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1091일차 ㅡ 반대주먹 같은 삶의 축
오랜만에 팀장님께 불려가 하루 세 번 신나게 혼난 날이 어제였다. 사람은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을 하고, 참을 인도 세 번이며, 팀장님 또한 나의 낮은 근태평가를 석 달 간 참아주셨으니, 참으로 한국인은 3번과 인연이 깊다. 여하튼 늘 둔하고 느린 마흔둥이 나를 음으로 양으로 보듬어주시는 건 분명한 사실이거니와 어제 실컷 혼내키시고는, 마음이 쓰이셨는지 오늘 쉬는 날이신데도 쓰윽 나와서 나 한 번 건너다보고 가셨다. 사람마다 생각도 다를 것이요, 푸꼬의 말마따나 중간관리자나 부하 직원이나 자본가 밑 노예인건 한가지인데 사슬 자랑하는듯 하는듯도 싶지만, 그래도 팀장님께서 늘 큰형님처럼, 아부지처럼 신경써주셔서 나도 어찌저찌 밥 먹고 살았다.
물론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건 아니다. ^^;;; 소은아, 애비가 이래 돈 번다ㅜㅜ
가끔 나는 왜 더이상 본업도 아닌 독서를, 태권도를, 잠까지 줄여가며 몰입하는지 내 스스로도 이상했던 적이 있었다. 단순한 구별짓기일까? 실상은 포기하고 몰락한 패배자이면서, 여전히 나는 다르다는 생각 때문에 미련이 남았을까? 물론 없지는 않을 터이다. 전면으로 부정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내가 낸 또 하나의 답이 있으니, 그건 때때로 아무 상관없어 뵈는 이러한 취미들이, 내 삶의 축처럼 내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요컨대 팀장님께 연달아 불려가, 세상말로 작살나게 깨질 때, 오로지 그 영역에서만 내 가치를 한정지으면 나는 밥벌레 술벌레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십년 이상 어머니 밑에서 한자와 고전을 배웠고, 대학교에서도 그와 관련하여 고등교육의 말석에 있었다. 내 인생 가장 오래 연마했고 집중했던 영역에서도 나는 실패하고 물러나 쫓겨나듯 뒤늦게 속세에서 취업을 시작했다. 그러니 잘할 턱이 없다. 이 쳇바퀴 같은 노동시장에서 늦되고 덜떨어진 아비이자 남편으로서, 내가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방법은, 교회에서 기도하고 아내를 비롯한 선한 성도들께 예쁨받으며, 허락받아 술 마시는 일 이외에도, 잘하건 못하건 책을 읽고 태권도를 연마하며 전혀 다른 영역에서 내 스스로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흰 띠 사제들께 바로서찌르기 로 기본기를 가르쳐드릴 때, 공격하여 찌르는 주먹만큼이나 허리에 붙이고 선 반대 주먹 또한 중요하다 늘 강조한다. 그 이유란, 찌르기가 나가는만큼 뒤로 물러나 반작용의 힘을 보태며, 병장기의 자루가 무겁듯이 축 역할을 하여 찌르기가 지나치게 앞으로 딸려나가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세에서 늘 모자란만큼 태권도와 독서는 마치 찌르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반대주먹처럼 내 삶을 수수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버텨준 축이었다.
물론 본업이 아닌만큼 매일 똑같이 넘치듯 할수는 없다. 추위를 뚫고 한산한 도장으로 가서, 몸을 풀고, 사주찌르기, 사주막기, 천지, 단군, 도산, 원효, 율곡까지 사이사이 팔굽혀펴기하며 슬슬 열이 나고 땀이 솟는다 할 때, 아버지 어머니께서 내가 없으니 소은이가 도통 말을 안 듣고 목욕도 아니 하고 힘들다 하시니 서둘러 도로 씻고, 콜라 부사범에게 양해를 구하고, 돌아올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 내내 저리고 무겁던 오른무릎을 쉬게 해준다 했지만, 나는 여전히 저녁마다 매일 배명훈 선생의 신작 단편을 한 편씩 읽었고, 천국의 계단을 삼사십분씩 타며 땀을 냈고, 유튜브로 강유류 剛柔流 가라테의 옛 카타를 흉내내며 놀았다. 정식으로 고류 가라테의 띠를 매본 적은 없고 몇몇 수만 주워배웠으니 연습이라 할 것도 없지만, 고류 가라테의 시원시원한 움직임은 태권도에도 도움이 된다. 막 감을 좀 잡으려기에 아쉬웠으나 내 본업은 내 자식을 돌보는데 있다. 내 자식 떼써서 다른 가족이 힘들다는데 모르쇠 조기축구나 하는 철없는 남편마냥 굴 수는 없어 서둘러 돌아왔다.
집안 정리를 해놓고 아쉬워서 보 맞서기 삼십개를 대신 마저 했다. 도장에서 도복 입고 격을 갖추어 다 못 한 일은 아쉽지만, 늘 욕심을 부릴수는 없다. 고류 가라테도 홍가권도 시대는 다르지만, 외세에 맞서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야마토의 사무라이들은 옛 오키나와 류큐 백성들의 칼을 빼앗았고, 서양 병사들은 청나라 청년들을 총포로 위협했다. 류큐 백성들과 청나라 청년들에게는 오로지 손발밖에 남지 않았을텐데, 도장다니듯 마음편히 시간 정해놓고 여유롭게 연습하지는 못했을 터이다. 쫓기고 도망다니며 그때그때 돌이며 나무를 두드리며 단련했을 터이고, 급하게 배운 기술을 몸소 쓰며 익혔을 터이다. 오랫동안 연습했던 공도 형님에게도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으니, 치열한 맞서기에서 이기는 와중 에도 형님은 전화가 울리며 바로 받으면서, 여보, 응, 가는 중이야, 하며 말없이 목례만 꾸벅 하고 탈의실로 바로 들어가셨다. 갈 데 없이 세상에 치이는 가장이 되니 역시 형님이 대장부인 줄 이제야 새삼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