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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Apr 28. 2024

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다시 한번 가화만사성,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아무리 되뇌어도 부족하다.

아버지의 이명증이 갈수록 심해지심에 따라, 어머니는 걱정이 많으셨지만, 늘 하시던 한 달 제주살이를 결국 결정하셨다. 어차피 아버지의 병원 진료가 의료 대란 때문에 하염없이 늦어지기도 했고, 예상치 못하게 장모께서 빨리 돌아가시며, 어머니가 소은이 육아를 맡게 되셨을때, 한 달의 제주 살이만큼은 꼭 보장해달라셨다. 주말부부가 돌볼 수 없어 고령의 부모님께 애 맡기는 주제에, 당연히 들어드려야할 일이다. 여동생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집으로 넘어왔고,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러나 감기는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3주 전 수요일에 떠나셨고, 그 주는 그럭저럭 재미나게 잘 지나갔다. 문제는 안산대회를 마치고 온 주말이 지난 월요일이었다. 피멍은 시커멓게 옆구리와 허벅지를 물들였지만, 갈빗대는 뜨끈뜨끈 갈수록 쑤시고 아프고 돌아눕지도 못하는게 금간 게 분명하지, 어서 가서 집에서 쉬어야겠다, 하는데 동생이 난리였다. 어린이집에서 소은이가 아프다며 드러누웠다 했다. 평소에 아파도 펄쩍펄쩍 뛰어노는 체력을 아는데, 제 입으로 아프다며 드러누울 정도니, 말 다했다. 그 날따라 비도 많이 왔는데, 서둘러 어린이집 근처로 가보니 소은이는 제 발로 걷지도 못하고 축 처져서 힘없는 목소리로 '아빠아, 나 못 걷겠어요.. 안아주세요오..' 했다. 갈비고 뭐고 번쩍 안아서 집에 데려온 다음, 옷을 홀랑 벗기고 겨드랑이와 이마에 차가운 패드를 붙이고, 약을 먹이고 눕혔다. 아직은 서먹한 팀장님께 장문의 카톡을 보내어 하루 연차를 허락받은 다음, 소은이가 서서히 잠들려 하기에 이제야 겨우 한숨 돌린다며, 진라면 순한 맛 네개 끓여 동생과 내가 후루룩 나눠먹자마자

[



소은이가 누운 자리에서 분수쇼하듯 먹은걸 다 토했다....(.....)




소은이의 누운 자리에 분수쇼는 당분간 잊지 못하게 될 듯하다. 아이들은 기침할때 온 몸을 떨었고, 횡격막에 압력을 주기 때문에 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가래가 기관지에 심하게 엉긴 소은이는 무엇만 먹으면 기침하면서 바로 토했고, 그래서 좀처럼 뭘 먹이기가 무서웠다. 일주일 내내 밥 먹이고, 약 먹이고, 토하면, 한숨 쉬며, 옷 벗기고, 씻기질 못하니 따뜻한 물수건으로 후다닥 몸을 닦이고, 또 옷 입히고, 약 먹이고, 빨래하고 의 반복이었다. 낮밤을 계속 그렇게 했고, 동생도 하루 연차를 썼다. 주말 부부이므로 금세로 올라오지 못하는 아내의 민망함과 미안함이야 말할 수 없을 터이다. 동생과 나는 불침번 하듯 번갈아 자면서 아이의 곁을 지켰고, 39도까지 올라가는 아이의 열을 식히려고, 해열제를 먹이고, 찬 수건을 갈아주고, 옷을 벗기고, 별 짓을 다했다. 아내처럼 의료 경험은 없었지만, 육아 현장에서 십년을 넘게 보낸 여동생의 지식 또한 대단해서 여동생은 새벽마다 '열을 잡아야 혀, 열 못 잡으면 소은이 헬렌켈러 되는거여, 나는 그 꼴 못 봐' 하면서 어떻게든 소은이 열을 떨어뜨리려고 애를 썼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산대회를 가지 말았어야 되나 할정도로 나는 몸의 회복이 느렸는데, 낮에는 낮대로 회사에서 치였고, 저녁과 밤에는 애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이 돌 정도였다.



다행히도 아내가 올라온 주말에, 소은이는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렸고, 엄마다, 엄마야! 하면서 소파에서 펄쩍펄쩍 뛸 정도로 좋아했다. 몸이 아파 그런지 소은이는 정말이지 웬일로 식욕이 없어 2kg나 빠졌고, 어린이집에서도 그 좋아하던 밥도 마다하고, 다만 처연하게 앉아서 '선생님, 엄마가 보고 싶어요..'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했다. 안그래도 금요일 밤이면 아내가 올라오는 줄 저도 알텐데, 소은이가 심하게 아프던 주에, 아내는 어쩔 수 없이 토요일 당직으로, 토요일 저녁에 급하게 올라와야 했다. 소은이를 전적으로 돌보던 여동생- 고모도 감기가 옮고, 체력이 다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 혼자 아이를 보는 동안 소은이가 안쓰러워 빵도 사주고, 좋아하는 냉면도 직접 만들어주고, 장난감도 사주고 했는데, 아이는 좋아하는 듯 하다가 제 애비를 물끄러미 보며 '아빠, 근데 엄마는 왜 안 올까요...? 소은이느으은, 엄마가 보고 싶어요...' 했을때 지금 이 문장을 쓰는 내 눈이 또 시큰거릴 정도로, 소은이는 정말로 처연하게 제 어미를 찾았다. 제아무리 아비, 고모, 서울 할아버지 할머니가 애를 써줘도, 열 달 동안 품으며 제 피와 살로 빚어주고 만들어준 제 어미는 당해낼 수 없는가 보다 했다. 아앗따, 소은이가 아픙게 제주도고 뭐고 재미가 암시랑도 없다, 그냥 올라가야될라는가벼, 하면서 어머니는 2주만에 소은이가 눈에 밟힌다며 올라오기로 하셨다기에 어머니에게 제 어미를 못 이긴다 몇 마디 말햇더니, 어머니는 전화기 건너에서 피식 웃으시면서  '너가 이제야 에미 맘을 좀 알것냐? 에미 맘이란 그런거이고, 자식 맘이란 그런거이다, 에미는 못 이긴다잉, 할아버지 할머니 한 트럭을 갖다줘도 제 어미가 최곤거여, 산해진미 쇠용없고(소용없고) 즈 어미 품에서 꽁보리밥에 물만 먹어도 살로 가는게, 그게 세상 이치다잉.' ...아, 그거 듣는 애비 서럽네.



소은이는 딱 일주일을 앓고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았는데, 아내는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했다. 아직 가래 낀 기침이 좀 남았지만, 더이상 열도 안 오르고, 재채기도 안하고, 무엇보다 구토를 안해서 좋았다. 소은이니까네, 건강하이까, 이매(이만큼) 한기라, 다른 애였으모 벌써 폐렴으로 입원했으요, 소은이니까 기본 체력으로 버틴거라. 아내는 소은이가 대견한듯, 얼굴을 쓸어주었고, 소은이는 제 애비 어미 마음이나 아는지 엣헴 하듯 고개를 들었다. 소은이는 아닌게 아니라 이번에 되게 아프고 나서 2kg 정도 빠졌는데, 아프면 큰다더니 누가봐도 키가 더 컸고, 게다가 이목구비가 여물고 말이 좋아져서, 제가 스스로 빨래를 돕기도 하고, 원래도 그렇지만 밥도 스스로 척척 잘 먹었다. 어머니는 며느리 불편하다며 일찍 여주와 문경을 다녀오시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워주셨는데, 그때 며느리와 손녀 먹으라고 갈치를 조려주시고, 쭈꾸미를 쪄주시고, 들꺠를 갈아 육회를 비벼놓고 가셨던 때가 불과 3일 전 지난 금요일이었다. 소은이는 물로 씻어난 갈치 속살과, 밥알 가득한 쭈꾸미 토막을 잘도 받아먹었고, 아빠아, 빨간 고기 주세요오, 하며 육회도 꿀꺽꿀꺽 씹어삼켰다. 모처럼 식욕이 살아난 소은이를 보느라,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피곤한 몸에 기어이 고량주 한 병을 다 마셨더니, 이제 나도 못 이기는 지 다음날 드물게 숙취가 가서 점심까지 누워 있었다. 아내는 으이그, 거 한숨만 자고 마시지, 뭐 술에 원수 짓따고 그리 퍼마시드만은, 대회 나가서 갈빗대는 다 나가서 안 오나, 소은이아빠 사랑해도 미워죽겠는데 우짜지? 하며 눈을 흘기면서도 꿀물을 타주고 오전 동안 쉬게 해주었다. 나는 모처럼 고량주 한 병에 다 죽어가면서도, 아니여..소은이 엄마... 나는 그 육회에 고량주는 마셔야만 혔어.. 나는 내 술에 후회하지 않네잉.. 해서 아내는 아이고, 이 화상아! 하며 손칼등내려때리기를 내 정수리에 내려꽂았다. 소은이는 우하하하 하고 웃었는데, 그 웃음소리는 내가 소은이 때문에 밤새 뜬 잠을 잘 때, 꿈에서라도 듣고 싶던 시원스런 아내의 웃음소리기도 했다. 아내는 어쨌든 더 마시려고 가져왔던, 정 선생님의 발렌타인 피네스트를 압수했고...(...) 나도 술을 더 마시지 못했지만, 처자식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하다.



그러므로 나는 늘 가정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여유가 있을때마다 훈련도 더 하고, 책도 더 읽고, 공부도 더 하겠다 늘 다짐하지만, 가정이 평안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잔 스튜어트 밀이 결혼했더라면 자유론을 쓰지 못했으리라 말하고, 라이프니츠가 결혼하지 않았기에 위대한 학문의 정수를 남겼으리라 이야기 한다. 그러나 퇴계께서는 세 명의 아내에게 모두 의리와 애정을 지키셨고,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사별한 며느리를 개가시켜 훗날까지 칭송을 들으신다. 즉 유학의 학자들은 사회의 근간이 가정임을 알고 있었고, 가정을 안정시키는 논리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다. 나는 감히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마땅히 가정을 올바로 안정시키고자 한다. 남편이자 아비의 의무와 덕목을 다하면 마땅히 가정은 평화롭다. 가정이 평화로워야 나는 비로소 내 공부와 태권도를 할 수 있고, 술도 달콤하게 마실 수 있다. 대저 처자식을 가슴 아프게 하면서 마셔야할 술이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고, 처자식을 무시하고 내팽개치며 쌓아야할 학식과 무공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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