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나뽈레옹 - 빠리의 봄, 그리고 금쪽 같은 우리 황제.

by Aner병문

감독 리들리 스캇, 주연 호아킨 피닉스, 바네사 커비, 나폴레옹, 미국, 2023.


우리 아버지 세대에서나 알법한 술들이 있다. 그래도 몇몇 유명 유튜버들이 시음 영상을 올린 악명높은 '캪틴큐' 는 '한 번 마시면 3일 뒤에 깨어나기 때문에 다음날 숙취가 없는 술' 로 명성을 떨쳤지만, 비슷한 술로 나폴레'온' 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대학 가고 나서야 술을 배운 80년대생 나로서는, 사실 두 종류 전부 마셔본 적도 없고, 또 마시고 싶지도 않지만(^^;; 1주일에 한두번 마실까 말까 하는데 좋은 술 마셔야지!) 여하튼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명장 나뽈레옹의 이름을 빌린 국산 양주가 있다니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이다.


나뽈레옹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난 작은 청년이었지만, 수학과 포술에 능한 명장이었고, 프랑스 혁명에 합류하는 듯 하더니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라 전 유럽을 휩쓸었다. 왕의 목을 자른 나라에서 얼마 안 있어 황제를 모셨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내 사전엔 불가능이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종횡무진했으나, 트라팔가 해전에서는 넬슨 제독에게, 워털루 전투에서는 웰링턴 공작에게 대패하였다. 유배갔던 엘바 섬에서 잠시 탈출하여 '짐은 여러분들의 꼬마 부사관이다!' 라는 인기를 구가하며 잠시 복위하기도 했지만, 그 유명한 나뽈레옹의 100일도 잠시, 세인트 헬레나에서 영영 삶을 마치고 만다. 알렉산더, 광개토대왕 등에 비하면 비교적 길게 살았지만, 율리우스 카이사르, 칭기즈칸도 그렇게 오래 살지 못했던걸 보면 왕년의 땅부자들은 하도 격렬하게 살아서 단명하는가 싶기도 하다.



아내와 모처럼 시간이 나서 영화관에 가볼까 했는데, 그 유명한 서울의 봄이 온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어 다른 영화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안 보려던게 아니라, 모처럼 쉬는데 지나치게 힘든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아 다른 영화를 고르려는데 마땅한 영화가 없었다. 아내가 운전할 동안 시간표를 보는데, 잉? 나뽈레옹 영화가 3시간 짜리야? 하고 감독을 보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다. 서양 사극의 절대자 리들리 스캇...(...) 스캇 감독의 지지자들은 극장판을 보지 않고, 오로지 감독판만을 선호한다고 한다. 킹덤 오브 헤븐을 보면서도 익히 알수는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나뽈레옹 역시 원본은 4시간 50분짜리란다. 캔맥주 하나 사들고 가서 아내랑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역시 편집은 말 그대로 개판. 나뽈레옹에 대해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영화 자체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생각보다 전쟁 장면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지만, 웅장하고 박진감이 넘치며, 또한 15세 이상 관람가치고는 좀 야하다...(...) 나는 대구 롯데씨네마에서 봤는데 뒷자리에서 자꾸 헛기침이 들려서 흠흠... 하지만 리들리 스캇 감독 특유의 서사는, 비록 난도질당한 필름이라도 뼈대가 살아 있었고, 무엇보다 완전 르누아르 화풍으로 매 장면마다 얼마나 색감과 질감에 공을 들였는지, 그럭저럭 볼만했다.



스캇 감독은, 조제핀 황후에게 목매어 연약하고 나약했던 황제 나뽈레옹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는데, 혁명기의 혼란한 프랑스에서 나뽈레옹이 어떻게 출세하고, 어떻게 위대한 황제가 되는지, 또 거기에서 조제핀 황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거의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결국 위인전과 먼나라 이웃나라 수준의 지식으로 모든 걸 파단해야 했다. 서사의 공백만 스스로 메울수 있다면, 전기영화 나뽈레옹은, 스캇 감독의 영화 치고는 극장판으로서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특히 왕년에는 로마 제국의 황제였다가 약 이십년 뒤 프랑스의 황제가 된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은 예나 지금이나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아내가 모처럼 아주 즐거워해서 좋았다. 장인어른처럼 은근히 전쟁 서사물을 좋아하는 우리집 국방부 장관..ㅎㅎ (술 많이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 바로 진돗개 1호 발령, 집안 문 잠급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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