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1002일차 - 4월 유단자 수련!
다들 바쁘고 생업이 있다보니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하물며 평소의 훈련이겠나. 나처럼 잔재미없는 아저씨나 출퇴근하고 애 보고 살림하고 남는 시간에 책 읽기도 지치면 잠 줄여가며 달밤이나 새벽에 도복 입고 밖에서 휙휙거리는 것이지, 이번에 슬쩍 술 마시면서 다들 보니 젊고 감각 있는 사제들은 벌써 유튜브 방송을 직접 하거나, 게임 하나를 해도 전화기에 게임 컨트롤러를 직접 붙여서 진짜 오락기처럼 하니, '닌텐도 테트리스' 하나면 수학여행 때 버스에서 모두가 돌려가며 하던 그 때 그 시절하고는 또 다르다. 하기사 직접 교편을 잡는 곽선생조차도 요즘 학생들은 교과서의 문장 자체를 읽기 어려워한다며, 차라리 영상이나 스크린샷으로 빨리 딱 보여주면 더 이해가 빠르겠다고 투덜대는 학생들도 제법 있단다.
이번 유단자 수련에는 나 포함 여섯 명이 모였는데, 지난 달에 보 맞서기 2개씩 만들어오는 과제를 잘 진행했다. 손칼옆으로때리기 를 추켜막기로 막는, 그러니까 옆으로 돌면서 치는 공격을 난데없이 손을 들어올려 막는 위험천만한 기술들도 있었지만(^^;;;) 제법 기상천외하고 기발한 보 맞서기도 많았다. 특히 뒤집어손끝뚫기 를 쌍손칼낮은데막기로 막아볼거란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었는데, 양 손칼이 엇걸어지니 제법 괜찮은 방어법처럼도 보였다. 사범님도 이번 보 맞서기 만들기 과제가 마음에 드셨는지, 보 맞서기 경연대회 를 열어봐도 괜찮겠다셨다. 사실 나도 보 맞서기 2개를 만들면서 막상 해보니, 내가 배워온 기술들을 단순히 반복할뿐 아니라 이 기술의 공격 목적이 어떻고, 또 방어는 어찌 해야 되는지 등을 생각하다보니 훨씬 이해도가 높아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이 날은 틀 연습을 주로 하다보니, 다른 과정을 크게 나가지 못했다. 초단자들은 포은 틀을 주로 배웠고, 3단에 오른 나와 인천화백 사범님은 삼일 틀과 유신 틀을 다시 지도받았다. 그나마 삼일 틀과 유신 틀을 다 외운 나보다, 유신 틀을 처음 배워보시는 인천 사범님은 걷는 서기로 걸쳐막은 뒤 다시 앉는서기로 D방향을 찌르는 반복 동작을 많이 낯설어하셨다. 그나마 WT 5단을 먼저 따시고 도장 경력이 기신 인천 사범님이니까 금방 배우신거지, 솔직히 난 유신 틀 다 외우는데 열흘 이상 걸렸다. 여러번 얘기하지만, 진짜 눈빠지게 영상 보고 또 보고 회사에서 눈총받아가면서 연습까지 했다.
좌우간 틀 연습을 하고 나서 1분 30초씩 10라운드를, 하단까지 넣어서 맞서기 연습을 하고, 단련을 하고 마쳤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유단자들끼리 뛰니 다음날인 오늘까지 엉덩이가 저리고, 무릎, 발목이 떨어져나갈것처럼 시큰거리고 아팠다. 하단차기-즉, 낮은데차기를 쓰게 되면, 중심 아래쪽으로 묵직한 공격이 깊게 들어오기 때문에 일반적인 ITF 규칙처럼 빠르게 뛰면서 점수를 뺏을 수가 없다. 다리가 짧은 나로서는, 상대의 허벅지나 오금 등을 차주면서, 안면 쪽을 주먹으로 치고, 거리를 먹을 수 있는 이 규칙이 당연히 좋지만, 다리가 긴 상대는 더 좋을 것이라는게 문제...^^;; 아 거, 다리 짧아 서럽네..ㅠ 하여간 이번 사범님의 과제는, 적어도 1주일에 2회 이상은 수련양을 채울 것, 그리고 유단자들끼리는 만나면 하단차기까지 넣어서 맞서기 연습을 자주 하도록 할 것이라셨다. 사실 나이를 먹을수록 맞서기가 좀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려니와, 틀 연습은 그에 비해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 틀 연무를 주로 연습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또 실제로 젊은 사제사매들과 치고받지 않으면, 거리 잡는 감각도 그렇거니와 맞서기 실력이 늘지 않는다. 다치지 않게 늘 조심해서 해야 한다.
유단자 수련 후, 불참한 사람들이나, 참석했어도 뭘 배웠더라 기억이 가물한 경우가 많으므로 이에 대비해서 요점을 글로 정리해서 올리는 일은 내가 맡고 있다. 사실 나부터 유단자 수련 때 뭘 배웠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으므로, 겸사겸사 일기 및 일지 쓰는 김에 쓴 것인데, 의외로 평이 좋아 유단자 단톡방에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 혼자 알아야할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모두 이 문장을 읽고 어떤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아야 하므로, 마치 기계 설명서나 태권도 교본마냥 상세히 쓰도록 고민하게 되었는데, 흔히들 의사소통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할때 '종이비행기 접는 법을 글로 써보시오.' 하는 과제와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종이비행기를 만드려면, 일단 종이를 세로 기준선으로 절반씩 접어야 하지만, 이 첫 문장도 대충 적으면, 나중에 따라 접는 사람은 희한야릇하게 접게 된다. 앉는서등주먹옆떄리기 를 할때, 주먹을 치는 쪽 발은 버팀발의 종아리를 타고 가랑이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앞쪽으로 함께 발을 던져줘야 하는데, 이게 기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아하, 하고 금방 알겠지만 난생 처음 광개 틀을 배워보는 사람이라면 이게 뭔 소리야 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영조대왕께서는,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때도 문무를 겸비했다 일컬어지는 당대 최고의 협객 야뇌당 백동수를 기용하셨다. 출중한 무공은, 고매한 인격과, 훌륭한 학식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법이다. 아, 제가 그렇다는건 아니구요. 머쓱. 저는 어제도 젊은 사제들에게 듬뿍 얻어터졌습니다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