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퇴직과 이직은 슬픈 것이다.
아직까지 후련한 퇴직이나 이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바둑판에서 물러나온 장그래는 계약직 2년 동안 최선을 다해 원 인터내셔널에서 활약하지만, 그 역시 밀려나는 하나의 벽돌이었을 뿐이다. 매장과 업장 관리를 마지막으로 유기농업계를 잠시 떠났을 때, 나는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럴 정도로 구조에 얽혀 만나야하는 사람 간의 부담과 상처는 컸다. 군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사회 생활은 정말 못하겠구나 느꼈던 나답게, 어째서 예의범절 이외에 나를 굽혀가며 사회 생활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었고, 또 부당한 요구에 숙이고 들어가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랬듯이, 나 역시 '납득한 듯' 살아야 한다는 사실만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퇴직과 이직을 반복하는 내 삶의 모래톱에는, 제아무리 격랑이 몰아쳐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기억만이 남았다. 평생 직장 같은 건 이제 더이상은 없는 모양이었다.
네루의 편짓글을 읽으면서,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물화에 대한 비판을 보았는데, 세상은 물화가 극심하다 못해 이제 사람 자체가 하나의 물건이 되었다. 마치 택배 배달하듯, 노동자를 대신 고용하고 실어날라주며 또 때되면 거둬가는 회사가 있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마치 배달 앱처럼 노동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중간 이득을 받았다. 최규석 작가의 '송곳' 에서도도 극명하게 나오듯, 그들은 아무리 직장에서 평생 일해도 그 곳에 소속된 노동자가 아닌, 그저 다른 데서 실려온 날품팔이와 다를게 없었다. 노동자들의 고난과 고통과 피로는 일하는 직장에 배어들어가지 못했고, 그들을 부려온 노예선 선장 같은 '아웃소싱' 하청업체의 관리자에게 대신 전달되었으며, 그들은 자신이 일하던 곳에서는 말 한 마디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시말서를 쓰거나 계약 해지되거나 휴대전화로 '관리' 될 수밖에 없었다. 함께 공간을 쓰는데도, 소속이 달랐고, 어떤 이들은 전혀 접촉할 일이 없었다. 그들은 때때로 하릴없이 정규직임을 자랑하듯 자기들끼리 모여 간식을 먹으며 웃거나, 야유회 계획을 짜거나, 회식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므로 코로나를 탓하기 전에 이미 노동자들 간에도 계급 분화로 인한 비대면 거리두기는 이미 시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어느 사내는 왜 아버지가 갑자기 술에 취한 날 기름이 가득 배인 갈색 봉투에 튀긴 통닭을 사오셨는지, 왜 수염이 돋아난 꺼칠한 턱을, 어린 아들딸들에게 비볐는지 그때서야 알겠다고 했다. 그 날은, 젊은 아버지 역시 참을 수 없이 힘든 날이었지만, 처자식을 생각해서 억지로 소주 한 잔에 꼬인 속을 눌러넣고, 그렇게 통닭을 뜯는 아이를 보며 메마른 침을 삼켰을 거라고, 이제서야 그때 마음을 알겠다고 했다. 나 역시 아내가 보내오는 딸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괜시리 또 앞날을 걱정한다. 아내에게는 속이 다 덜어놓지 않고 적당히 앞날에 관해서만 말해주었다. 이미 한 번 고된 이직의 경험이 있는 아내는, 나랏밥을 먹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찌 평생 직장이 있겠느냐며, 아직 우리가 굶거나 춥지 않으니 조금 여유를 갖고 살피라고 위안해주었다. 어머니께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나는 요즘 책을 읽고 훈련을 하며 번잡스러운 세상을 일부러 잊으려 하고 있다. 여지껏 지내온 직장이 그렇듯, 이 회사에서도 몇몇 소중한 사람이 남았다. 젊은 시절 몇번이나 읽다 묵혀둔 진중권 선생의 미학 오딧세이를 읽다가 깜빡 잠이 든 점심시간, 아직 어린 티가 초롱초롱한 아가씨가 진한 초콜릿 향이 나는 커피 한 잔을 사서 놓고 갔다. 다정하게 잘대해주셔서 고맙고, 이제 못 봐서 슬프다고 했다. 술은 못해도 밖에서 꼭 보자고 했다. 대학 도서관의 가나 초콜릿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나는 쓰읍 침부터 훔치었다. 이미 나는 몇 개의 술 약속이 또 잡혀 있어서 어떻게 아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나 고민이다. 요즘에는 이런 것조차 받는게 무섭다고 했더니 너는 이야기를 듣고 깔깔 웃었다. 정확히 2년, 아직도 2년 전 오늘, 동갑내기 총각과 비를 쫄딱 맞고 교육받으러 가던 강남 거리가 눈에 선한데, 꼭 두 해를 채우고 제대하듯 이 직장을 떠난다. 알 수 없는 감정을 나 역시 술로 누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