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ㅡ 아내는 오늘 오후에 내려간다.
하루키는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먼저 떠난 여인의 침대 위 남은 몸자국을 결손 같다고 표현했다. 결손은 원래 함께 있어야할 것이 파손되거나 떨어져나가 없을때 이르는 말이다. 상실의 시대 와 몇몇 단편을 제외하면 하루키를 그리 썩 좋아하지도 않는데 아직도 이 단편의 제목과 표현이 선연히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리움이 원래 내게 있어야할 무언가를 되찾고자 바라듯이 이러한 감정도 내게 있었던 것인가보다.
아내는 오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마지막 살림을 챙겨놓고, 오후에 자신의 부임지로 떠날 예정이다. 그동안 아내는 삼년간 아이를 키우며 잘 쉬었다면서 어렵게 공부해서 쌓은 경력이 멈추는 여자의 삶을 안타까워했고, 한편으로는 복직 전 잘할 수 있을까 두렵고 겁내하기도 했다. 열두척의 낡은 병선을 만나러 가는 옛 충무공의 심정이 그러셨을까, 아내도 명색이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니 시대를 넘어 맞닿는 구석이 있을 터이다. 아내는 집을 정리하면서, 내가 세세히 알지 못하는 육아에 대해 인수인계하였고, 하루가 갈수록 아내의 기분은 때때로 널뛰듯 헤아리기 어려웠다. 아내는 가끔 어머님이 일찍 가시지 않았으면 몸도 마음도 더 평안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니요, 의가 상해 멀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저 서로 업무 때문에 원래의 주말부부로 돌아갈 뿐인데도, 나는 우울하고 기운이 없었다. 육아를 혼자 맡는다는 부담보다도 말벗 마음벗할 아내가 없다는 사실이 적적하여 벌써 견디기.어려웠다. 나는 적극적이지 않게 되었고, 지난주부터 어제까지의 시간을 그냥 흘러가게 두었다. 독서도 훈련도 안했고 그냥 술 마시며 일상만 살았다. 어제 냉장고를 정리하려고 우리 부부는 묵은 냉면과 반찬을 먹어없앴고, 나는 반쯤 남은 위스키를 비웠는데 조금도 취하지 않았고 새벽녘 일찍 깨었다. 아이와 어미는 서로 거실에서 엉켜 잠들어있었다.
몸이 먼저 번잡스러울걸 아는지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나는 옥상도장에서 오래 훈련했다. 며칠간 태권도를 내버려두었더니 그새 틀의 몇몇 동작들이 헷갈렸고, 전체적인 동작이 물러지고 흐려져서 몇 번 더 반복해야 했다. 유신 틀에서 거꾸로 내려와 다시 유신 틀을 거쳐 고당 틀로 와 다리를 뻗어 반 바퀴 천천히 돌리는 대표적인 동작을 할 때, 겨우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늘어진 몸을 태권도에 맞춰 기억을 깨우듯이, 내 다른 일상도 더욱 긴장하며 살아야한다. 아비로서 남편으로서 해야할 일이다. 아내가 그동안 곁에 있어주어 늘 감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