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그냥 옛 생각.

by Aner병문

그 날도 술에 젖어 취해 들어온 날이었다. 아버지는 늘그막에 찾아온 행복에 겨워계셨다. 어머니가 건강을 생각해서 승강기를 들여놓지 않은 4층 건물은 오르내리기만 해도 땀이 솟고 숨이 가빴다. 산맥 같은 계단 어귀에 머물러 나는 그치지 않는 장마를 탓하며 반쯤 열린 창문들을 닫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중창 새에 끼여 파닥이는 작은 벌 한 마리를 보았다. 그 벌이 꿀벌일지 말벌일지 땅벌일지 구분해줄 내 아내는 먼저 잠든 아이를 안고 들어갔을 터이기에 나는 그 벌의 종류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창문 새에 끼어 퍼득이는 그 벌을 내보내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뿔싸, 어머니가 고층으로는 고양이 한 마리 올라올 수 없다며 자신하시던 두터운 이중창 새에 낀 벌은, 두 창을 엇갈리거나 모두 한쪽으로 몰아 열어도 완전히 끼어버린듯 창 중간에서 도통 나가질 못했다. 한참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애쓰다가 그만 지쳐 계단참에 주저앉아버렸다. 자꾸 창문을 여닫다가 새에 낀 벌이 비벼져 죽을까 겁이 났다. 들어왔으니 마땅히 나갈수도 있어야 했는데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낀 벌 한 마리 구해주지 못하는 사내가 나였다. 집 안에서 내가 벌어먹여할 어린 생명과 젊은 아내가 있어 미안했다. 총각 시절의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으며, 손에 든 돈을 내일없이 책과 술에 써서, 마치 곧 창문 새에 끼어 오도가도 못할 벌과도 같은 신세였었다. 아내가 솜씨좋게 창을 열어 나를 거두어주시기 전, 나 역시 만남이 있으니 마땅히 이별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마음에 숭숭 난 구멍을 그리움으로 틀어막던 사내였었다. 그러므로 나는 계단참에 주저앉아 창 틈에 낀 벌을 오래두룩 보았다. 이미 잊고 묻고 사는 옛 생각이 가끔 들추어지면 이토록 민망하다. 아침 출근길에 창을 다시 살펴보니 벌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내려가시다 열어서 꺼내주시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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