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1083일차 ㅡ 유단자 틀 천천히 복습!
색싯감을 구하러 가는 길에도 배꼽을 드러낸채 포도를 따먹으며 세상 거칠 것이 없었다는 서성 왕희지의 필법은 말 그대로 일필휘지, 한 호흡에 적장의 몸을 내려베듯 일시에 글씨를 완성했기에 그를 흉내내는 가필 假筆 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획에도 여러 호흡이 섞여, 붓놀림이 끊긴 조잡함이 드러난다 했다. 무협지를 보면 붓에 통달하여 검을.능히 다루는 고수의.이야기도 나오는데 어떤 원리에 있어서는 비슷한가 싶기도 하다.
태권도를 십년 가까이 하고 나서야 겨우 틀을 아주 천천히 할 여유가 생겼다. 항상 도장에서 모든 동작들을 허우적허우적 해야 할 이유가 넘치듯 많았다. 힘이 모자라서, 잘 몰라서, 빠르기와 탄력을 빌어 동작들을 넘겨버려야 해서, 바빠서, 얼른 끝내고 출근하거나 아이 보러 가야 해서, 술이 덜 깨서, 동작이 어려워서, 산맥처럼 늘어선 이유들을 넘지 못하고 지금껏 십년 세월을 채워왔다. 태권도에 입문하기 전, 택견이나 권투나 종합격투나, 주짓수, 중국무공을 하던 십년도 다르게 보내지 않았을 터이다.
이제서야 겨우 동작을 아주 천천히 한다. 집에서는 보 맞서기를, 도장에서는 틀을, 횟수와 시간에 연연하기보다 온몸에 힘을 풀다 넣으면서 정확히 서고, 뻗고, 치고 차고 거두려고 노력한다. 가장 쉬운 동작조차 새삼 이토록 어려웠던가 낯설었다. 한 시간 꼬박 유단자 틀 9개와 팔굽혀펴기를 마쳤다. 현재 나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