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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Jan 21. 2024

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군계 - 규칙을 거부하는 싸움닭 같은 남자의 짧고 불쾌한 인생.

글 하시모토 이조, 만화 타나카 아키오, 군계軍鷄,Shamo, 학산문화사, 2015, 일본(출판사 이브닝)



폭력이란 건 무엇일까? 어렸을떄 학교에 돌아오면, '가방 내려놓고 손발 씻고, 복습버텀 해라잉.' 으로 시작하여 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 1시간 공부하면 10분씩 쉬다가 저녁 한번 먹고, 또 어머니께서 이제 그만 자라고 할때까지 공부하던 그 때의 시절이 폭력이었을까? 물론 워낙 힘들게 사셨기에 자식 한번 출세시켜보고자 공부를 엄격하게 시키시려고, 험하게 매를 대시고 밥 굶기고(진짜임), 겨울에 방에 난방 안 때주시고(진짜임!) 그 모든 결과가 어머니께서 실로 열정적이셔서 그렇다는 이해를 하게 된 건, 솔직히 나도 내 애를 낳고 나서였다.  막 코로나가 번지어 마스크를 쓴 어머니, 아버지, 일가친척이 한명씩 돌아가며 출입증을 목에 걸고 30분 내로 모두 아이를 보셔야했을 시절, 나는 막 코스모스를 읽은 뒤였고, 이틀 밤 동안 자연분만 애를 쓰느라 아내는 녹차 라떼 한 잔 뚝딱 하고 천둥처럼 코를 골며 잠든 그 때였다. 나와 똑같이 생긴 내 딸아이를 보았을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는 저 녀석을 어찌 먹이고 입히고 키울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어느 부모가 그러지 않으랴. 그러므로 상식적인 선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의도를 갖지 않은 이상, 부모는 가장 폭력을 가하기 쉬운 거리에 있으나, 반면 누구보다도 폭력을 가하기 어려운 이이기도 하다. (이런 말을 굳이 문장으로 옮겨야만 하는 세상이 슬퍼진다.)



사실 지금 생각하여 폭력이라 하면, 오히려 집 바깥에서 당한 일들이 폭력일 터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의 반열에도 오른, 가장 직관적인 남자, 유하 감독의 그 유명한 '말죽거리 잔혹사' 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남자들에게는 '수컷들의 세계'가 있고, 당시의 나처럼 책만 읽고, 시 쓰고, 노래 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밥' 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과 달라서, 부모님이 또래집단에 개입하는 일은 말 그대로 '비겁한 마마보이' 의 길이었기에, 어머니는 때려죽이셔도 아무 말 안하겟다며, 늘 연초에는 어머니가 손수 한자를 필사한 한자에, 또 손수 다듬은 회초리를 싸셔서 선생님께 정중히 전하셨으며, 학기 말에는 반드시 찾아오셔서 내 아들이 한 학기 동안 태도가 어땠는지,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꼼꼼히 물어보시었다. 그러니 안 그래도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치맛바람 일으키는 어머니 밑의 공부벌레' 로 낙인찍혔고, 마치 쿠팡플레이 임시완 배우 주연의 '소년시대' 처럼 '이제 겨우 워떤 놈이 워치게 때리는지 파악했는디~' 하는 식의 소년으로 전락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래도 85년생, 6차 교육과정 마지막의 내가 겪은 학교 폭력은, 지금 뉴스에 나오듯이 그렇게 조직적이고, 야만적이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내가 훗날 강서구 S중학교의 논술 강사가 되어 1주일에 한번씩, 그 지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중학생들을 만나게 되었을때, 학생들은 같은 반 학생들끼리만 놀뿐, 자연스레 다른 반에는 넘어가지 않아 오해를 사지 않는 태도가 당연하다고 여겼고, CCTV로 모든 행동을 감시받으며,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으면, CCTV를 돌려보는 일 또한 어색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부모님이 개입하는 상황 또한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물론 매사를 모두 그렇게 처리할 순 없을테니, 외부 강사인 나에게 '선생님, 저 고민이 있는데요...' 하며 쭈뼛쭈뼛 다가와주어 참으로 고맙고 귀엽고 이뻤으나(이런 태도조차 성적으로 해석하는 인간들은 진짜 솔직히 갈아마셔도 시원치 않다. 뭔가 크게 잘못된 인간들이다.)  한편으로는 정말 격세지감을 느꼈다. 좌우간 적어도 내가 '당한' 학교폭력이란, 그들이 기분 나쁠때 좀 두들겨 맞고, 담배 필때 누가 오나 망봐주는 일 이외에(선생님들께 신뢰받는 학생이라는 점은 이때 중요하게 작용했다.) 어머니가 문제지 사라고 주신 돈 어느 정도 뺏기는 일(적어도 진짜 무슨 돈인지 물어보고, 또한 어디 사는지 물어보고 차비 포함 어느 정도는 남겨주는 미덕[?]이 존재했다!)이라든가, 자신의 숙제를 맡긴다든가(나보다 싸움 잘하는애들이 반 40명중에 20명은 넘었기 때문에, 나는 같은 영어단어를 스무 배 이상 쓰며 남들보다 빨리 영어에 익숙해졌다. 이 무슨..?!), 혹은 체육복이나 줄넘기를 빌려오라 하고, 또 돌려주라 한다든가, 정말 '고작 그 정도' 였다. 04학번인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이른바 '빵셔틀' '물셔틀' 등 본격적인 학교 폭력의 계급화, 조직화가 이루어졌으며, 또한 부모의 사회 계층hierarchy가 학교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물리적 폭력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학교 성적 또한 학교 폭력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적어도 '우등생=공부벌레' 의 도식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회의 변화였다.



윤종빈 감독의 출세작, 최민식/하정우 주연의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한국적인 폭력물이라 일컬어지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에서, 공무원 출신 반건달- '반달' 최익현은 자신이 부리는 집안 먼 동생이자 조직폭력배인 최형배가 주변 폭력 조직을 빨리 제압하길 바라는 욕심에 그를 충동질한다. '행배야, 니 갸 몬 이기나? 갸가 그리 쎄나?' '대부님, 세고 말고의 문제가 아입니다. 건달 세계도 룰이 있습니데이.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 명분이. 명분만 있으모 마, 그 새끼, 내가 마 제끼뿌지 뭐.' 그랬다. 나 때는 적어도 명분이 있었더랬다. 그래서 나는 체육복 심부름을 할때마다, 줄넘기 를 갖다줄떄마다, 혹은 영어나 한자를 제 시간 맞춰 다 써주고 돌려줄떄마다 선심쓰듯이 주는 만화책을 보곤 했다. 어머니는 당연히 등하굣길에 내 가방을 늘 검사하셨으므로, 내가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곳은, 유일하게 학교 쉬는 시간 때 뿐이었다.



그 유명한 군계, 를 그렇게 만났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 에도 예시로 나올 정도로, 군계는 사실 유명한 만화다. 동경대 수석 입학조차 어렵지 않았으리라 평가받는 부유층 고등학생 나루시마 료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부모를 잭 나이프로 난도질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아무리 김대중 대통령 정부로부터 일본문화 자유 수입이 결정되었다 한들, 너무 심한 설정이라 생각했는지, 개정판이 나오기 전까지 첫 수입판에서는 가정부와 가정교사를 죽인 설정으로 나왔다. 여하튼 중요한 사실은 그게 아니라, 한 명의 모범생이 어떻게든 가정의 속박을 벗어내고 가라테 훈련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찾은 뒤 자신이 결정한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한다는, 실로 니체의 전신 같은 서사다. 각본을 맡은 하시모토 이조는, 소년원 출신으로 실제 소년원에서 갱생 과정으로 배우게 된 극진 가라테가 몹시 와닿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썼으며, 주인공 나루시마 료 또한 실제 극진 경량급 챔피언으로 일세를 풍미한 나루시마 류 선수를 본보기로 하였다.



나는 훗날 알았을까? 그 때의 나는 체력장이라면 팔굽혀펴기 한 개도 못하고, 축구하라고 하면 억지로 공을 차려다 공을 밟고 오히려 뒤로 넘어져 꼬리뼈가 깨졌으며, 체육시간마다 도망다니고 책 읽고 시 쓰고 7,80년대 록 음악을 듣느라 도통 내가 운동은커녕, 심지어 무공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던, 통통하고 연약한 소년이었다. 주인공 나루시마 료가 어떻게든 거친 소년원에서 살아남고자, 밤마다 가라테 기술을 연습하듯이, 훗날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낮이고 밤이고 혼자 골방이고 옥상이고 태권도의 기술을 끊임없이 연습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나루시마 료가 세상에 나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규칙도, 도덕도 다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을 관철하듯, 현실 속에서 당연히 그 정도는 못했어도, 내 인생의 모든 욕망을 실천하고자 책을 읽고, 온갖 격투기술을 연마하던 때가 있었다. 동창회에 나가, 어렸을때의 나처럼 살이 찌고 배가 나와 제 처자식을 건사하느라 먼저 늙어버린, 철없는 옛 일진들을 만났을때, 단단하게 변한 내 팔다리를 만져보며 '와, 전병문, 많이 변했네.'하기에 '응, 많이 변혔지, 근디 너그들은 어찌 나를 그렇게 때리고 그랬냐?' 했을때 그들은 어색히 웃으며, 혹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응? 우리가 때렸나? 우리가 그랬나? 우리 친하지 않았나?' 라고 햇을때, 나는 더 캐묻기를 관두고 '그려, 기억 안 났다믄 되얏다, 술이나 한잔 사라이.' '오, 전병문, 술도 먹을 줄 아냐?' 해서 술 한잔 얻어마시고 치워버린 기억은 지금도 내 청춘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중 하나다. 상대는 기억도 못하고, (혹은 안하려고 하고) 친했다는데, 기어이 파서 뭐할 것인가. 그딴 기억 가지고 있어서 괜시리 아프고  힘든 사람은 나다. 막상 내가 도장에서 실제로 치고 받고 보니, 사실은 그렇게 겁날 일도 아니고, 별일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별 일도 아닌 것에 겁먹은 내 스스로를 지우는 일이기도 했기에 나는 그렇게 넘겨버렸다.



정보단 감독이 연출하고, 그나마 일본 킥복싱을 완성했다는 평을 듣는 K-1출신의 마사토가 주인공 나루시마 료의 맞수 스가와라 나오토 역을 맡아 화제가 된 2007년도 작 대만판 '군계' 는 정말 졸작이지만, 또한 원작 만화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극본가와 화가가 서로 다투어 서사가 엉망으로 가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도 가끔 이 만화를 본다. 저작권 분쟁이 나오기 전까지의 25권까지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남자에게는 가끔 말이 필요없는 세상으로 가야할 때가 있다. 나는 어렸을 때 그 세상에 갈 자신이 없어 오랫동안 비겁했고,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허락하는 한 무공을 연마한다. 내 딸이 벌써 다섯 살이 되었으니, 이제 도복을 입을 떄가 되었다. 물론 현실적인 벽이 있어 당장 도복을 입힐 순 없겠지만, 기본기만은 내가 꼭 가르친 뒤 도장에 입문시키려 한다. 도장에서는 늘 올바로 숨쉬는 법, 서는 법, 걷는 법, 뛰는 법부터 가르친다. 나는 절대로 '2주만에 플라잉 니킥을 할수 있다!' 라든가, '한달만에 30kg 감량 보장!' 따위의 문구를 앞세우는 도장, 체육관을 믿지 않는다. 플라잉 니 킥은 왕년의 K-1 최강의 은행원 레미 본야스키가 아니고서야 2주만에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며, 한 달만에 30kg를 뺐다가 32일째에 죽어버릴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곳에 배우러갈수 없다. 도장은, 사람이 사는 법을 정갈하게 다시 되짚어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내가 실패하고 포기한 곳에서부터 내 자녀는 아비의 별것없는 경험과 지혜를 받아 안전하게 시작할 것이다. 그 이후의 경험은 모두 온전히 자녀의 것이지만, 항상 부모가 그 곁에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군계 와 같은 삶은 정말 슬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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