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어묵국수를 먹었다.
장모님이 계시는 3일 동안 하루 한 끼만 술을 곁들여 실컷 먹고, 나머지 시간에는 도장에서 훈련하고 책 읽었더니 2.2kg가 훅 빠졌다. 물론 물을 좀 마시니 어느 정도 돌아오긴 했지만, 그동안 살만 쌓아두며 물러지던 몸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하여 어제도 출근한 뒤 사과와 키위만 조금 먹고 딱히 식사를 하지 아니했는데, 퇴근길에 세찬 비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어묵국수 생각이 났다. 지금 냉장고에는 장인어른께서 부산에서 직접 가져오신 어묵이 가득하니, 국수에 말아 후루룩 한 그릇 먹으면 뚝딱이겠다, 싶어 목젖이 꿀렁 춤을 췄다. 하여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조심스레 물어보니 흔쾌히 답이 왔다. 아내도 3일간 푹 쉬고, 아이도 심하게 투정부리지 않아 퇴근시간에 맞춰 준비한다니 절로 흥이 났다.
다행히도 돌아오는 길에는 그렇게 비가 세차지 않았다. 불과 퇴근 20분 전만 해도, 숲처럼 빼곡히 들어찬 강남의 건물 새로 회오리바람이 불며 비가 말려올라가 우산을 쓴 사람들이 오히려 아래부터 젖는 진기한 광경을 사무실 안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주일 출근도 괴로운데 푹 젖을 일은 없었는지, 퇴근할 무렵에 비가 잠시 걷혔다. 그러므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모처럼 추억의 어묵국수를 마음껏 떠올렸다. 내멋대로 살던 가게 시절, 부천 북부역 광장 앞에는 어묵과 떡볶이를 파는 큼직한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다. 낮에는 여는 일이 드물었고 오히려 밤 늦게 영업을 시작하여 새벽에도 불을 훤히 밝히는 곳이었는데, 한 그릇에 2,000원, 어묵 하나 올려주면 500원을 더 받는 국수 한 그릇이 얼마나 불티나게 팔리는지 여름이고 가을이고 줄을 서 발 디딜 곳조차 없었다. 가게 영업을 마치고 새벽녘에 스윽 들르면, 코끝에 취기가 어룽어룽 매달린 아직 어린 아가씨들과 그 아가씨들을 흘끔거리며 수줍게 킬킬거리는 청년들이 서로 엉켜서 국수를 후룩후룩 빨아먹곤 했다. 대단할 건 없고, 그저 이미 소면을 담아둔 그릇에 어묵을 끓이던 칼칼한 육수를 붓고 어묵 하나 얹었을 뿐인데도 왜 그리 맛있던지, 당시 구제 패션에 흠뻑 빠져 있던 옷 가게 형님과 술을 한잔 하다가도, 또 홍대 쌀사 클럽에 춤추러 가기 전에도(한때 춤바람 나서 메렝게, 쌀사, 바차따 스텝 맨날 밟고 그랬다...), 독한 술 한 잔에 파라핀 양초 아래서 아무리 책을 읽어도 눈치주지 않던 단골 바에 들르거나 나온 후에도, 어김없이 한 그릇씩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가게가 망하고 나서 부천역 쪽으로는 정말로 지금까지 근 10년이 다 되도록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다. 최근에 아내가 부천의 만화박물관에 한 번 가고 싶다고 했을 때에야 처음으로 그 때 그 국수 생각이 났었다. 부천북부역의 어묵국수와 굵고 통통한 소시지에 칼집을 내고 기름기 좔좔 흐르게 구워 소스를 잔뜩 뿌려주던 핫도그에 문득 추억이 서린다.
여하튼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는 벌써 또 기저귀를 황금으로 바꾸어놓고 속이 편안하여 까르르 웃고 있었다. 요즘에는 바닥에 눕히자마자 전방낙법 치듯 바로 굴러서 엎드린 뒤 열심히 배밀기를 하고, 또 그러다 시들해지면 일으켜달라고 마구 소리를 지르는 통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아내가 대파와 양파와 버섯을 잘라넣고 큰 멸치를 넣어 끓인 육수에 기름진 어묵 한 팩을 퐁당 넣고, 다른 냄비에는 소면을 삶아 찬물에 식힌 뒤 손으로 돌돌 말아 국수덩이를 쌓아두는 동안 나는 아이를 씻기고 다리 새를 말리고 기저귀를 채웠다. 팬티처럼 입는 일체형 기저귀를 아이가 성가셔 하므로 매번 입히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어묵의 구수한 향기가 피어오르는 동안 TV에서는 열린 음악회 대신 재난 특별 위로 방송으로 국내 클래식 거장들의 음악이 1시간 동안 흘러나와 황홀했다. 재난이 심한 지역에는 죄송스럽게도, 가느다란 빗줄기에 아내가 끓인 어묵국수, 쇼팽의 녹턴, 그리고 냉장고에 오래 넣어두어 터져버린 막걸리까지 곁들이니 정말이지 바랄게 없었다. 아이고, 이를 우짜노, 내 오늘은 술 안 줄라 캤디만은, 고모가 사온 양평막걸리 터져삤네, 야, 오늘은 여보야 술 무라 하는 날인가봅니데이, 요거만 잡수소, 하고 아내는 1/3쯤 쏟아버린, 탄산투성이 막걸리를 가져왔다. 아내의 물잔과 내 막걸리 잔이 부딪힐 때, 아이가 뭘 안다고 손을 쓱 내밀어 내 잔에 톡 부딪혔다. 아내는 아이를 끌어안고, 아이고, 우짜노, 아부지가 술쟁이라 니도 벌써 닮아가나, 하고 캬캬 웃었다. 나는 이미 김이 빠진 막걸리를 한 모금 가득 넘기고 있었기 때문에 웃을 때를 놓쳤다. 어머니가 담가주신 열무김치에 한 잔, 다시 아내가 끓여준 부드럽고 말캉하고 고소한 어묵에 한 잔, 국물을 부어 풀어진 소면을 후루룩 빨며 한 잔, 아, 총각 시절의 그 맛은 아니지만, 내가 꾸린 가족과 함께 먹는 어묵국수가 행복해서 나는 킬킬 웃었다. 총각 시절과 남편/아비 시절의 어묵국수가 달라지듯이, 나도 새삼 달라졌음을 느끼게 하는 맛이었다. 정말 행복해서 지금도 혀가 찌릿찌릿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