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훌륭한 철학이 참말 많다.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중국을 황제의 나라로 섬겼고, 먼저 서구화한 일제에게는 강제침탈의 굴욕도 당했다. 독립 또한 온전히 자주적으로 이루지 못했으며 지금도 그 병폐가 남아 있는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거대한 중국과 부유한 일본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왔다는 패배주의적 사관을 종종 본다. 오죽하면 지금은 매체에서 찾아볼수 없게된, 어느 신문 편집장 출신 음식평론가는 도대체 조선왕조에서 본받고 남길만한 전통이 있더냐며 일갈하기도 한다. 슬프고.안타까운 일이다.
원조 태권도의 창시자, 창헌 최홍희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부유한 선비의 자손으로 태어나 한학과 서학을 모두 익혔고, 일본의 대학에서 영어와 가라테를 오래 배우며 문무를 겸비했다. 하지 중장을 필두로 해방공간을 지배하게 된 미군정은 이른바 근대화된 친일파와 그 잔재구조를 친미 역할의 교두보로 적극 활용했다. 일제시대 조선경비대의 장교였으며 가라테하는 최 참의로 명성을 떨친 고수였던 장군께서는 사실 남들 하는대로 관료로 남아 본인에게 능통했던 가라테를 그대로 활용할수도 있었다.이른바 경기화된 근대 태권으로 정착하기 전, 초기 태권의 정립 시기에 학문과 사회와 정치가 그랬듯이 당시 한국의 무림 또한 중국 권법을 배워오거나 가라테, 유도, 합기유술 등을 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했다. 그 자체가 나쁘다고.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류에 함께 본인의 기예를 그대로 활용할수도.있었는데, 부득불 기존 기득권들과의 반발을 무릅써가며 가라테를 개량한 창헌류 태권도를 국기 國 技 로서 창시하셨고, 수없는 발전을.거쳐 지금의 ITF가 되었다. 어디 내놓아도 당당한 우리의 무공이다.
피로사회를 쓴 재독철학자.한병철 선생도, 철학이 결핍된 조국을 아쉬워하며 전유의 철학과 사상이 없는 한국사회를 개탄했다. 우리 힘으로 자생적으로 이루지 못한 근대화, 우리 힘으로 쟁취하지 못한 독립을 기반 위에 이룬 괄목할만한 성장에는 그러한 결여가 숨어있다. 그러나 비록 강신주 선생이 제아무리 중국 신유학과 서구 사상의 퍼즐 짜맞추기라 비판해도 우리에게도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뿐 아니라 화담 서경덕, 고봉 기대승, 혜강 최한기, 다산 정약용, 단재 신채호, 수운 최제우, 능소 이어령 선생 등 다양한 사상가, 철학자들이 분명 있다. 그들은 다른 사회를 갈망하거나 편입하려 들지 않았고,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사회를 함께 살며, 이 사회의 결격을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고민한 이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