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무서운 돈 이야기.
광해군 때의 일이다. 이위경이라는 이름 높은 선비가 있었는데, 학식이 많고 인품이 훌륭하여 뭇 사람들이 우러러 그를 존경하였다. 여러 영화나 소설, 드라마 등을 통해 광해군에게는 비운의 선군이었다, 폭군이었다 는 여러 평들이 뒤따르지만,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배다른 동생인 영창대군을 방에서 쪄죽이고(실제로 방에 가둔 뒤 불을 심하게 때서 죽임..그때 나이 고작 아홉살!) 그 어머니인 인목왕후조차 유폐코자 한 점은 참으로 잔인하다 하겠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조차 이러한 일에 앞장섰고, 당시에는 유명한 이이첨 이라는 간신배가 있었으니, 이위경은 여러 번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가난에 찌들어 살아 더욱 존경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위경은 자신의 삶이 크게 바뀌는 계기를 맞게 된다. 빈궁한 살림을 함께 버텨온 아내가, 추운 겨울날 남편에게 죽이라도 끓여주려고, 땔감삼아 집안 기둥을 낫으로 깎다가 실수로 자신의 손가락을 찍은 것이다. 시린 겨울 아침, 밤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속은 쓰린데, 뼈가 살에 붙어 눈은 퀭하고 뺨은 움푹 들엉간 아내가 잘려나간 손을 싸쥐고 통곡을 하고 있으니 한 여자의 남편이자 사내로서 마음이 어떠했을지 능히 짐작이 있다. 이위경은 크게 탄식하고 탄식하며 글은 읽어 무엇하냐며 그 즉시 스스로 이이첨의 집으로 달려갔다. 안 그래도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 때문에 학식과 명망이 높은 이위경을 늘 끌어들이고자 했던 간신배 이이첨에게는 그야말로 봉황이 집에 날아든 격이다. 그는 즉시 이위경 부부의 고충을 위로하며 온갖 재물과 벼슬을 내렸고, 이위경은 지위가 부제학(요즘으로 치면 국립도서관 부관장쯤? 왕궁의 서적 등을 관리하고 때때로 임금을 가르치는 경연을 기획하기도 했다.)에게까지 올랐으나, 사람이 완전히 바뀐 듯 뇌물을 탐하고 재물을 악착같이 긁어모아 백성들의 실망이 하늘을 찔렀다. 차라리 내버릴지언정, 거지에게도 주지 않아 온갖 산해진미가 썩어난다는 이이첨의 곳간보다도 심하다는 말이 있었으니 당시의 글겅이질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반정이 일어나지 않을리 없다. 그 유명한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이이첨과 이위경은 뭇 백성들의 손가락질과 돌팔매질을 받으며 형장으로 끌려갔다. 요즘으로 치면 한 나라의 총리와 교육부 장관 등이 단칼에 처형 당하는 셈이니 인생사 알 수 없는 법이다. 이이첨이 물 한 잔만 달라고 구걸하자 포졸이 '이 놈아, 너는 왕후를 내쫓고 가두어 물 한 모금이라도 드렸느냐?' 라며 면박을 준 이야기도 유명하다. 그때 이이경은 형장으로 끌려가는 수레에서 큰 소리로 외치기를 '후세 사람들아, 배고픔을 견디는 법을 배워두어라. 나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이 꼴을 당한다' 고 했다고 한다.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배수진의 명장 한신은 때를 기다리기 위해 기생과 시장 할머니에게 밥을 빌어먹고, 저잣거리 깡패의 가랑이 사이도 서슴없이 기어가는 등 과하지변의 고사를 남겼으나 훌륭히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영조-정조 떄 백성들의 삶을 밝혀주기를 유명한 정승 채제공은, 그 스스로가 어린 시절부터 고생이 심하여, 겨울을 날 옷조차 없어 홑옷에 지푸라기며 양반들이 기피하는 개가죽까지 넣어 추위를 견디면서도 글을 읽었는데 늘 행동거지가 대범하여 부끄러움이 없었다고 했다. 채제공은 이런 시절, '추풍고백에 응생자요, 설월공산에 호양정이라.' 는 시를 지었는데(아, 한자 폰트 매번 쓰기 귀찮다..^^;;), 그 뜻을 풀이하자면 '가을 바람 불 때 늙은 잣나무에 매가 새끼를 까고, 눈 쌓여 달빛 부신 빈 산에 호랑이가 힘을 기른다.' 는 뜻이다. 가을 바람 불 때면 곧 추워질 떄인데 그제서야 새끼를 낳으니 어린 새들이 겨울을 제대로 날리가 없으니 멍청한 짓이요, 자신은 태생이 호랑이라 겨울쯤 겁내지 않고 힘을 길러 큰 인물이 되겠다는 기개와 포부를 드러낸 시다. 명색이 글 읽는 사내대장부라면 이 정도 기백과 품격은 있어야 한다. 응부냉추- 추운 가을에 애 낳는 바보 매 - 라는 고사도 여기에서 나왔고, 하여 나는 이 시를 무척 좋아했다.
구약 때부터 이미 재물신 맘몬을 섬기리라는 성경 말씀을 여러 차례 인용한 것으로 안다. 젊었을 떄 나 역시 되새기고 싶지 않은, 그러나 되새겨야할 실수가 있어 돈은 무엇보다 길들이기 어려운 짐승이라, 제대로 다룰 수 없다면 아예 멀리하는 게 낫다는 내 스스로의 심경도 몇 번 이 곳에 드러낸 줄 안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했을, 소탈하고 털털한 인상의 '형님' 뻘 가수가 돈에 대한 구설수에 크게 올랐다. 나 역시 실제 집안 경제는 아내와 어머니가 서로 논의하며 하시라고 맡겨놓는 편이고, 그 또한 비싼 학비가 들어가는 아들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아마 자신의 명의고 계좌고 그냥 돈을 벌 수 있다면 다 맡겨버렸을 터이다. 가상화폐가 있기 전에 일찍이 주식이 있었고, 고정적인 가치를 매기기가 어려운 자산이므로, 투자자를 의도적으로 유동케하여 가격을 조작하는 사태는, 옛날때부터 엄히 다스리던 중범죄였다. 일찍이 허생전에서, 딸깍발이 선비 허생이 고작 만 냥으로 조선의 과일과 말총을 사들여 능히 한 나라를 주물렀던 사례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인터넷에서 구걸을 하려고, 지하철에 밀가루를 들이붓고 여자 속옷을 입은 채 춤을 추는 젊은 사내는 또 먼 나라의 일인가 보았더니, 그 또한 국내의 일이었다. 서민들이 건실하게 일을 하여 안정적인 기반을 찾기 어려운 사회이므로, 돈을 빨리 많이 벌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사는게 고단하니 마약이나 헛된 유흥으로 잠시라도 삶을 잊으려 한다. 슬프고 어려운 일이다. 수단만 달랐을 뿐이지, 언제나 나라가 힘들고 어려울 때 이런 일들은 반복되어 왔다. 독일은 이런 때를 대비하여, 일단 올바른 기반을 잡아주기 위해 살 집을 빌리거나, 직장을 잡을때, 반드시 변호사가 대동하여 세입자와 건물주 / 노동자와 고용주 - 우리 나라로 치면 갑을 관계가 서로 원만히 오래 합의할 수 있는 노동시간과 급여, 집세와 기간 등을 정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런 나라에서는 특별히 아주 부유한 사람도 적지만, 그렇다고 아주 가난하여 살기 어려운 자들도 적기 마련이다. 눈여겨볼만한 일이다.
가정의 달 5월이라, 연휴를 맞아 어렵게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비바람을 뚫고 고개 건너 바다 도시에 있는 처가까지 내려왔다. 날씨가 좋지 않아 아이를 데리고 키즈까페에 갔고, 그 도시의 젊은 부모와 아이들은 다 여기에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있었다. 아버님은 한참 손녀가 노는 모습을 보시다가, 웃으시다가, 나에게 나직히 말씀하셨다. 같이 부부가 맞벌이하면서 살면 되네, 절대 주식이라든가, 코인이라든가, 그런거 하려고도 하지 말게, 욕심 부리지 말고, 지금 이 행복을 잘 지키고 소박하게 살면 되네, 자네가 그럴 사람은 아니지만서도, 내 말 알겠제? 그래도 바다 가까이 이름난 공업도시의 젊은 부부들은, 일찍 기반을 잡아 빨리 결혼하여 대부분 어리고 젊었다. 아내에게 그처럼 부유함을 주지 못하고, 3년만에 다시 일을 나가게 하여 나도 몸과 마음이 고단하고 쓰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헛된 망상이나 꿈을 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정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산다. 다만, 세상이 갈수록 어려워져, 작은 나의 배움만으로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 항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