 완벽한 균형을 자랑한다고 들었다. 지난 겨울에 처음으로 커티삭을 넓은 잔에 따라 와인빵과 치즈, 육포 등 향이 덜하고 배가 부르지 않은 안주와 곁들였더니 고량주와는 또다른 풍미가 몹시 매력적이었다. 시간을 미루고 미뤄 너와 곽선생을 볼 수 있게 된 날에, 나는 조니 워커 블랙과 레드와 추사를 각각 한 병씩 사서 아내와 함께 서울 북쪽까지 건너갔다. 마치 왕희지의 다섯째 아들 왕휘지가 눈 내리는 밤에 섬계의 대규를 찾아가는 설중방우의 고사처럼, 그렇게 갔다. 흥이 다해 돌아오지 못하고, 술이 없어 돌아왔다. 조니 워커 레드는 약간 더 거칠었지만, 블랙은 넓은 잔에 슬쩍 풀어놓으니 향이 가득 진동하여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만으로도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술 향처럼 늘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 해준 친구들과 더불어 아내와 실컷 수다를 떨고 돌아왔다. 그 날 너는 역시나 파초처럼 풀잎 같은 옷을 입고 오징어부추전을 다섯장이나 부쳐주고, 달걀볶음밥을 해주고, 닭을 넣은 미역국에, 육회와 생고기를 더해주었다. 사이사이 내려준 커피와 호두과자도 맛있었다. 가끔 있는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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