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 그러나 신체를 무시할 수 없다.
서양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중시하니 정신보다 육체가 중요하다 여기고, 동양은 정신을 중요시 여기니 물질이나 육체를 천대한다는 생각들이 흔하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고등 교육의 말석에라도 앉아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주류' 라고 할만한 흐름들이 있긴 하지만, 첫째,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차별하는 흐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다 있다. 그러므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차별하는 기준 자체가 결국 육체와 정신을 이분하고 차별하는 흐름을 만들었다 오해할만하다. 둘째, 서양에도 라이프니츠나 바슐라르, 모네처럼 동양문화에 푹 빠진 이들도 있었거니와 동양에도 역시 왕양명, 최한기, 엄복, 서화담, 정약용처럼 기(氣- 물질이라고 완전히 대칭하긴 어렵지만) 나 서학에 빠져든 이들도 있었다. 지역이나 인종의 차이는 아니거니와 어느 나라, 문화권이든 비슷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맑스나 베버 등이 주목했던 것처럼, 산업혁명이라는 하나의 계기가 터지기까지 차곡차곡 쌓일만한 계기는 있지 않았는가 싶다.
더이상 들어가면 훈련일지, 가 아니라 독서감평, 이나 사는 이야기, 가 될 터이다. 여하튼 데카르트는 동양보다 뒤처진 서양 사회의 암흑 같은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불꽃을 지핀 이 중 한 명이었고, 십자군 전쟁을 통해 동양의 의료 기술이나 연금술(서양의 화학을 이루는 토대가 된다.)이 들어오기 전,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기도하거나, 악한 기운을 몰아낸답시고, 피나 뽑아대는 정혈의 시대에서 심신이원론을 주장하던 이였다. 그는 마투라나가 신체의 경험이 곧 인간의 사상을 쌓아올린다는 주장을 하기 이전에, 인간의 신체가 곧 사상을 구축하는 기준이 된다고 믿는 이였고, 그래서 손이 하나인 사람과 두 개인 사람은 서로 다른 삶을 살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데카르트가 아주 초보적인 의수를 고안해낸 사람이라고도 과언은 아니다. 훗날 그의 사상은 다프트 펑크Daft Punk에게 전승되었다 할만하는데, 그들은 늘 휘황찬란한 장신구를 차고 신체의 확장을 꾀하여, 몸의 변화가 어떻게 음악-사상에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서생이 언제나 약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 커다란 쿠로가네- 즉 페리 제독이 흑선을 이끌고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일본의 문을 억지로 열었을 떄, 상투를 끊으려거든 내 목을 자르라던 조선의 도끼 선비 최익현(실례지만 어데 최씹니까? 그분 말고..;;) 이 그랬듯이, 사이고 다카모리처럼 사무라이의 정신을 지키겠다며 사쓰마의 무사들을 모아 저물어가는 시대를 붙잡으려 하던 이도 있었으나, 오쿠보 도시미치처럼 행정가가 되어 개화와 개혁의 문을 연 이도 있었으며, 그들 중에는 권투, 레슬링 등 서양의 격투기를 받아들여 더욱 강건한 사회의 구성원들을 만들려는 교육자들도 있었다. 그 유명한 불산 4소룡의 곽원갑이 정무체조회를 만들어 국술- 즉, 중국에 전래된 무공을 개량하여 훌륭한 젊은이들을 양성코자 했던 것처럼, 사회를 건강케 하기 위해선, 사회의 허리가 되어야할 생산 계층- 젊은이들이 건강해야하고, 그들에게 자긍심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을 지키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끔 하는, 종합격투기로서의 유술을 창시하고자 했던 이들도, 모두 공부를 많이 한 엘리뜨 계층이었다. 일본에서 전래된 고류 유술 중에서 위험하거나 허황된 기술들을 모두 빼고, 합리적으로 반복 훈련을 하여 단계별로 강해질 수 있게 한 체계를 정리한 이가 바로 근대 유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강도관의 창시자 카노 지고로다. 띠만 메어주면 산조차 업어쳐 무너뜨릴 수 있다는(유도계의 아르키메데스?!!), 실제 실현하면 위력이 고대 투석기와 맞먹어 사람 얼굴쯤은 능히 갈아버린다는 고류 메치기 야마아라시 의 주인공인 사이고 지로와 열네 살의 나이에 이미 미쳐 날뛰는 말의 앞다리에 업어치기를 걸어 강바닥에 메다꽂았다는 기무라 마사히코의 스승뻘 되는 인물이다. 이들은 불학무식한 무뢰배도 아니요, 산에 틀어박혀 나 홀로 강해지겠다고 싸움에만 골몰한 이들도 아닌, 마땅히 시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왜 싸워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싸우던 인물들이었다. 따라서 문文과 무武는 결코 나뉘어져 있지 않으며, 이런 이들의 무공은 강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교회 앞 동네에서 작은 축제가 있었다. 넓지 않은 도로나마 막아 차량을 돌아가게 했고, 사람들은 모여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풍선도 만들고 고기도 구워먹고 놀았다. 보통 이런 축제 때에는 온갖 혹세무민하는 교파들도 모이기 마련이며, 한두 푼 아쉬운 이들이 부끄러움을 잊고 적선을 구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비가 새고, 겨울에는 바람이 새는, 다 합쳐봐야 스무명도 안되는 늘 작은 우리 교회는, 문턱이 낮아서 그런지 이런 때일수록 사람들이 자주 온다. 주님께서도 힘든 이들을 도와주셨거니와 배고프고 힘들어 오는 이들을 내치는 것은 비록 술은 못 끊었을망정 교인의 자세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예배보는데 중간에 갑자기 예배당 문을 우당탕 열고 들어와 천원만 주세요! 하시는 건 몹시 깜짝 놀랄 일이다. 물론 어딘가 아파보이는 청년잉긴 했다. 우리 교회의 평균 연령은 60대 이상, 제일 젊은 성도는 내 딸 전소은 만 3세,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60대 이상, 30대는 나와 우리 아내, 목사님 따님인 얀미밖에 없다. 즉, 30살 젊은 남자가 나 하나이며, 내 위로는 바로 60대 지팡이 짚고 다니시는 안수집사님들..(...) 나는 일단 그를 밖으로 내보냈고, 그의 손과 허리 움직임을 주목하면서 천원짜리 몇 장을 쥐어서 보냈다. 그러는 사이 마치 PC방에서 며칠을 보낸 듯, 술 담배에 절은 악취가 심하게 나는 청년 하나가 또 쓱 들어왔는데, 그는 겉보기에는 멀쩡해보였고, 몸도 건장해보여서, 나는 내심 긴장했고, 아내를 비롯한 여성 성도들 과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는 목사님과 독대를 신청했는데, 출소한 지 얼마 안되었다며, 막노동을 해야하는데, 안전화 값이 없어 도움을 청하러 왔다고 한다. 교회 집사 누님들과 권사 어머님들도 걱정하시고, 나 역시 목사님이 걱정되어 나는 목양실 바깥에서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기다렸다. 다행히도 그는 안전화값 3만 5천원을 받고 돌아갔다. 나는 목사님이 역시 대단하시다고 생각했다. 안 주려면 모르겠거니와 주었으면 그만이다. 우리가 마음을 쓰는 것에 있어 하늘에 계신 분이 힘든 이를 도우라 하셨지, 그 도움을 그가 어찌 탕진할지는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나는 다만 그가 젊고 완강하게 생겼기에, 나도 한때 겪었던 모멸과 궁핍을 벗어나 정말로 안전화를 사고 열심히 근면한 노동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부끄러움이 없길 바랐다.
그 때 점심을 먹으면서, 누님들은 야단이었다. 교회에 젊은 남자라곤 나 하나밖에 없는데, 목사님이 돈도 주시고 하셨으니, 또 누군가 오면 어떡하냐, 누가 막고 대적하냐, 그런 말씀들이었다. 별일이야 있으랴만서도, 나는 아직 어린 두 남학생들에게 사람의 움직임을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누군가 나를 때릴 것 같아서, 몸을 절로 움츠리고 고개를 돌린채 내 눈앞을 감싸안거나 상대의 주먹, 혹은 발끝만 쳐다보고 있으면,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겁이 나고 무서울수록 몸에 힘을빼고, 거리를 둔 상태에서 상대의 몸 전체 움직임을 보고, 특히 어깨와 허리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 나는 항상 상대의 공격이 맨손일때는 직선, 칼이나 무기를 들었을때는 (휘둘러야 하니까) 곡선으로 들어온다고 인식했고, 그러므로 선을 효율적으로 막으려면, 점이나 선이 아닌, 면으로 막아야 한다고 배우고 익혔다. 이것은 크라브 마가나 기타 소위 말하는 여러 군용 무술의 이론인데, 상대가 칼을 휘두르거나 주먹으로 칠때, 손을 오므려서 팔꿈치나 손목에 수갑을 채우듯이 밀어 막으면 훨씬 효율적이다. 즉, 선의 움직음 위에 면을 덧씌워 제압하는 것이다. 고류 태권도에서는 이 손의 형태를 악음손, 이라고 하며, 택견에서는 칼잽이 라고도 한다. 가라테를 비롯한 고류 타격기에서 애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즉, 상대가 칼을 들었거나 기세가 흉흉하다고 계속 물러나게 되면, 상대는 기세를 타서 끝없이 공격해오게 된다. 상대가 기세를 타기 전, 먼저 몸이 나가서 엄지와 검지를 Y자로 적당히 펼치 손으로 상대의 팔꿈치 안쪽이나 손목을 눌러 중심이 더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여기에서 문외한과 숙련자가 구별되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자신의 발언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민주시민으로서 교육받은 자라 할수 없다. 그러나 사회가 안정적이라고 할 지라도 개개인으로서 내 권리를 짓밟히는 일은 매우 흔하다. 그러므로 육체의 위협을 받을 때 나는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무기도 없을때, 내 몸은 나의 무기가 된다. 내 몸이 건강해야 나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고, 읽은 책 속의 내용을 사회에 적용도 할 수있다. 그러므로 무공을 하고, 띠를 허리에 맨 이는 언제 어느 때고 당당해야 한다. 프로 선수가 아닌 이상, 우리의 링은 늘 살아가는 삶 속에 있다. 삶 속에서 결코 도망가거나 반칙하지 않기 위해, 나는 일지를 쓰지 못한 때라도, 술은 마신 때라도, 아침 저녁, 출퇴근, 회사, 자기 전을 가리지 않고 팔굽혀펴기를 하고, 주먹 연습을 하고, 다리를 들어올리고 버티는 연습을 햇다. 누가 보면 이상하다 할지라도, 이렇듯 모래알처럼 조그마한 연습들이 쌓여 나를 만드는 무공이 된다. 나는 서른 살 이전에 사람을 제압하는 파편적 기술에만 골몰했으면, 서른이 넘어서야 기초가 더욱 중요함을 꺠닫고 언제 어디서든지 계속 하고자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