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홍명보 감독님도 아니고 홍금보 명배우도 아닌
홍성보(2017) 선생에 따르면, 북한은 2010년 이후로 체육강국을 위해 력기(역기), 레스링(레슬링), 마라손(마라톤), 유술(유도) 이외에도 태권도를 국방 체육, 민족 체육 등의 명목으로 다양하게 활성화하고 강조코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의 논문은 ITF를 별다른 구분없이 제목에서부터 '북한태권도' 로 호칭하여 국기원 태권도와 어찌 다른지, 또한 ITF가 북한태권도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없기는 하나, 적어도 일반 대중들이 좀처럼 명확한 정보를 얻기 힘든 북한 사회에서 현재 ITF가 얼마만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창시자님께서 젊어 분단선을 넘으시어 태권도를 전파하겠다는 마음을 가지셨을때, 북한에서는 군대와 학교, 도장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기관뿐 아니라 TV 강습까지 동원하여 전 국민을 4단 이상의 강자들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 중국 공산전부의 간화태극권 을 비롯한 스포츠 우슈가 남녀노소에게 퍼지듯이, 지금까지 전해져내려오는 북한의 태권도 보급은 과연 국가 정책으로써 올바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남북의 창에 따르면 한때 김일성이 직접 창시하고 보급했다는 신화 같은 왜곡을 지나, 평안도의 쟌 다르크라고 할만한 설죽화 이야기를 차용하여 거란족 장수 놈의(...젊은 조선중앙TV 아나운서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 남북의 창 통해서 본거니까 국보법 위반은 아닙니다..ㅋㅋ) 가슴팍을 내지른 뛰어 옆차찌르기가 태권도의 전신이기도 하다고 공영방송에서 선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로 볼 때 북한의 태권도 보급이 결코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선군정치를 위한, 국민들의 건강과 국방력 향상을 위해 기능하다고 보긴 어렵다. 겉보기에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해도 막상 정책의 방향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 근원을 다시 생각해보기 마련이다.
얼마전 의대생이 이별코자 했던 여친을 불러내 죽이고, 수많은 의사들이 명분 약한 집단파업을 하며, 판검사 변호사들이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고, 고관대작 중 뒷주머니 없는 이가 참말 드물다. 학력이 인성을 증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혹은 나만?) 배울만큼 배운 사람이, 알만한 사람이, 공부 좀 했다는 사람이, 라는 기대치를 가진다. 주자는 먼저 알아야 행할수 있다 했고, 양명 수인은 앎과 실천이 하나라 했는데, 예로부터 유학이 윤리를 실천하는 학문이자 정치술이었기 때문이다. 즉, 고대로부터 많이 배운 엘리뜨, 인텔리겐차에게 올바른 윤리를 기대하는 태도는 오랫동안 당연한 전통이었으며, 서양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플라톤은 앎이 곧 덕이라 했고, 벤담은 공리를 말하여 공동체의 행복을 꿈꾸었다. 결국 공동체의 구성원은 개인이고, 인간은 혼자 살수 없기에, 많은 개인의 조화로운 행복이 곧 선이라고 믿었던건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한때 청운의 꿈을 품었던 헬턴트 가의 사생아 카알이 지형을 읽는데 능통한 마법사 펠레일의 조언에 따라 자이펀의 해운사업을 후방으로부터 압박할 해류인 걸프스트림의 정보를 가지고 입궁할때, 영웅 길시언이 폐태자되는 바람에 왕위를 양도받은 바이서스의 젊은 왕 닐시언은 헬턴트 영지의 촌관리들을 무시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석양의 감시자 라는 별명의 용.아무르타트와 투쟁하며 혹독하게 자라난 헬턴트의 사나이들은 분노하고, 책 읽으며 활쏘는 문무겸비의 카알은, 촌의 고양이가 시골 아낙네의 물고기를 물어가도 책임지는 자가 왕이라며 질책한다. 일찍이 성종대왕께서 계셨을때 이름모를 어부가 왕께 진상하고 싶다며 멍게와 해삼을 말려 가져오니, 왕께서는 그를 친히 하루 재우고 잘 먹겠다며 수라에 올려 잡수셨다고 했다. 이상적인 성군 聖君의 모습을 찾으려는게 아니라 나라는 원래 공공서비스다. 국민이 낸 세금과 사회로부터 지식을 투자받은 엘리뜨들이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삶을 고민하며 나아가야 한단 뜻이다.
근 한 달만에 마루야마 마사오를 폈다. 거의 다 이전 내용을 잊어 여백 곳곳에 적어둔 큰 내용만.보고, 이어 읽었다. 일본은 영국 같은 섬나라기에, 두 나라는 바다 건너 도망치거나 피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천황과 여왕을 모시고, 사무라이와 기사가 강력히 통치하고, 와 和 와 코스모스 Cosmos 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자 했다. 나 혼자 싫어! 하며 뻗대봐야 갈 곳도 없었기에 고대 일본의 유학은 가장 강력하면서도 조화를 추구하는 양면의 형태가 되었다. 이별하자고 해도 죽여, 돈 없어도 죽여, 욕해서 죽여, 기분나빠서 죽여, 수틀리면 칼 꺼내 찌르는 지금의 한국은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 영국과 무엇이 다른가? 나라도 돌보지 않고, 개인도 서로 헤아려줄 마음이 없다. 그래서 무심 無心 은 잔인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