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767,768일차 - 기쁘다, 장모님 오신 덕에!

by Aner병문

지난 주는 아내의 생일이었는데, 아내가 장모님께 받고 싶은 선물로 '엄마' 를 받고 싶어서 어머님께서 손수 휴가를 내고 3일간 머물다 가셨다는 이야기는 차후에 할 터이다. 다만 덕분에 나는 공식적으로 도장에 갈 명분이 생겼다. 어머니조차도 '야, 머덜라고 여자 둘 있는 집에 시커먼 남자가 사위랍시고 혼자 있을라 그냐, 화장실도 한 개고, 오랜만에 모녀 만났으니까 편하게 입고 회포풀게 너는 기양 서울 집 와서 자라이.' 하시니 '글믄 나 도장 갔다 옵니다잉?' 하면서 겉으로는 내심 아쉬운 척 물러나니 아내가 대번에 눈치채고 카톡 하나 남기었다. 룰루랄라 태권도 가시니 좋으신가!! ㅋㅋㅋㅋㅋ



랄라, 는 확실히 태권도에 어울리는데, 룰루 는 역시 광고답게 태권도보다는 다른 데에 더 적합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3일 내내 술 마시고 태권도 했다. 그러므로 오랜만에 총각 시절처럼 3일 내내 술을 마신 덕인지 새벽녘부터 배가 아파서 우당탕 화장실. 좀 나은가 싶었더니 출근길 지하철 내릴 때부터 또 꾸르륵. 정말 농담 안하고 빨리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길을, 돌아가신 이주일 선생 수지 큐 춤 추듯 허리 다리를 꼬면서 겨우 회사 화장실 도착. 오전 내내 퀭한 얼굴로 심지어 오한과 설사에 시달렸는데, 사실은 그 전날도 오랜만에 아내가 기름진 것을 많이 먹어서인지 급체해서 똑같이 오한과 설사가 걸렸더랬다. 이것 참 부부는 부부로구만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겨우 반차를 내어 도장으로 향하면서, 와, 나 오늘 훈련할 수 있을까, 몸이 이렇게 덜덜 떨리는데, 조금만이라도 힘 주면 바로 샐 것(!!) 같은데?! 더군다나 상태가 더욱 좋지 아니한 원인이 있었으니, 나는 정말 사내 자식이 얄궂게도 예민해서 잠자리가 바뀌면 며칠 잠을 못 잔다. 그 피곤한 신병 생활에서조차 내 베개가 아니라서 나는 몇 번이고 뒤척였고, 훈련소야 어찌어찌 넘겼다지만 자대 배치받은 경찰서는 어림도 없지, 눈물 젖은 각잠, 8단 차렷 자세를 혹시 전투경찰 선배님들은 알고 계시는지. 물새, 날아! 호와 둘~ 가는 그 곳으로, 셋넷! 떠! 나 간, 예엣 사랑~~ (이 노래를 알고 계신 분은 인연 닿으면 기동주나 한 잔 하십시다 ㅋㅋㅋㅋ)




아닌게 아니라 점심 무렵 도장에 가니 이미 오전반 수련이 거의 끝나 있었는데, 오랜만에 공도 형님이 나를 보시고 반겨주셨다. 아이고,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 근데 살 많이 찌셨네, 육아 하면 몸은 힘든데 살이 늘어요, 이제 우리 나이엔 이거 못 빼 이거, 이걸 그대로 쓸수 있는 힘과 체중으로 가져가야지. 아이고, 키가 190cm에 달하고 한때 공도를 하셨던, 그야말로 중앙도장의 명현만인 형님이나 가능하지, 저는 그냥 물살입니다 물살. 오전반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맞서기의 열기가 그대로 고여 있어서, 사실 배만 아프지 않으면 진짜 몸 좀 풀고 바로 맞서기 한번 해볼텐데, 몹시 아쉬웠다. 다행히도 도장에서 30분 정도 휴식을 취하니, 급한대로 잠은 해결했고, 오한도 풀려서, 겨우 훈련할 수 있었다. 다만 정말로 샐까봐(?!) 아령 들고 틀 연무는 못했고, 그냥 맨손으로 틀을 두 번 연무하고, 발차기 연습을 하고, 펀칭 백을 좀 치고, 그리고 팔굽혀펴기와 단련을 하고 하루 2시간 훈련을 겨우 채울 수 있었다. 그새 일곱살이 된 재경이가 다섯살배기 자기 동생과 함께 도장을 다니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2년 전에는 제 동생 서현이처럼 재경이가 다섯살배기라서 어쩌다 나와 마주치면 '대머이 삼춘이랑 집에 같이 가꼬예요.' 하면서 수줍게 탈의실 바깥에서 기다리고 했는데, 그새 또랑또랑하게 말도 더 잘하는 꼬마 아가씨가 되었다, 와, 대머리 삼촌(이제 발음도 똑바로 한다.) 애기예요? 귀엽다아~ 아이고 재경아, 우리 소은이가 너처럼 컸으면 바랄게 없다 ㅠㅠ



정말 우스웠던게, 내심 걱정하며 아버지와 이틀째 술을 마셨는데, 참이슬 2병에 오한도 배앓이도 모두 씻은듯이 날아가버렸다. 첫날은 당일치기로 오신 장인어른과 함께 어울려 한 잔 하셨고, 둘째날은 전복 안주로 또 한 잔을 하신 아버지는 천천히 드시고 꺾어서 드셨지만 늘그막에 찾아온 행복에 이이상 좋을 수가 없으신 모양이었다. 나는 배앓이도 없어지니 나는 겁날게 없어서 많이 먹고 마셨다. 다만 잠은 여전히 오지 않아서 한강의 희랍어시간을 밤새 마저 읽었다.



해장으로 또 태권도를 나가니 아내도, 장모님도 놀라고, 너도 놀라고, 곽선생도 놀랐다. 여하튼 배가 안 아프니 거칠 것이 없었다. 바로 아령을 집어들고 틀 연무를 하고, 발차기 연습을 하고, 풀업밴드를 발로 당기고, 펀칭 백을 오래 쳤다. 어느 틈에 양 발뒷꿈치에 행군 물집이 아주 두툼하게 잡혔는데, 그 동안 보법을 잊어버렸더니 도장 바닥에 그새 자주 쓸린 탓이다. 전날 술기운에 나는 물집을 전부 소독한 바늘로 터뜨려버리고 밴드를 붙였다. 펀칭 백을 칠 때는 가능한 서서 치지 말고 항상 움직이는 상대를 생각해서 발을 움직여줘야 한다. 나는 무릎을 깊게 기울여서 정강이 끝과 발목 부분으로 하단을 찼고,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면서 잽과 스트레이트를 친 뒤에 다시 옆으로 돌아 좌우 훅을 두 번씩 치고 다시 돌아왔으며, 왼손 오른손 찌르고, 바로 앞발로 옆차찌르기 후 다시 뒤돌아옆차찌르기, 그리고 무릎을 가볍게 든 상태에서 중단과 상단 연속 차기를 연습했다. 이렇게 쓰니 굉장히 잘한 것 같지만, 아직 체력과 근력, 유연성이 다 돌아오지 않아 엄청 추하게 쳤다. 다만 예전의 감각은 많이 돌아왔고, 무엇보다 몸이 게으름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것 같아 좋았다. 이 날은 또 돌아와서 아버지와 민물매운탕에 소주를 마셨으며, 결국 장모님께서 '우리 사위, 총각 시절엔 술 못 묵는다카디만은 술 마이 늘었디이?(미심쩍)' 한 마디 하셨고, 덕분에 어머니께 무척 혼났다.




그러므로 매일을 훈련으로 보내는 날은 언제나 건강하고 좋다. 창시자 님은 적어도 천 번을 연습한 기술만이 비로소 몸에 밴다고 하셨다. 맨손으로 소뿔을 날린 극진의 최배달 총재께서는 천 일의 훈련을 단 이라 하고, 만 일의 훈련을 련이라고 하여, 이 단련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셨다. 내가 논산훈련소에 있을 시절, 머리를 파르라니 깎고 눈이 부리부리하고 몸이 좋던 청년 훈련병 동기가 있었는데, 그는 그 유명한 역호산 선생의 제자였다. 한국 차력사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물 위를 걷는 삼손' 역호산 최광현 선생을 아는 이들은 그닥 많지 않다. 나도 국민학교 시절에 그의 자전소설을 읽지 않았으면 그가 누군지 몰랐을 터이다. 최광현 선생은 우리 전통 무예 8,000수를 익혀 전수한 이이자 철선녀 김단화 여사와 더불어 차력의 고수로 꼽히는 인물이다. 젊은 시절에는 커다란 바위를 운동기구 삼아 든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인물을 스승로 모셨던 이답게 그 훈련병이 했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한 번 오늘 발차기를 천 번 찬다 결정했으면 말임다, 무조건 그날 차야 함다, 피곤하건, 몸이 아프건, 뭐가 어쨋던간에 핑계대지 말고 무조건 그날 수련은 그날 해야 느는 겁니다. 아, 당시 겨우 택견으로 몸을 떼던 나는 그 때 그 말이 얼마나 멋있어보였는지, 나는 겨우 ITF 2단을 따고 허위허위 다시 살을 빼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 떄 그 훈련병은 스승도 돌아가신 지금 어데서 뭘 하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어쨌든 전신에 근육통이 올라올 정도로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