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처자식을 잘 건사해야 마땅하다
황지우 시인은, 내가 사랑하는 곳마다 폐허라고 자조하였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총각 시절, 나는 하는 것마다 실패했고, 마음을 드러낼수록 오히려 민폐가 되었다. 열심히 할수록 어그러지므로 나는 우울하고 슬퍼서 자연스레 늙은 달팽이처럼 혼자 되었다. 두 번의 백수시절을 거치며, 나는 지갑 속 한 푼도 없어, 읽은 책을 계속 읽었고, 새 책을 보고프면 걷고 걸어 도서관의 책을 빌렸고, 배웠던 기억을 살려 산 속 나무를 맨손발로 치고받았다. 커피가 마시고프면, 탈취제용으로 내놓은 동네 까페 커피가루 가져다 한약 달이는 보에 싸서 뜨거운 물 부어 마셨고, 술을 마시고프면 착한 너에게 구걸했다. 너가 퇴근할 동안, 먼저 약속잡은 감자탕 집에서, 나는 김치에 먼저 소주를 시켜다 연달아 들이키며 책장 넘겨 너를 기다렸는데, 너는 사람이 예의가 있어야 한다며 엄격히 혼냈다. 비단 가진 게 없을 뿐.아니라 책 바깥에서 배워야할 것도 많은 시절이었다.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만 보면 하루가 가던 그 때, 햇놓은게 없어도 피곤하던 젊음이었다. 뉜가 내 몸을 정수리부터 칼날 대어 수박 먹듯 짜개면, 피 대신 녹슨 태엽들이 짜그르르 쏟아져나올듯한 나날들이었다.
그로부터 십여년이 지나, 나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또 한 여자의 아비가 되었다. 누구나 겪을법한 굴곡을 겪었으나 내가 모자라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겪었다. 뒤늦게서야, 다른 철든 사내들이 능히 하는 세상살이를 하느라고, 내 작은 머릿속은 낯선 말과 글로 가득해 다글다글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아내는 오늘이 월급날 아니냐며, 늘 여보가 고생해서 또 한 달 걱정없이 지냈다며, 생고기를 떠왔고, 이제 세 돌이 지난 딸내미의 애교는 유별났다. 아내는 고기와 감자를 잔뜩 넣은.일본식 된장국을 끓였다. 날고기에 소금친 기름장을 찍고, 푸짐하게 끓인 된장국을 마시면서, 나는 마시다 남은 고량주를 마셨다. 아이는 제 손으로 자동완구 피아노를 켜놓고 춤을 추었다. 아무것도 없어도 절로 술안주라 나는 또 목이 메었다. 행복해서 괜히 지난 시간이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