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배운 자의 품격 - 토정 이지함과 조선을 중심으로.

by Aner병문

솔직히 말해서, 나는 토정 이지함께서 정말로 토정비결을 썼을지 지금도 믿지 않는다. 나보다 훨씬 전문가들이 많을 것이므로,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한 내가 감히 입에 올릴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사주, 명리, 운세' 를 붉은 글씨로 새겨놓은 채 '동양철학관' 크게도 써놓은 간판 따위 볼때마다 부아가 나거니와 공부자와 라이프니츠도 매일 주역을 보고 점을 쳤다고는 하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군자의 작은 유희일 뿐이요, 철학은 사람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 상대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학문일뿐, 결코 무슨 귀신을 섬기면서, 이적을 행하고, 미래를 예견하는듯이 삿된 짓거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무쇠 솥을 갓 대신 쓰면서, 밥 해먹고 물 마시고, 심지어 거기에 용변까지 보시면서 천하를 주유하시다가, 늘그막에 아산 현감이 되시었는데, 백성들의 삶을 늘 살피시면서도, 게을러서는 안된다며, 손수 바다에서 소금을 캐고, 짚신을 꼬는 법을 가르쳐 기술로써 자립하게 하셨고, 아무리 나이 많은 육방이라도 일을 잘못하면 어린아이마냥 댕기를 땋게 하여 망신을 준 뒤 다시 일을 가르치시었다. 다만 그는 자식 복이 없어 아들들이 모두 일찍 단명하였는데, 그 유명한 화담 서경덕의 수제자이자, 기행을 많이 저지르는 듯 하면서도, 스승을 닮아 여색에도 꿈쩍하지 않았을 정도로 선비로서의 마음도 정갈한 이였다. 이런 토정 이지함이 과연 토정비결을 써서 앞날의 흉을 피하는 예견을 했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조선은 왜 학문의 나라였을까? 조선도 시대의 한계를 지녔고, 완벽할 수 없는 나라였으나, 나는 조선이야말로 동서양에 비교하기 힘든 학문의 나라라는 자부심이 있다. 커다란 중원은 왕조가 바뀌면서 중화를 지키기 어렵기도 했으며, 막부 지배가 길었던 일본은 화和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사무라이의 무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사람들은 공부만 잘하면 뭐하냐고, 공부 해봐야 소용없다고, 공부의 의미를 폄하하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사실, 조선은 공부를 잘해야 벼슬살이도 잘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조선의 근간을 받치는 유학이 '공부를 잘하면 착한 군자' 일수밖에 없는 이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술은 못 끊었지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서, 또한 비록 공부를 다 하지 못했으나 고등 교육의 말석에 있는 사람으로서도, 나는 도킨스의 이론에 완전히 공감하기 어렵다. 무슨 무림4대고수도 아니고, 그가 세계3대 석학이라느니, 하는 수식어는 누가 정해줬는지는 모르겠으나 공부를 많이 한, 나처럼 어느 소국의 대졸자 아저씨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사람임은 잘 안다. 그러나 그의 이론처럼 기승전- 유전자 라고 하기에 인간의 사회는 이미 너무 많이 복잡해져버렸다. 공부자는 이미 피로써 피를 씻는 춘추전국의 혼란을 몸으로 직접 겪은 사람이다. 지금의 치안이 불안하다 말하듯이, 공부자께서는 그 스스로의 무공은 출중했으나, 내가 늘 만나는 이웃이 덕을 갖췄는지, 무뢰배인지 판단할 길이 없었다. 그러므로 '응, 나는 착하고 배운 사람이야, 너도 그런 사람이겠지?' 하고 서로 확인하는 형식을 고안했다. 흔히들 '꼰대의 상징' 이라고들 오해받는 예禮- 즉, 예절이 그 것이다. 우리는 별 생각없이 안녕하세요, 식사하셧어요? 라며, 응, 역시 우리는 밥의 민족이구나, 맘 편히 웃기도 하지만, 내가 건넨 인사에 상대가 뭐 이 새끼야? 하면서 눈을 부라리면, 그 즉시, '아 이놈은 상종 못할 놈이구나.' 하고 관계를 단절할 것이다. 즉, 예절은 내 몸은 지키기 위한 사회적 탐색의 방식이면서, 동시에 나 역시 사회의 구성원임을 잘 드러내주는 하나의 꼬리표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학을 익힌 이들은 마땅히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했는데 능숙해야했고, 나아가 상대와 내가 더불어 편히 사는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할수밖에 없었다. 즉, 유학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편히 살기 위한 방식을 고민하고자 나온 정치술에서 출발햇으며, 그러므로 공부를 잘할수록 착해야만 했고(내가 나쁘면 누가 나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므로), 공부를 잘할수록,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이웃도 같이 잘 먹고 잘 살게끔 해야 했다. 적어도, 공부를 잘하는 놈이 착해서 정치도 잘한다 - 라는 믿음이 조선에는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 이론이 조선이 학문의 나라임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라고 믿는다. (물론, 늘 이론이 다 맞을수는 없고, 아무리 이론이 좋아도 미친 놈들은 늘 있어왔다. 늘 말하지만, 선조는 똑똑한 인물이었다. 공부를 안하고, 정철하고 둘이 짝짝꿍되어서 권력 유지에 미쳐서 그렇지..;;)



이야기가 멀리 돌았는데, 공부 잘했는데 제 신세 망친 사람들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들린다. 나는 이번 대통령을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 마치 제가 한명회라도 된양 거들먹대는 장모 씨는 제발 가정 단속부터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 정부부터 그가 눈을 부라리며 자신이 굳이 고위 공무원임을 들먹거리는 그 태도가 너무 싫었다. 그렇게 안 해도 그가 고관대작임은 온 천하가 다 안다. 나는 솔직히 이 사회에서 고관대작은 나보다 좀 더 잘 먹고 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누릴 건 좀 더 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쨌든 나보다 공부도 더했고, 노력도 더 많이 했을 터이다. 누구든 노력을 더 많이 했는데, 남보다 좀 더 비싸게 놀고 먹을 수 있으며, 그러지 못한다면 누가 더 고생해서 출세하려 하겠는가? 그렇지만 장씨는 항상 선을 넘는다. 그는 고관대작이 마땅히 지녀야할, '남들보다 많은걸 노력해서 누리기에, 그만큼 더 본을 보여야 하는' 여유와 품격을 전혀 보이지 못했다. D외고(나는.. 시험쳤다 떨어졌다.) 출신으로 해외 명문대학을 나왔음에도, 세상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그 뛰어난 언변과 어학실력과 과학기술력으로 오히려 가상화폐로 세상을 농락한 권모씨는 어떤가. 나는 볼때마다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지고 씁쓸하기 까지 하다.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술을 한 잔 할때 권씨의 뉴스가 나오면 아내는 여보야 또 화내겠다며 채널을 돌린다. 배운 자는 배운만큼의 값을 해야 하고, 그만큼의 품격이 있어야 한다. 일찍이 순자는, 그래서 자신이 조금 야트막하게 배운 지식까지 사람을 속이고 꾀이는 선비를 아주 속된 선비- 즉, 속유俗儒 라고 칭했다.



우리 나라는 어쨌든 늘상 법을 따져대는 법가法家이며, 이번 법무장관은 논란이 어찌되었든 뉴스에 나오는 언변이며 행태 하나만큼은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논란이 없는 자는 아니나, 그는 취재에서 늘상 침착하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산 사람이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런 것 때문에 내가 항소한다거나 불복한다면,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에 나는, 그가 최소한 고관대작으로서 스스로가 대중에게 어떻게 보이고 있을지 알긴 아는구나 싶어 무릎을 쳤다. 나는 더이상 이 나라에서 여당과 야당, 좌파와 우파, 노동정당과 친기업정당 따위의 분류를 믿지 않는다. 정당이 민중의 뜻을 온전히 대변한다고도 믿지 않으며, 그렇다고 어느 북유럽 국가들처럼, 모든 계급-계층의 사람들이 한번씩 돌아가며 1년씩 공직자를 다 해보는 사회도 우리에겐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노력한만큼 가질 수 있는 사회를 원하는데, 노력하지 않고도 가지는 불공평에 대해 오랫동안 논해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고학력자들에 대해 분노했다. 이는 여야를 가리지 않음에도, 어느 야당 의원은 코인으로 몇십억을 탕진했는데도, 부끄럽지 않다 말하고, 어느 의원의 아들은 퇴직금 명목으로 몇십억을 받는데도 당당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공부를 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전세계적으로 저성장의 시대다. 프랑스의 변두리 마을 갱강은,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저소득 지역이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연금개혁과 더불어, 우리 나라처럼 수도 빠리 중심의 정책 때문에, 빠리에서 멀리 떨어졌으며, 갈수록 수도권에 젊은 노동 계층을 빼앗기는 갱강의 시민들은 지역 평준의 정책을 요구하며 자주 시위를 벌인다고 했다. 이 시위 행렬에는 10대 초반의 학생들도 자주 보인다. 자신들의 나고 자란 도시이며, 앞으로도 살아가야할 도시이기 때문에, 갱강의 침체는 이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한국 학생들에게는 이런 행동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기대해서도 안된다. 사회 경로 자체가, 학생들이 일찍 독립해서 자신의 거주지에서 자신의 직업을 일찍 가지기도 어려우며, 대학 입시 후에도 많은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대부분 노동자가 되어 사회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많은 것도 바라지 않고, 일단은 십대 학생들이 제일 많이 소속된 학교의 환경과 교육부 장관 투표 등에 좀 더 많은 권리가 있었으면 한다. 그러러면 학교를 파악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고, 그 권리는 여유에서 나온다. 하루 6교시 이상의 수업을 하고, 하교 후에는 맞벌이하는 부모님도 없이 학원들을 도는 그 일상을 벗어나고 싶지, 이 일상이 왜 잘못되었는지, 누가 바꿔줄지 톺아볼 여유가 어디 있을까? 우리 회사 역시 노조 위원장 투표는 그저 형식을 뿐이다. 그러므로 품격은 여유에서 나온다. 많은 연습을 한 사람만이 맞서기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여유롭게 보고 파악하듯이, 많이 배운 이만이 배운 자의 품격을 지닌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 그런 배운 자의 품격을 지닌 이가 정말로 적다. 나는 배운데까지 배운 것을 내 자식들에게 모두 알려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사회는 늘 진보하겠지만, 우리의 삶은 어쩐지 자주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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