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달 너머로 달리는 말, 파람북, 2020.
비단 이 곳에서뿐만 아니라 그 동안 있어왔던 다양한 글틀에서도, 또한 사적인 자리에서도 나는 항상 김훈을 읽어왔고 찬탄해왔다. 아마 앞으로도 여전할 터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때때로 드러나는 아쉬움 또한 가릴 수 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흑산 이후로 3년만의 장편소설이요(그거밖에 안되었나?), 공터에서 이후로는 오랜만에 역사소설이 아닌 순수소설을 내었다. 게다가 언론에서는 김훈 작품세계 최초의 환상소설이라는 광고문구까지 내걸었다.
몹시 기대를 해서인지 사실은 되려 실망했다. 사실 김훈 선생은 대중적으로도 역사소설과 수필에 강점을 보인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문장은 세상의 모든 것을 훑고 살펴고 쑤시고 펼쳐서 드러내놓는데, 그 시선이 흐트러지지 않고 정갈하여 시종일관 단단하고 힘이 넘친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강점은 역사소설처럼 이미 서사의 기승전결을 독자가 다 알고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 이미 아는 얘기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 다듬어 빛내놓으니 이 때의 세상이 이런 맛이었나 놀라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김훈 선생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는 다소 '약점을 보인다.' 화장, 에서의 불륜 미화 논란은 둘째치더라도, 언니의 폐경, 에서 명색이 한국 소설의 거장이라는 사람이 소설의 주제를 관통하는 여성의 월경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날선 비판에, 그는 작품 바깥의 취재에서 페미니스트들에 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의 헤밍웨이- 기자 출신답게 수필처럼 이미 보고 듣고 경험하여 쌓아올린 삶을 자신의 힘으로 채색하는데는 더할 나위 없이 능하며, 그러므로 그 경험이 일부 녹아든 공무도하 나 항로표지 같은 작품에서도 역시 거장의 강한 기력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이번 작품은, 감히 김훈 선생의 애독자를 자처하며, 그의 단점이 가장 강하게 부각되고 응집된 소설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앞서 말한 김훈의 매력적인 시선은, 안개처럼 흐리고 뽀얀 서사에 가려져 크게 드러나지 못했다. 춘추전국을 떠오르게 하는 세 나라 초(草), 단(旦), 월(月) 의 흥망성쇠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표, 연, 칭왕, 목왕, 황, 추 등의 인물과 또 걸출한 인물들을 태우고 다니며 전쟁터를 누비는- 즉 역사의 가장 폭렬한 끝에서 인간의 참상을 바라보는 야백, 토하, 총총 등의 말의 이야기가 서로 버무려진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장르로설이라고 광고되고 있기는 하나, 마치 '종합격투기' 처럼 하나의 고정된 형태와 개념이 되고 만 '장르소설' 에서는 실질적으로 비껴나 있다. 그 스스로도 이 소설은 현실과 가상의 역사 간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음을 보여주는 듯한 각주까지 달았다. 그러므로 김훈의 붓은, 독자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될 정도로 스스로가 작가라는 사실을 문장 곳곳에 뿌리고 다니는데, 그 붓이 시원기 와 단사 라는 가상의 역사서에서 출발하여 사람에게로 갔다가, 말에게로 옮아갔다가 다시 민중들에게로 갔다가, 역사서로 회귀하기를 정신없이 반복하니, 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점인 서사, 이야기, 즉 '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가 흐려져 버렸다. 이 책을 기대하며 읽었으나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점이 참말 아쉬었다. 책을 덮어도 이른바 역사 3부작처럼 뻐근하게 와닿는 느낌이 없어 섭섭하다.
그러므로 작품 바깥에서 힘을 빌려오도록 하겠다. 김훈 선생은 이 책을 내면서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유용한 동물 중 하나였던 말의 자유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했다. 평소 개를 아끼시며 개가 인류에게 기여한 바를 생각하느 분이시니 말에게도 애정이 갔을 터이다.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그가, 말마따나 산맥같은 허리를 출렁이며 인류의 문명과 야만을 함께 달렸을 말이라는 동물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다만 소설은 마치 야생마가 천지사방을 뛰어다니듯 온갖 것을 묘사하다 그만 늙어 폐사하듯 힘을 잃고 주저앉고 말았다. 아마 공터에서 처럼 몇 번을 더 읽어야 맛이 날 모양이다. 하기사 공터에서 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이건 완전히 본인 자서전 비슷한 책인데, 하고 다소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당분간 문학을 실컷 읽었으니 화폐 부분에서 잠시 놓아둔 세계사 편력을 다시 읽을 때가 되었다. 세계사편력을 다 읽고 나면 또 문학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친 김에 오랜만에 또 김훈의 소설이나 내처 읽을 터인지, 혹은 새로 선물받은 책들을 읽을지 알 수 없다. 행복한 고민이다. 친구들이 선물하는 술병을 따거나 새로 기술을 배우는 것처럼 늘 두근두근한다. 나란 사람, 참 삶의 넓이가 얕구나. 그렇다고 깊지도 아니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