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적 뿌리를 제공한다는 것 - 천자문과 태권도, 그리고 가정을 중심으로
김경학(2017)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거주 고려인들의 생활 문화를 분석하는 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고려인들은 부모와의 합의 없이, 즉, 부모의 일방적 결정으로 한국으로의 이주를 결정해야 했으며,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해도 서툴거나, 혹은 정서적 이해없이 한국 사회에 '던져졌기에' 그들은 마찬가지로 한국에 깊은 유대감이 없는 부모보다도 더욱 한국 사회의 이방인으로써 이해없이 이른바 '초국적 이주자' 로서의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 내가 겪기에도 가까이 안산에서의 젊은 고려인들은 태권도의 기술들 이외에는 한국어에 매우 서툴었고, 그 곳은 마치 작은 러시아 같았다. 하지만 그 유명한 팜 퀸 얀의 hello, Vietnam 같은 노래, 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같은 시도 그렇듯이 설사 해외 생활을 오래 한다해도, 그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도외시한채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요즘은 내가 사는 안양도 그렇지만, 주말부부로서 아내의 직장 근처 동네에 가면 거의 대부분이 외국인 며느리 혹은 외국인 총각, 노동자들이었다. 아내는 어두운 밤에는 나더러 술 취한 채 혼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햇는데, 오늘 아침 역시 술도 깰 겸 가볍게 주변 천변을 뛰다보니, 온통 커다란 짐을 지고 다니는 외국인 며느리 아니면 일하러 나가는 외국인 인부들뿐이었다. 특히 그 옛날 전성기 때의 뾰도르와 똑같이 생긴, 덩치 큰 사내가 온 몸에 문신을 하고 커다란 가방을 질질 끈 채 나서고 있었는데, 아래는 도복 바지에 위에는 분홍색 'happy family' 라고 적히 부부사랑캠프에서 받은 셔츠를 입은 나와 마주쳐 서로 놀랐다. 나는 나대로 '이 인간 가방 속에 든 게 사람 아니야?' 싶을 정도로 그는 험상궂었고, 그는 그대로 '이 한국놈은 뭔데 신새벽에 아랫도리는 태권도복 바지에 윗도리는 분홍색 셔츠 입고 땀에 쩔어서 나를 보고 있나, 나한테 반했나?' 했을 성 싶다. 내가 먼저 'Good morning' 하자 그 역시 씩 웃으며 'Good morning' 받아주었고, 마땅히 할 말이 없어서 'Nice tattoo.' 하자 그는 'Oh, yeah, Thank you, bye bye' 하고 사라졌다. 그가 나온 골목에는 몇 명의 외국인들이 취했는지 얻어맞았는지 하여간 헤롱대며 쓰러져 있었다. 음, 야밤에는 저런 인간들이 우글댄단 말이지. 여기가 뭔 할렘가 뒷골목이냐…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나는 어떻게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어지러운 세상에서 단순히 몸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잘 단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천자문과 영어를 반복해서 쓰면서 늘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다른 곳에 신경쓰게 하려고 애썼고, 태권도로 몸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했다. 나의 몸과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아 나는 올바른 남편과 아비로서 처신할 수 있을 듯이 보였다. 나는 늘 젊은 시절이 부끄러웠고,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소은이는 어린이집에서 가끔 혼나면, 입을 삐쭉거리면서 제 어미가 보고 싶다고 목놓아 운다고 했다. 기분이 좋을때도, 할아버지 할머니, 제 아비, 고모가 아무리 잘해주어도 제 어미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현재 아이의 뿌리는 부모일 터이다.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제 삶을 제가 결정하게 되어 이 나라를 벗어나고 다른 문화권에 몸담게 되더라도 부모가 제 살과 피와 뼈와 넋을 지어주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설사 부정한다 해도 그렇다. 아비어미로서 우리가 해줄수 있는 일은 잘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