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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Feb 02. 2024

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남한산성 - 갇힐 수도, 나아갈수도 없는 자들의 이야기. 

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2007 초판, 2017 개정신판. (문봉선 화백 삽화 추가), 한국



주말간 아내없이 아이와 단 둘이 이틀간 나날들은 충실하고 사랑스러웠지만, 더할 나위 없이 피곤하기도 했다. 어쨌든 언제 어데로 빠져나갈지 모를 아이를 늘 쫓아다닌다는 건, 심기체 를 모두 한번에 소진하는 일이었다. 특별히 운동이나 노동 같지 않았는데도 기력이 쭉쭉 빠졌다.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아이를 보았다가 아내에게 괜시리 선인장마냥 불퉁거렸던 지난 주말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나는 아이를 혼자 봐야할 상황이라면 세상만사 젖혀두고 일단 잠이 안 오더라도 밤새 누워 있는다. 이제 나도, 뭘 하지 않아도 천천히 삭아드는 나이가 된 것이다. 하여 아이를 쫓아다니고 난 저녁이 되면, 천자문 몇 글자, 영어 몇 글자 쓰고 읽는 조차 피곤하고 귀찮아질 때가 있어서, 괜시리 압박되지 않도록 오랜만에 소설이나 좀 읽으며 쉴까 했다. 이럴때는 역시 김훈 선생이다. 나는 오랜만에 소설을 다시 읽을 때 가능한 김훈 선생을 다시 읽어서, 그 동안 필요한 내용만 건조하리만치 명료하게 전달하던 비문학적 문체에서 벗어나, 그래, 같은 내용이라도 이렇게 에둘러 전달하는 방식도 있었지 하며 김훈 선생의 너른 서사에 퐁당 빠지곤 했다. 



내가 만난 최초의 김훈 선생은 '남한산성' 이었다. 아내는 늘상 나더러 '마이너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고 놀렸다. 읽는 책도 어째 그래 옛날 책만 읽고, 취미도 보이소, 누가 사람 차고 패고 던지는 거 하능교, 게다가 거기서 하필이면 또 ITF라니, 내는 진짜 여보야랑 결혼하기 전에는 ITF라는게 있는 줄도 몰랐니더. 학교 시절, 방학만 했다 하면 휴대전화 딱 꺼놓고 오로지 집에서 만화책 보다 수영장 가고 교회에서만 놀았다는 아내의 이야기였다. 아내의 취미도 만만치 않게 '마이너' 한거 같긴 한데, 하긴 부부가 그러니 부부지. 아닌게 아니라 서른 살의 내가, 한때 배웠던 중국 전통권보다 ITF를 선택한 이유는, 가깝다는 장점도 있었고, 한번도 태권도를 배워보지 않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으나, 무엇보다 '희소성' 이었다. 북한 태권도라는 오해 때문에 국내에도 몇 없다는 전설의(?) 실전 무공! 남들이 쉽게 배울 수 없다는 그 특별함! 어렸을때는 그 욕심이 더 심해서, 괜시리 유명하다는 책이나 영화는 일부러 남들 따라서 안 보다가, 나중에 한참 열기가 식은 다음에 뒤늦게 보곤 했는데, 김훈 선생도 그렇게 읽게 된 소설가 중 한분이었다. 유하 시인과 더불어 한국 남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라는 명성답게 나 역시도 결국 홀랑 빠지고 말았다.



당시 나는 병원에 오래 있었다. 군대 있을때 다쳤던 발목은 지금도 그렇거니와, 앞으로도 그럴 터이고, 지금부터 십몇년 전 젊었을때에도 여전히 속을 썩였다. 다만 명확히 잘 몰랐을 따름이다. 군대에서 전투화를 잘못 신어 크게 덧났었던 발목으로 주짓수니 종합격투니 계속 하다가, 대회에서 당한 힐 훅이 내 발목의 운명을 결정지었고, 나아가 훗날 몰래 야반도주를 해버린 동네 정형외과에서의 약 1년간의 오진이 병을 더 키웠다. 때 늦은 대학졸업과 함께 나는 바로 발목을 수술했고, 원인 모를 통증이 오래 지속되어 나는 6개월 간을 병원에 있었다. 



나는 그떄 휴대전화도 없었고, 바깥과의 창구라면 아주 낡은 넷북 하나가 전부였다. 넷북에 와이파이를 연결해두고, 벗들이 보내준 영화와 미국 드라마를 실컷 보았고, 집에서 가져온 책들 이외에도 저작권 없는 고전들을 다운로드받아다가 맘껏 읽다 약 먹고 자고, 그 당시 고맙게도 너가 이틀 걸러 한번씩 와줬는데, 서른이 넘어서야, 나보다 훨씬 어렸던 너가 보통 열성과 마음씀으로 와준게 아니었구나 싶어 새삼 그 우정의 관대함에 오로지 기대어 청춘의 외로운 고개를 넘어야 했던 나의 무례함에 부끄럽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가게도, 꿈도, 염치도, 돈도 모두 잃고, 그저 병원에 갇혀서 밥 주면 밥 먹고, 약 주면 약 먹고, 누가 찾아오면 만나고, 보고 싶으면 부르고, 그렇게 지냈었다. 물론 몸이 아프긴 했지만, 그야말로 목줄 찬 개와도 다르지 않은 꼴인지라, 결국 내가 내 스스로를 구별하고 결정지을 수 있는 행동은 오로지 책을 읽는 일 뿐이었다.



남한산성, 은 우리가 잘 아는 병자호란의 이야기이며, 알다시피 명의 말기 때 융성하여 대륙을 제패하던 청이 소중화를 자처하던 조선을 압박하며 새로운 국제 정세를 강요하는 배경의 서사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하지 못하고 급한대로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고, 죽어도 싸워서 깨끗한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김상헌과 현실을 받아들여 일단 항복해야 한다는 최명길 두 중신이 서사의 갈등을 더한다. 실제로 역사는 인조가 세 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삼배구고두와 삼전도의 굴욕을 전하고 있으며, 최명길이 항복 문서를 전하려 갈때 김상헌이 달려들어 옥새가 찍힌 그 국서를 갈기갈기 찢었고, 최명길은 울며 또 그 문서를 도로 붙였는데, 후세 사람들은 종이를 찢는 마음과 도로 붙이는 마음 모두 나라를 위한 굳센 충절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훈 선생은 여기에 밖으로 나아가지도, 영영 갇혀있을수도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더해 갈등을 깊이 삭힌다. 김훈 선생의 필력은,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전하기보다, 이미 아는 서사를 더욱 윤색하여 매력적으로 부풀리는데 뛰어나다고 본다. 문봉선 화백의 그림이 김훈 선생의 글을 그대로 전하듯이, 김훈 선생의 글은 이미 못박혀 정해진 과거를, 때로는 낭만적으로, 때로는 더욱 참혹하게 전하는데 능하다. 내가 읽은 최초의 김훈 선생. 남한산성은, 내 환경에 꼭 맞았고, 나는 그 후부터 한동안 김훈 선생의 모든 글들을 찾아 반복하여 읽었다. 모든 문장들이 늘상 읽을때마다 메말라가는 마음 한 켠을 다시 열어주듯이 장엄하고 웅장하지만, 그 분의 현대소설보다 나는 역사소설이나 혹은 직접 다녀온 기행문이 훨씬 좋다.  그는 이미 겪은 일들을 다시 전하는데 참말 능한 선수다. 



김훈 선생을 처음 읽었을 때의 나는, 남한산성의 인물들처럼 진퇴양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영영 병원에 갇혀 있을 순 없었지만, 몸이 낫고 밖으로 나가면, 늦은 나이에 졸업하여, 남들처럼 훌륭한 자격증도 없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 생각을 하니 걱정부터 늘 앞서던 때였다. 어찌 되었건 모두가 돌아가고, 환자들도 , 선생님들도 잠든 병실에서, 나는 잠 못 이루고 혼자 넷북을 켜서 무언가를 읽거나 보다가 밤도 새벽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 차가운 창문에 이마를 대고서는 희미하게 빛나는 등불들을 바라보곤 했다. 나도 저 등불처럼 아직 살아 있음은 분명한데, 그 때의 나는, 세상에 나가 뭘해야 될지도 몰랐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몰랐다. 그 때 병원은, 내게 분명 남한산성이었다. 만약 내가 읽었던 김훈 선생이 다른 작품이었다면, 어쩌면 지금도 나는 전혀 다른 김훈 선생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처음이란 그렇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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