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무공은 기술을 쌓는 것 이외를 포함한다.

by Aner병문

애 고모가 술 한 잔 하고 싶다고 하여 소은이 노는 동안 가볍게 한 잔 하였다. 아이도 지쳐 금방 잠들고, 어른들도 별 수 없었다. 새벽녘에 일어나서 아이가 깰 때까지 한 시간 동안 훈련하였다. 앉는서기로 백번 찌르고, 찌르기, 막기. 뚫기, 때리기 등 기본기를 오십번씩 반복하고, 앞차부수기, 옆차찌르기, 돌려차기, 내려차기, 뒷차찌르기 를 좌우 오십번씩 반복한 뒤에 맞서기 연습을 하고, 팔굽혀펴기와 철쇄공 등 근력 훈련으로 마무리하였다. 오랜만에 혼자서 근력 훈련을 중심으로 연습하니 1시간 정도만 해도 땀으로 몸이 흠뻑 젖었다.



이렇게 혼자서 훈련하는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목숨을 건 일대일 대결- 생사결을 치를 때마다 일격으로 모든 사람들을 절명케 하여 그에게 두 번 맞은 사람이 없다 이름났던 팔극권의 대가 신창 이서문은 청대 말 근대 사회로 접어들며 결국 옥살이를 해야 했는데 손발을 차꼬로 묶은 상태에서도 연습과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아 새 초식을 창안했고, 그 유명한 제검관의 모 관장님께서도 정치범으로서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검객으로서 팔힘을 잃지 않기 위해 남들이 기피하는 목공 노동을 자청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손으로 소뿔을 날리고 소뚜껑과 차돌을 깨부쉈다는 배달 최영의께서 젊은 시절 눈썹을 번갈아 밀어가며 입산 수련했다는 이야기 또한 유명하다. 그렇다면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근력과 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생물이고 무생물이고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깨부수는 힘을 길렀다면 그는 훌륭한 무공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까?



무공은 애초에 왜 필요할까? 젊은 시절, 나는 여러 가지 폭력에 비겁하게 굴복해왔던 내가 싫어 무공을 시작했고, 그 때 내게 있어 무공은 결국 스스로를 내세우기 위한 표현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방해가 있을지라도 끝내 자신의 뜻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몸으로 직접 표현하는 방식이 무공이다. 나이가 들어 다시 생각해보니, 무공은, 상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옛 류큐 왕국의 사내들이 칼을 빼앗겨 바위와 나무에 손발을 두드리며 단련하고, 도리깨와 낫을 무기 삼아 싸우는 법을 익혔던 이유는 야마토 정권이 그들의 토속 왕국을 압제하고 무력으로 진압했기 때문이었다. 근대 가라테의 전신이었던 류큐 당수의 기원이다. 숭산 소림사의 권법은, 전설에 따르면, 당 태종 이세민의 왕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무공에 이름났던 나한들을 속세로 보내 적들을 쳐부수게 한데서 이루어졌다 하며, 그 외에도 숱한 무공들 역시 본디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한 저항의 수단으로써 발전해왔다. 즉, 말도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갈고 닦아 전하듯이, 무공도 물리칠 상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니 전적으로 사회적인 매체라고 하겠다.



나이들어 생각해보니, 무공을 익히는 방식도 여러가지요, 목적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범주는 결코 사회와 격리되어 생각될 수 없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정치를 거부하는 태도조차 지극히 정치적인 태도라고 말해왔다. 단순히 자신이 손발을 단련하거나 병기를 숙련하여 혼자서 만족하는 경지에만 이르고자 하는 이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 무공 수련을 통해 도를 깨닫고자 하는 저 선무도나 소림권법의 승려들조차도 상대와 싸우는 법을 익힌다. 그러므로 모든 무공은 마땅히 사회에 속해 있으며, 무공을 수련하는 이는 각자의 도장이나 체육관, 무공 등에 속해 있는 또다른 사회인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아비이자 남편으로서 가정을 꾸리고 직장을 얻어 생활해보니, 나의 태권도를 잘하려면 나는 일단 삶을 잘 지탱해야 한다. 돈이 없으면 도장을 갈 회비도 없고, 사범님 이하 숙련된 사형제자매들과 올바로 교류도 하지 못할 것이며, 그 이전에 가정도 건사할 수 없으니 도장갈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무공 자체를 생업으로 삼는 프로 격투 선수들 역시 사회인으로서 숱한 역량과 인격을 대중으로부터 시험받는다. 그들은 로마 시대의 검투사들이 아니기에 단순히 상대를 잘 거꾸러뜨린다고만 해서 평생 잘 먹고 잘 살 수는 없다. 시대가 달라졌고, 무공을 익히는 이는, 무공을 잘 익히기 위해서 자신을 잘 다스려야만 한다.



젊었을 때 나는 숱한 무공의 잡다한 기술들을 배우고 익히면서, 무공을 익히는 자의 가장 첫번째 자격은, 무엇보다 출중한 역량이라고 생각했다. 하기사 무엇이 되었건 무공을 익히는 자가 폭력에 비겁하게 굴하거나, 자신이 배운 기술들을 올바로 펼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심도 있는 철학을 논해도 무게가 실리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 도장 생활을 오래 해보니, 숱한 명사범들이며 교련, 사부, 스승들이 무공의 역량처럼 사회의 역량이나 인격을 갖추지 못해 이름을 감추거나 사라졌다. 자신의 삶을 잘 챙기지 못하면 도장에서도 기술을 올바로 수련할 수 없었고, 자기 혼자 실전 기술을 연마해왔다는 주장하는 이들은, 도장에서 시간날때마다 체계를 갖춰 연습한 아마츄어 아저씨인 나조차 당해내지 못했다. 타고난 강골들이며, 프로 선수의 재목들은 마땅히 있을 것이나 모든 무공의 수련자들이 그럴 수는 없다. 검은 띠를 받은 나조차도 내 스스로의 실력은, 문외한을 상대로 내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이며, 상대가 나보다 고수임을 안다면 빨리 빌어야 되는 시간을 깨닫는 정도라고 자평하고 있다.



내게 있어 태권도는 이제 삶의 방식이 되었다. 책을 읽어 그 가르침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자 하듯이, 무공의 훈련으로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에 쌓이는 일상의 독을 뺴내며,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면 족하다. 나는 내 태권도로 천하를 평정할 마음도 없고(예전에는 쪼오끔 있었다^^;;), 생업을 할 마음도 아직 없으며, 무엇보다 내 태권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거나 정교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냥 둔한 아저씨가 취미삼아 해서 적당히 쌓아놓은 수준이다. 그러므로 내 태권도는 내 스스로 다듬고 쌓는데 족하다. 다만 내가 도복을 입거나 태권도의 기술을 쓰면 따라하며 '태권도!' 라고 외치는 내 딸이, 이러한 아비의 마음을 알아주고 태권도를 함께 해준다면 기쁠 따름이다. 내 스스로가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혼자 기술을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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