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 봄이 왔으나 옥상도장도 좀처럼 순탄치 않다.
결혼을 하고 살림을 차리면서 좋은 점 중 하나가 옥상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빨래를 널거나 장독 등을 밖에다 놓을 수 있고, 한때 아이에게 수영장을 설치해주어 더운 여름에 물놀이를 하게 해주기도 했다. 물론 이틀에 한번씩은, 매번 수영장을 분해해서 세제를 뿌리고 박박 닦아준 다음 말리고 또 물을 채워야 하는 힘든 일의 반복이라, 결국 그 다음 여름에는 바로 집 앞에 있는 계곡을 찾아 그 곳에서 놀았다. 가끔 선선한 날이면, 어머니는 차양을 쳐놓고, 작은 오븐에 생선과 고기를 구워 며느리와 손녀를 먹이곤 하셨다. 아들은? 물론 나도 아버지, 여동생과 같이 술 몇 병 나눠가며 같이 먹기야 하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남편이면서 아비는 항상 꿍꿍 돈 벌고 제일 먼저 움직여야 된다고 성화이신 분이라, 어머니가 사오라 하시는 채소 사오고 씻고, 고추장 가져오고, 간장 가져오고, 왔다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다. 잠깐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며칠 전에도 어머니가 잠시 오셔서, 고등어 조려주시고, 한우 구워주시고, 쭈꾸미와 낙지를 반씩 데쳐다 미나리, 쑥갓, 양파, 당근 넣고 갖은 양념에 볶아주고 가셨기에 남은 장송에 한 잔할 겸 해서 감사하다 연락드렸더니, 불벼락이 쳤다. 너가 그걸 왜 먹니, 이? 고생허는 며느리허고 느그 딸 먹으라고 해놓은 것인디, 니가 머헌다고 그걸 먹어? 참말로, 너 철들라믄 아직 멀었다잉, 애만 놓는다고(낳는다고) 애비가 아니여, 마누라만 있다고 남편이 아니다잉? 고생허는 느 마누라, 딸내미 생각허믄, 니가 설령 먹고 싶어도 꾹 참아야 옳은 것이제, 나가 너 그렇게 가르쳤간디, 어째 저리 속이 없으까잉? 아, 곧 칠십을 바라보시는 우리 어머니, 아직 정정하고 짱짱하시네, 내 나이도 곧 마흔인데 어머니 마음 하나 못 헤아릴까, 어머니 말씀이 무슨 뜻인지 능히 알아서 그냥 껄껄 웃고 말았다. (실제로 우리 어머니, 맛있는거 많이 해주십니다...^^;; 워낙 어렸을때부터 엄격하셔서 그렇지..^^;;)
이야기가 잠깐 다른데로 돌았는데, 하여간 맘 편히 쓸 수 있어 제일 좋은 점은 날 따뜻한 계절에는 도장을 대신해서 옥상에서 연습량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남들 눈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발바닥이 좀 까진다고 해도, 우레탄 깔개를 깔아서 어찌되었건 도장 비슷하게 맨발로 연습할 수 있다. 정석대로 하자면, 왕복 1시간은 넘게 걸리는 도장에서 충분히 연습하고, 씻고 옷 갈아입고 돌아오면, 반나절은 족히 잡아야 하니, 남편이자 아비로서 아이 혼자 볼 아내에게 미안해서 대중교통으로 그야말로 못할 일이다. 그러므로 비가 오면 다락방에서 보 맞서기와 맞서기, 소도구를 이용한 근력 훈련을 하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에 여유가 있으면 옥상으로 나가 틀과 보 맞서기 연습을 주로 한지도 꽤 되었다. 좁은 다락방에서도 제자리에서 중심을 옮기며 틀 연습을 못할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전체적인 연무선이 있다보니, 시간과 공간이 충분한 곳에서는 무엇보다 틀 연습을 우선하고, 시간이 얼마 없고 공간이 좁다면, 간편하게 바로 할 수 있는 보 맞서기나 맞서기, 근력 훈련을 주로 하고 있다.
지붕이 없는 옥상이다보니, 무엇보다 옥상도장은 날씨에 좌우한다. 더운 건 그나마 낫지만, 춥거나 비오는 날에는 특히 할 수 없고, 여름밤에는 모기도 제법 성가시다. 최근에는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걱정이 늘었다. 너와 곽선생이 성화였던 적도 있었거니와, 평소 웬만하면 예민함이 끓어올라 몸을 움직여줘야만 비로소 마음이 가라앉는 나를 잘 아는 아내가, 웬만히 여유가 있으면 한 시간 반 정도 훈련하고 오라고 옥상으로 내보내는 편인데, 어제 아침에는 아내가 바로 창문을 열고 성화였다. 아이고, 여보야, 저 밖에 좀 보시소, 뿌예가 산이 다 안 보일 정도고만은, 머할라꼬 거서 그래 버팁니까? 폐에 먼지 팍팍 꽂을라꼬예? 그만 하고 들어오시소! (전직 간호사의 일침;;) 그래서 급한대로 제일 최근에 배운 유신 틀과 삼일 틀 몇 번 반복하고, 그토록 사람을 괴롭혔던 고당 틀 두어 번 더 연습하고, 후다닥 들어와서 양말 신은 채로 맞서기 연습 잠깐 하고, 스트레칭 하고, 씻은 뒤에 그 날 하루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렇게 하고 나면, 하다 만 연습이 마치 생선가시처럼 걸려 있어서 영 그 이후가 신경쓰인다. 하여 오늘 해 저물어가는 오후 여섯시 반에야 다시 나와서 이불 빨래를 널어넣고, 다시 연습했다. 때마침 아이가 깊이 잠들었으므로, 또 부부 간 오롯이 있는 시간에 어찌 태권도로만 다 보낼 수 있을까. 조금 급하게 연습해서 다시 유신 틀부터 사주 맞서기/막기까지 쭉 내려오고, 유신 틀, 삼일 틀, 고당 틀은 신경써서 서너 번 더 연습하고, 보 맞서기 30개 쭉 반복한 뒤, 맞서기 연습과 같이 팔굽혀펴기와 앉았다 일어나기로 마무리지었다. 9월에 대회를 나갈 예정이므로, 도장에 나갈 때는 사제사매들과 맞서기도 가능한한 자주 연습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팔다리가 짧은 나로서는 가능한 거리를 두지 않고 빠르게 치고받는 연습을 해야하므로, 그나마도 오른발보다 더 둔한 왼발 돌려차기를 더 많이 연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요즘 몸을 풀때 반드시, 좌우로 낮은데 차기, 가운데 차기, 높은데 차기를 번갈아가며 가능한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연습이란 당장의 기량을 높여주진 못하지만, 끊임없이 반복하면 결국 언젠가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나는 모든 무공을 그렇게 연습해왔으며, 드디어 태권도는 9년째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