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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Jan 27. 2024

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그냥 문득 든 생각.

계획된대로 일이 잘 풀렸다면, 사실 아내의 허락을 받아 이번 주말에 너를 만나서 모처럼 근사한 흑맥주에 피자라도 먹으며, 아니면 옛날 피차 서로 마음 매일 곳 없었던 그때의 북촌 골목 어드메에서처럼, 감자탕에 소주라도 곁들이며 밀어둔 이야기라도 하며 보냈을텐데, 그러지 못하여 나는 오늘 하루 열심히 아이를 보았다. 물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늘 충실하고 행복하다. 다만 나는 이제서야 아이를 재우고, 오늘치 훈련은 다 했으니, 더이상 책을 읽거나 천자문과 영어를 더 쓰기보다, 한동안 쓰다가 묵혀둔 습작을 다시 잇고 있는데, 이제서야 글을 쓰려고 억지로 노력하기보다 삶을 열심히 사는 그 순간에, 쓰고자 하는 욕망이 여전히 있다면 마치 꽃봉오리가 터지듯 밀려나와 이야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알겠다. 일부러 이야기를 쓰고자 억지로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겪고 생각한 매사의 맥락들이 다시 풀어지고 엮어져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내게 나를 이해시키고 설명하고 싶어서, 또 타인에게 그토록 나를 알려주고 싶어서 한없이 일기를 쓰고 쓰다가, 이제서야 겨우 여기까지 조금 닿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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