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가족과의 벚꽃구경- 이라고 쓰고 벚꽃훈련이라고 읽는다!

by Aner병문

아이는 말이 좀 늦었다. 평소 건강하고 음식도 잘 가리지 않으며 호기심이 많고 적극적이며 신체 기능도 좋았기에 나와 아내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는 세상에 나온지 일 년 조금 지나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때부터 엄마, 아빠 를 하기 시작했으므로 말도 금방 트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웬걸, 마스크 세대라고까지 불리는 지금의 아주 어린 세대가 그 때문에 말이 그토록 느릴 줄은 미처 몰랐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때문에 사회 활동이 크게 줄어든데다가 마스크 때문에 어미아비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입 모양조차 잘 보지 못하니 아무래도 자극이 늦다는 것이다. 늘 아이와 접하는 아들과 며느리, 심지어 어린이집 교사이기까지 한 아이 고모- 즉 내 여동생까지도 소은이가 별 문제 없을 것이라며 설득해도 어머니는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이셨고, 생전 안 보시던 유튜브까지 모조리 찾아보시며, 아이에게 좋다는 이런저런 교육을 다 하셔도 별무소용이었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여년 전, 아무리 먹여도 먹여도 그저 토하기만 하고, 자라고 하면 이불 속에서까지 불 켜놓고 책을 읽으며, 두꺼운 안경에 팔다리는 말라 배꼽까지 안으로 패지 못하고 참외처럼 톡 튀어나왔던 어린 아들을 어떻게든 건강케 해보겠다고 뱀까지 고아먹이시던 어머니가 역시 저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제 겨우 부모가 되니, 나도 평생 무섭게만 보였던 어머니를 비로소 좀 헤아리게 되고 가까워지는 듯하여 목이 멘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어머니는 자꾸만 큰 병원으로 소은이를 예약해서 이런저런 상담을 받아보셨고, 한국 최고의 명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젊은 의사 선생님이 말이 아주 좀 늦을뿐 아주 정상이며, 이것도 곧 변화할 것이라는 판정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을 놓으셨다. 그때서야 소은이도 조금씩 더 제 부모와 눈을 맞추고 말이 슬슬 더 어휘가 늘어갈때라, 어머니도 아이가 일정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소 늦을지언정 분명한 변화를 보인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도하신 것인데, 뒤늦게 터진 여동생의 짜증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긍게! 내가! 뭐라혔어! 내가! 진작부터! 소은이 아무 문제 없댔잖아아아아아앗!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회사의 내 또래 부모들에게도 물어보니, 역시 소은이는 오히려 마스크 세대 중에서도 비교적 빠른 편이었고, 다른 집 사정도, 유튜브 보시고 이런저런 훈수를 두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이야기는 다 비슷했다.



그때쯤하여 딸은 어린이집에 들어갔고, 제 나름의 첫 집단생활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외부 자극과 함께 말도 빠르게 늘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아내도 한숨 돌려서 다행이었다. 그래봐야 집안일이라는게 사라지진 않아서, 아이 보내놓으면 어지러워진 집 치우고 빨래 돌리고 청소하고 밀린 설거지 하면 벌써 점심 나절, 행여나 아이 먹일 밥반찬이라도 떨어지면 장 보고 음식하고 거기에 아내의 사적인 일이라도 조금 보면 금세 또 오후 네다섯시가 되어 아이 돌아올 시간이 된다. 출퇴근 전후 사이로 늘 집안일을 하는 나이므로 아내의 노고를 능히 알 수 있기에 나는 가능하면 아내에게 잠을 한숨 푹 자라고 했고, 아내가 다 못한 집안일은 늘 내가 마저 해치우곤 했다.



아내는 어지간히 큰 소은이와 함께 갈 벚꽃 구경을 기대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활동량이 더 늘고, 바깥 세상을 자꾸만 말로 표현하고 싶은 아이에게 가족의 더 많은 추억을 안겨주고 싶은 게였다. 게다가 아내는 이제 곧 5월이면 다시 경상도의 산으로 떠나 복직해야 한다. 팔자에도 없는 주말부부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고, 소은이는 주중에는 제 고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주로 자라야 한다. 소은이는 저도 본능적으로 어미가 오랜 시간 자리에 없을 것을 아는지, 예전과 달리 제 어미를 많이 찾았다. 비교적 저와 함께 손발을 맞추며, 달걀도 부치고, 커핏물 내리는 시늉도 해주고, 요리 흉내도 내주는 어미와 달리, 일단 무조건 안된다고 으름장을 놓는 아비가 어렵기도 했을 터이다. 아내가 아이 말을 선선히 들어주다가 더이상은 안된다고 할때 아이를 덥썩 안아다 엉덩이를 때리는 사람은 나였으므로, 아이는 요즘 나만 보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밀면서, 아빠 안돼요, 아빠 나가줘요, 아빠 저리가요, 하기 일쑤다. 예전에는 제 어미 곁에 나도 눕게 하더니, 요즘엔 함께 잘라 치면 또 나를 밀면서, 안돼, 아빠, 저리 가, 위에서 자요, 누워요, 한다. 서럽기 이를데 없다.



정작 날짜가 주로 잡힌 벚꽃축제 일정보다, 더워진 지구를 상징이라도 하듯, 한 주 더 앞당겨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으므로, 나와 아내는 좋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비누방울을 자전거 앞 바구니에 싣고, 사람들을 헤쳐 지나가며, 천변 근처 벚꽃들을 마음껏 보고 왔다. 아이들의 세상이었고, 처녀총각들의 세상이기도 했다. 아이는 지금도 눈에 선연할 정도로 초여름 같은 뙤약볕 아래서 노래부르고 춤추고 비눗방울을 만들며 신나게 놀았다. 나는 술을 마시고 싶었으나 그럴 겨를은 없었고, 아내와 교대로 소은이를 따라 뛰고 달리면서 아이가 행여나 공원의 자전거나 다른 아이들과 부딪히지 않을까 살폈다. 벚꽃놀이가 아니라 벚꽃훈련이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다만 후폭풍이 컸다. 아이는 그 전부터 어린이집에서 자꾸만 옮겨오는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얼추 나아가던 그 감기가 무리한 탓인지, 아니면 후에 알았지만 독감 균이 옮은 것인지, 하여간 갑자기 감기가 깊어져버렸다. 기침 감기 콧물이 심하고, 무엇보다 열이 바짝 오르니 아이는 근 2주를 어린이집을 가지 못했다. 나는 어느 날은 출근을 미루기도 하고, 어느 날은 연차를 미리 쓰기도 하면서 처자식과 함께 병원을 가보았는데, 집 앞 소아과는 문을 열기도 전에 사십명씩 줄을 서 있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 역시 퀭한 눈으로 늘 감기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선생님은 약을 독하게 쓰기를 겁내했고, 여러 약을 바꿔가면서 차도를 보다가, 마침내 독감 검사를 했는데, 아이와 아내가 모두 독감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 떄쯤 아내도 당연히 감기가 걸려 있었으나, 선생님은 마침내 이제 원인이 명확하니, 독감 약을 쓸 수 있다며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표정이었다. 아이가 독감이라는데 뭐 좋은가 싶었지만, 역시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있는 아내 역시도 이제는 되었니더, 독감 약 쓰모 닷새모 금방 낫습니더, 하고 좋아했다.



아내와 내가 얼추 나아갈때 드디어 내가 걸렸다. 그나마 2주 동안 버틴 것도 용했다. 아내는 평소 운전과 육아를 담당하느라 집안일을 거의 하지 못했고, 도장을 가는 화요일 목요일을 제외하면, 나머지 날에 나는 출근 전과 퇴근 후에 늘상 집안일을 마무리했다. 그나마 아내가 건강할때는 한숨 잔 다음, 소은이가 오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일을 덜어줘서 살만했는데, 아내까지 독감으로 완전히 뻗어버린데다, 내가 독감이 걸린뒤로도 아내의 독감은 완전히 낫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약 3주 간을 정말 전투경찰 막내 시절이 생각날 정도로 정신없이 살았다. 목이 붓고 기침 콧물 가래에 시달리며 목을 많이 쓰는 업무를 끝내고 오면, 아내는 소파에 드러누워 있고, 약효가 제대로 먹혀 거의 완전히 살아난 딸은 TV를 틀어놓고 혼자 기가 살아 놀고 있었다. 하루 네다섯 시간 잠자는 시간 외에 온전치 않은 몸으로 집안일과 회사일을 모두 하는 기간이 일주일 정도 되니 나조차도 예민하였다. 아내는 감기약을 먹을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했고, 체력은 둘째치고 태권도를 할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나의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아내와 나는 가끔 언성을 높였고, 아내와 다투고 싶지 않은 나는 혼자 작은 방에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는데, 아내는 늘 자기가 미안하다며 다가와주어 고마웠다.



그러므로 내가 낫고 나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나는 아내에게 4일간의 집안일 휴가를 요청했고, 아내도 미안하다며 그러라 했다. 사실 말이 집안일 휴가지, 사람이 집에 와서 어떻게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모르쇠 할 순 없었다. 다만 나는 아내가 적어도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때부터의 일만 할 수 있게라도 도와주면 고마웠는데, 아내도 내 마음을 잘 이해해주어서, 조금 더 많은 일들을 신경써서 치워주기에 나도 한결 숨통이 트였다. 아이는 그런 줄도 모르고 항상 이 아비를 보면 아빠 싫어요, 저리가요, 노래를 부르지만, 그래도 평소에는 늘상 아빠 좋아, 아빠 사랑해요, 하며 제 입술을 오리처럼 쭈욱 내미는 귀엽고 예쁜 딸이다. 어서 좀 더 커서, 학교 가기 전에 글과 숫자를 읽고 쓰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화무십일홍- 열흘도 못 견디고 지는 꽃보다, 늘상 나를 옆에서 지켜주는 가정이 더욱 귀하고 소중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