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1001일차 ㅡ 둔하고 무뎌지지만
태권도에 큰 관심이 없는 너조차도 좌우지간 무려 햇수로 팔 년을 넘기고 사범님의 지도를 천 일 채웠다 했을때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그러기가 무섭게 소은이의 오랜 감기는 독감이 되어 집에 모두 번지고 나는 이삼주간 출퇴근과 집안일을 돌보며 태권도는커녕 책 한 장 열어보지 않는 중년 사내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쩌다 짬이 나면 그나마 고우영 선생의 십팔사략이나 윤승운 선생의 맹꽁이서당을 보다가 잠들었으니, 매일 성경 몇 줄이나 읽은 탓도 그나마 교회 집사 직분 덕이라 하겠다. 너와 네 신랑, 곽선생이 다녀갔고, 밥 잘하는 유진이가 다녀가 그래도 제법 점잖아진 소은이를 보여주며 하루 건너 이틀간 푸지게 술을 마셨다. 밥 잘하는 유진이와 나는 아내의 허락을 받아 집 아래 솜씨좋은 호프집에서 입가심을 했는데, 새벽 두 시가 다 된 시간에 우리는 적잖이 취해서 골뱅이소면 하나, 맥주잔 두 개 놓고 도산 틀이며 퇴계 틀의 움직임을 주거니 받거니 그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그러고 놀았고, 이미 늦은 밤 시간에 두 사형제 지간에 고량주와 소맥을 주고받으며 태권도 기술들을 논하고 앉아있기에 아내는 웃겨죽었다고 했다.
이러구러 오랜만에 찾아간 도장은 반가웠으나 몸은 늘 그렇듯, 느려지고 둔해지고 물러져 나는 침착하게 하나하나 해나가고자 애썼다. 원효 틀까지 내려와서야 비로소 겨우 중심이 잡히는 기분이었다. 이제 또 읽고 쓰고 단련을 쌓을 때가 왔다. 늘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만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