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775일차 ㅡ 태권도를 하는 자의 자세.
뉴스를 보고 걱정이 되어 아내의 허락을 받아 도장으로 가니 늘 그렇듯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어도 어수선하였다. 30일 자정부터 9월 6일 자정까지 급작스럽게 발효된 외식업체 및 실내체육시설 등에 대한 새로운 지침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늘 2호선 지하철에서 웬 오십대 아저씨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며 행패 부리다 끝내 구속되고 만 동영상 때문이기도 했다. 아저씨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었을지 몰라도 저렇게 공공장소에서 대거리하는 아저씨는 제아무리 사납고 시끄러워도 무섭지 않다. 나는 더이상 매점 심부름해주고 영어 한자 숙제 대신해주던 그 때의 어린 꼬마가 아니다. 나는 WT에서는 흔히 솟음주먹, 가라테에서는 용두권이라고 말하는 중지주먹으로 가슴, 팔뚝 안쪽 살, 겨드랑이 아래, 관자놀이를 쑤시듯이 치는 방법을 다 알고 있지만, 단순히 그런 물리적인 기술로 사람을 제압하는 방법이나 주워섬기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언젠가 말했듯, 무공이란 평생을 두고 배워 평생 쓰지 않을 결심을 굳히는 과정이다. 태권도의 기술은 내 마음 또한 정련해야하며 그러므로 내가 다스려야할 큰 적은 다름아닌 나다. 이십대 시절의 나는 태권도를 만나기 전 미처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여러 고수들께 주워배운 다양한 기술의 파편으로 싸움박질이나 하며 돌아다녔다.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애 아비로서의 심정은, 그저 제 스스로를 대변할 말조차 갖지 못한 저 애잔한 아저씨를 성심성의껏 말리고 끼어들어 오지랖을 부렸을 터이다. 하여간 나는 차라리 자리를 피해주지도 아니하면서 멀거니 보고만 섰는 주변 이들이 가끔 안타깝고 속상하다.
도장의 매주 금요일은 맞서기를 연마하는 날이다. 살도 쪘거니와 몸도 뻣뻣해지고 박자감각도 잃어버려서 정말이지 모든 기술이 형편없어졌다. 그동안 아령으로 기본기 수행을 한 탓에 무리하게 힘을 주느라 주먹을 칠때마다 겨드랑이가 벌어지고 발차기를 빠르게 차고 접지 못했으며 연타가 잘 되지 않았다. 첫 시간은 남자들만 있었으므로 모든 주먹 기술을 써서 돌아가며 권투식 맞서기를 했다. 두번째 시간에는 나 혼자 그동안 녹슬어버린 원투며 발차기를 되짚어가는 연습을 했다, 당대를 호령했던 고수들은 종목을 불문하고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며 기본기를 몇만번씩 반복하고 고쳐나가는 아득한 고행 같은 고련을 계속했다 들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마리아가 되기는커녕 내 목구멍에 술이나 부어넣고 음풍농월 흉내나 내는 빈약한 서생이지만, 그래도 도복을 입고 띠를 매고 있을 때는 뭐라도 달라야지 않겠나, 늘 생각만 하고 산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