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비 순트 - 갈수록 깊어지는 어느 학자의 지향성.
정연진, 우비 순트(Ubi Sunt)- 삶의 방향타를 잃고, 북랩, 한국, 2023.
생각해보면 선생님과의 인연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알 수 없다. 사실 인연이라고 부를 정도로 질긴지 굵은지,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도 솔직히 알 수 없다. 덤벙거리고 촐랑거리면서 실수가 잦은 사람을 충청 말로는 '들꿩쇠(새)' 전라도 말로는 '날랑새' 같다고 하는데, 아마 날랑새 같은 내가 또 글줄이나 읽었답시고 몇 마디 댓글을 점잔빼며 달았을 터이다. 한 번 뵌 적도 없지만, 기질이 점잖으시고 조용하신 선생님께서는 이게 웬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저씨인가 싶으면서도 고이 품어주셨을 터이다. 몇 번 댓글을 주고 받앗는가 했더니 갑자기 책을 보내주셨고, 그래서 솔직히 내 취향이나 범주에서는 인연을 맺기 힘들었을, 선생님의 글들을 주기적으로 받아보게 되었다. 늘 한없이 얘기하지만, 느리고 경박하여 부족한 사람인데, 부끄럽고 감사하다. 행여나 연이 더 닿아 약주라도 한두잔 나눈다면, 부끄러움에 내 술잔은 이미 넘쳐 들지도 못할 터이다.
왓슨빌과 계절의 오행을 먼저 받아 읽었고, 영문판은 내년의 영어 공부에 조금이라도 보태두려고 잠시 묵혀두고 있으며, 최근에 아내에게 내려가는 길에 마침내 여유를 내어 선생님의 신간을 읽었다. 책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낯선 제목 우비 순트(Ubi sunt)는 우리 앞에 있었던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라틴어 문장 Ubi sunt qui ante nos fuerunt 의 앞 두 단어를 따왔다. 우리 앞에 먼저 있었던 이들을 더듬어 생각하는 일은, 이와아키 히토시가 기생수의 말미에서 말하듯, 여유로울 수 있는 인간만이 갖는 특권이다. 인간은 현재에 있으면서도, 과거와 미래를 재구성할 수 있고 기꺼이 지금 없는 무언가를 그리워하기도, 예상하여 짜맞추기도 한다. 부제는 무려 삶의 방향타를 잃고, 라고 어마어마하게 붙었으며, 머리띠의 문구는 '스승의 타계로 힘든 시간을 보낸 뒤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소중한 시간을 되새기며 성장해가는 어느 학자의 이야기' 라고까지 소개되었다. 그러나 사실 책 속의 내용도 그렇거니와 평소의 일기, 또 영어공부까지 도와주시느라(선생님, 감사합니다 ㅠㅠ) 메시지로도 가끔 주고받으며 드러나는 선생님의 범주는 결코 그에 한정되지 않는다.
훗설 아카이브를 남긴 훗설은, 칸트 이후의 인식론을 깊이 파고 들어갔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건 물자체나 인식보다, 물자체를 느끼도록 하는 마음의 지향이었다. 즉, 양명 왕수인의 심학처럼, 내 마음이 외부를 향해 나아가야만 비로소 나는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명장이었던 공손기의 조부 공손웅승은 초나라 왕실에 복수할 궁리를 하느라고, 지팡이를 거꾸로 쥐는 바람에 그 끝이 턱을 찍어대어 집까지 선지피가 강을 이루는데도 아픈 줄도 몰랐다고 했다. 왕양명과 훗설의 말대로 하면, 공손웅승의 마음이 지팡이에게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며, 하이데거의 표현대로 하자면, 지팡이의 불편함이 구태여 공손웅승의 마음의 지향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하이데거는 스승의 학설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가 단순하게 마음이 나아가고 물러남이 아니라, 일상에서 불편함이 있어야만 비로소 주변을 인식한다는 이론을 전개했으나, 훗설은 이를 반대했고, 때마침 하이데거가 히틀러와 나치에게 헌신하게 되면서, 유태인 혈통의 훗설은 제자의 악의적인 방치 아래 연구자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삶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왓슨빌에서의 선생님이 알 수 없는 균형점에서 묘하게 흔들리는 아이 같았고, 계절의 오행에서 세상의 변화를 먼저 받아들인 뒤 비로소 감상을 더한다면, 우비 순트에서 선생님은 한 단계 더 깊어진 나른함을 보여준다. 단순한 나른함이 아니라 이유있는, 적극적인 나른함이다. 마치 왕양명과 훗설의 지향성처럼, 선생님은 자신의 몸에 닿는 모든 일상들을 사유하여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심지어 때때로 불편하거나 힘들때에도 그에 대해 지거나 밀리지 않고, 또다시 이유를 찾아 생각하며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전 작품에 비해 선생닝믜 문장은 훨씬 정돈되고 안정되어 좋았는데, 일상의 맥락마다 선생님의 생각이 꽃핀 듯하여 좋았다. 역시 물질의 이치와 인문학적 감성을 두루 통달하신 전문적인 학자다운 태도라서, 나 같이 겨우 읽기나 하는 경박한 이는 따라가기 어려운 깊음이라고 생각했다.
가을쯤에 차현 형님이 신간을 내셨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비로소 알았다. 곽선생은 '명색이 팬을 자처하면서 이제야 알았냐' 며 핀잔을 주었다. 글을 쓰기도 힘든데, 그를 엮어 책으로 펴내고 심지어 판매하여 책의 주인으로서 사는 일조차 얼마나 기가 질릴까 싶다. 오래 전 무서워서 나는, 공부의 길도, 무공의 길도, 심지어 글을 쓰는 일조차 모두모두 포기해버렸다. 내 일상을 채우는데도 허덕이어 나는 그냥 평범한 아비이자 남편으로 사는 일이 제일 좋았다. 이런 나를 늘 잊지 않으시고, 전문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작가로서 바쁘고 힘드실텐데도 때되면 연락주시고, 좋은 책을 보내주시는 선생님께, 다시 한번 몇 줄 안되는, 감평을 바칩니다. 유독 더 즐겁고, 맛있는 문장들이 많아 술 마시듯 즐겁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