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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Feb 02. 2024

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2024년 1월 결산- 23년도의 본격부녀육아일지를 겸한.

작년 말에 꽤 여러 시청자들에게 회자가 되었던 추적 60분의 '노인빈곤보고서- 산타는 없다.' 에서 우리 동네 주변의 다양한 계층에 속한 어르신들이 노동을 해도 일당직에 머물거나, 혹은 아예 노동 자체에도 배제되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내 생활 속의 어르신들은 그래도 부유한 편에 속하는구나 하고 놀랐던 적이 있다. 평생 일만 하시며 악착같이 모아 종잣돈을 만드신, 정말로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룬 어머니 아버지의 근면함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또한 나이 마흔 먹고도 사실상 어머니 아버지 그늘에 기대어 결혼도 하고 애 키우는 부끄러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도장 오전반에서 즐겁게 태권도하시는 어르신들 역시 이제 보니 새삼 노후 준비를 잘 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장 우리 집 앞에서 소은이 볼때마다 귀여워하시며 주머니에서 요구르트 꺼내주시는 어머님도 항상 폐지 주우시느라 휴일은커녕 눈비 거친 날조차 낮밤이 없으신데, 우아하게 국내외 여행도 다니시고, 맛있는 음식도 잡수시며, 태권도 이외에도 그림, 외국어, 춤 등 다양한 취미를 즐기시는 칠순의 강 선생님도 그렇고, 세계 대회 떄마다 자주 보는 여러 선수들도 가만 보면 모두 부잣집 도령, 아씨, 혹은 귀부인이거나 고관대작인 경우가 많았다. 안 그래도 한우와(!) 육회와(!!) 과메기(!!!)에 더욱 사족을 못쓰는 다섯살배기 딸을 키우고 있으며, 어찌되엇건 둘쨰를 생각하고 있는 우리 부부 입장에서 과연 우리는 차마 칠순의 강 선생님만큼은 아니더라도, 남에게 손 벌릴 필요 없이 평온하게 삶을 마칠 수 있을까?



아내나 나나 특별히 사치하지 않고, 돈 드는 취미도 없으며, 둘 다 많은 비용은 아니더라도 게으름 한 번 없이 열심히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소시민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부턴가 결혼식 떄 조금 받아놓은 종잣돈은, 나 혼자 벌어 세 가족이 먹게 되니 스르르 사라져버렸고, 아내가 다시 복직하고 나서 잠시 여유가 생기는가 했지만, 아내가 복직한만큼 어머니 아버지가 소은이를 본격적으로 봐주시게 되니 그에 대한 비용 및 주말마다 아내가 오가는 비용등이 항상 고정적으로 지출되게 되어 사실 그렇게 여유가 크지도 않았다. 결국 아내의 말마따나 '아이들을 더이상 돌볼 필요가 없을때를 대비해서 지금을 고생하는' 형국이었는데, 내 급여일은 매달 10일, 아내의 급여일은 매달 25일, 항시 이 전으로는 언제부터인가 돈이 없어서 조금씩 허덕이곤 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진짜 큰 돈 나갈 일도 그렇게 없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나보다도 아내가 웬일로 장부도 써보고 확인해보자고 해서 날 잡고 하루 확인해보았다.



우리 부부는 사실 생각보다 고정 비용이 잦고, 금액도 컸다. 앞서 말했듯이 소은이 육아비용이 가장 컸고, 그 다음이 아내의 KTX 상하행 비용, 이어서 어머니가 절대 포기하시지 못하는 3가족의 보험 비용(어머니는 비행기와 자동차만큼은 좋은걸 타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또한 보험과 친구는 옛 것이 좋다고 철석같이 믿으신다.) . 소은이 어린이집 비용, 각종 세금 및 생활비용, 헌금 등을 제해야 비로소 아내와 내가 쓸 여윳돈이 나왔다. 안 그래도 십일조를 내지 못해서 늘 기도하면서, 막상 엄두는 안 났는데, 가만히 생각해뵌 이 여윳돈 중에서 우리 부부가 생각없이 쓰는 돈은 오직 하나, 평소에 별 생각없이 쓰는 가벼운 주전부리였다. 삶을 지탱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마시는 커피 한 잔, 아이스크림 하나, 혹은 무심코 사먹는 점심값이나 외식 등이 쌓이고 쌓여 결국 돈을 모으지 못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주말에만 겨우 보는 부부가 돈 아낀답시고 악착같이 주말에도 라면만 먹고 소은이 장난감도 하나 못 사주고 그렇게 살긴 어려울 터이다. 어찌 해야 할까 싶어 아내와 나는 오래 기도하고 생각했다. 기도는 단순히 해달라고 조르는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자 기회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의 재정을 좀 더 여유롭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기도받는 분께서는 무언가를 주시기보다 이미 받은 금액을 더 아끼고 현명하게 쓰도록 답을 주셨다. 최근에 받은 기도 응답 중 가장 짜릿하고 화끈한 답변이었다. 기도 후에 당첨된 로또를 주웠다고 해도 이렇게 확실한 응답이라고 실감나진 않았을 터였다. 아내 역시 평소 우리 부부가 별 생각 없이 새는 돈이 많았다며, 그 돈부터 줄여보자 약속하였다. 아내와 나는 일단 커피와 주전부리부터 딱 끊었다.  여윳돈을 기반으로 역산해보니 아무리 최대치로 써도 평일에는 하루 3만원 이상을 넘겨서는 안되었다. 안 그래도 나는 마흔이 되어 군살을 줄이고, 체급을 낮춰서 좀더 경쾌하고 빠른 태권도를 하기로 마음 먹은 후였다. 잘되었다 싶어 철저히 집에서만 밥을 먹고, 습관적으로 마시는 술조차도 더욱 줄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스트렛칭과 팔굽혀펴기 후 반드시 밥을 한 술이라도 뜨고, 커피는 대형 점빵에서 커다란 카누를 사다가 항상 진하게 타두거나 아니면 회사의 커피 기계를 애용했다. 아내는 오후 늦게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못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커피를 자주 마시진 않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커피를 마시게 된다면 꼭 회사의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또한 아내도 혼자 지낸다는 이유로 자주 하던 외식을 줄이고, 가능한 집밥을 해서 먹고 있는 중이다. 나는 점심을 간단히 고구마와 두유로 간식처럼 먹거나, 아니면 구내식당을 애용하고,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있는 상황이라면 편의점 도시락으로 5,000원 정도 내외로만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삶의 재미를 너무 떨어뜨리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이 정도만 해도 1주일에 훨씬 돈이 덜 줄어드는 모습이 보여서 즐거웠다. 반면에 그 동안 우리 부부가 6년을 살면서, 아주 소소한 지출들을 너무 쉽게 해서 정말 그동안 가랑비에 옷이 젖어왔다는 사실도 새삼 느꼈다. 물론 혼자서 열심히 벌어왔으니, 결코 그동안의 지출이 무조건 낭비였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요즘 나더러 다이어트 하냐고, 얼굴 살이 빠져 보이고, 이뻐보인다며 웃었다. 그냥 체급을 낮추려고 한다고 말하고 말았지만, 어쨌든 사소한 돈을 줄인 김에 나는 한 번이라도 더 걷고, 배고프면 더운 물과 차를 더 많이 마시고, 혹은 옛 제자들이 주는 간식거리를 으적거리고, 6층 사무실까지 오르내릴때는 반드시 계단을 이용한다. 십 년 동안 태권도를 하면서 내가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사실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당장 검은 띠를 맬 수는 없다는 점이다. 매일 아주 조금씩, 못했던 기술들을 하루에 고작 다섯번, 열번씩이라도 반복하면, 어차피 먹는 나이, 아무리 늦어도 3년이면, 5년이면 평균 이상의 성과를 분명히 보게 된다. 나는 십 년 동안 기초를 그렇게 다져왔다. 이 기초 위에 응용이 쌓이듯이, 우리 부부가 비록 조금 늦었지만,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에 삶의 기초를 다시 다지면, 그 위에 삶의 재미를 꽃피울 날도 분명 생길 터이다. 1월 한달 동안, 물론 또 금액 나갈 일들이 생기겠지만, 예상치 못한 액정 파손 비용과, 또 아내의 자동차세를 감안했어도 그래도 6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여윳돈으로 통장에 있다. 우리 부부가 이룬 작은 쾌거다. 그 전까지는 이보다 훨씬 금액으로, 아이고 월급날까지 버틸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던 날들이 꽤 많았다. 아주 작은 금액이라도 자꾸 모아서 불려지는 느낌이 있어야 우리 부부도 생각의 틀이  더 많이 바뀔 터이다.



아내가 연말로 접어들면서, 산을 직접 돌보는 일은 적어졌지만, 미뤄둔 행정 일을 많이 하느라 주말에 자주 오지 못했기 때문에, 평일 주말을 막론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실제적으로 '본격부녀육아일지' 를 자주 쓰진 못했다. 그러나 자주 쓰지 못하면 어떤가. 일기를 못 써도, 물론 부모님과 아내의 도움을 받고 있긴 하지만 나는 소은이를 열심히 잘 키우고 있다. 늘 소은이는 잘 크고 있지만, 이제 더욱 말이 많이 늘어서, 내가 묻지 않아도 '아빠,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누구랑 누구랑 간식을 먹었어요, 맛있었어요!' 라든가 '아빠, 친구랑은 사이좋게 놀아야 해요!' 라든가 제 스스로 하고 싶은 서사를 짧게나마 잘 전달하니 더할 나위없이 벅차다. 아이는 말이 트기 시작하면서, 세상을 더욱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파악하는 듯 해보였는데, 다만 감기가 잦아서 밖에 많이 나가질 못하고, 제 어미가 없으면 집에서 TV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게 대부분이라 그 일만이 좀 신경쓰였다. 워낙 외향적이고 활달한 아이라, 어서 날이 더 따뜻해져서 다시금 놀이터에서도 뻥뻥 놀고 키즈까페도 데려가고 공원에서도 뛰고 차고 해야 하는데, 집에서 TV보고 춤추고 아비 태권도 하면 따라다니면서 '태권! 찌르기! 발차기! 손칼!' 정도 하는게 전부다. 그러다가도 내가 씻고 나와 책을 펴면 '소은이도 책 봐야지~' 하면서 옛날 사진첩을 척 꺼내들고서는 지금보다 어렸던 제 사진을 보며 '소은이는 놀아요~' '소은이는 노래 해요~ ' '소은이는 요리해요~' 척척 설명을 하는 모습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다. 매일 원어민 발음으로 유튜브를 보니, 내 태권도 티셔츠에 새겨져 있는 ITF 라든가 Taekwon-do 등의 영어 철자를 하나하나 읽기도 하는데, 정말 해외 살다온 아이 같다.



얼마 전에는 장난감 하나 사주려고 손을 잡고 나란히 걷다가 차 3대가 연달아 몰려오기에 한쪽으로 피하면서 '소은아, 차가 오믄 어찌까, 피해야 혀? 아니면 버티고 서 있어야 혀?' (동생은 육아에 안 좋다고 사투리 쓰지 말라는데, 기분 좋으면 자꾸 나온다.) '피해야 해요! 손 들고 옆으로 가요!' 그러다 우리 집에 자주 택배를 배달해주시는 담당 기사님이 때마침 지나가시다가 '아이고, 진짜 교육 제대로 시키시네, 안그래도 트럭 몰다 안 비키고 있는 애들 보면 진짜 힘들다고, 부모도 본체만체하고, 아이고 고맙습니다!' 해서 민망하기도 하고, 감사했던 적도 있다. 어찌되었건 자식 잘못 가르친건 부모의 잘못이고 책임이라고 늘 생각하고 산다. 그때 소은이가 '아빠, 봐요! 차가 지이이이인짜 많이 와요, 하나, 둘, 셋!' 하더니 '아빠, 차가 진짜 화려하다!' 라고 해서 참말 뒤집어졌다. '소은아, 느가 화려허단 말을 어찌 아냐? 너 그 말이 뭔 뜻인지 알어?' 했는데 아는지 모르지 헤벌쭉 웃고는 장난감 집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아아, 소은아, 언제 커서 아버지랑 양꼬치집 한번 가서 알싸한 쯔란 콕 찍어 뱅글뱅글 돌다 구워진 양꼬치에 고량주 한 잔 할 테냐, 언제 커서 아버지랑 도복 나란히 입고 틀도 맞춰보고, 글러브 레거스 찬채 손발도 주고받아볼테냐, 언제 커서 아버지랑 책도 읽고 보드게임도 하면서 삶의 소소한 여유를 즐겨볼테냐, 아직 서툴고 미숙한 아비 어미가 뭐든지 해보려고 자꾸 시도하고 애쓰는 이유는, 결국 너를 잘 키우려고, 너를 사랑해서 가 아니겠니. 너를 낳고서야 어미도 아비도 좀 더 어른이 되는 기분이다. 늘상 사랑한다. 너를 낳기도 전, 너를 알지도, 만날지도 몰랐지만,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가슴 한 켠 오르르 흔들리는 것이 그게 바로 사랑이란 걸 알았단다. 아비가 네 어미 처녀 시절 만났을때, 그 맛있던 물회에 묘하게 술도 아니 마시고 싶고, 네 어미 얼굴 보며 이런 아가씨라면 아무리 몰라도 그냥 평생 같이 살아도 되겠구나 생각하던 그때 그 마음과도 같은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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