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본격부녀육아일지 ㅡ 소은별곡塐恩別曲
- 갈수록 커가며 말이 늘어가는 소은이를 키우며 기억나는 일화 몇 가지 ㅎㅎ
0. 소은이가 늘상 어딜 다닐때마다 자꾸 길가에 세워진 차만 보면 뛰어가서 번호판에 쓰여진 글씨며 숫자를 읽어대느라, 행여나 비싸고 귀한 누군가의 자동차 긁을까 걱정이었는데, 알고보니 나 일찍 출근하고 나면 어머니가 소은이 어린이집 데려다주시면서, 자동차 번호판 가지고 글씨 알려주셔서 생긴 버릇이었다. 그런데 '지' 를 알려주자 갑자기 소은이 왈, '목사님이 교회에서 아버지이이이이이이이 할때 지, 예요!' 요즘 우리 소은이, 나이 5세에 벌써 교회 예배 시간에 맨 앞줄에 앉아 찬송도 흉내내고, 기도도 따라하고 하더니 그런걸 기억하고 있었구낰ㅋㅋㅋㅋㅋ
1. 산 돌보는 일을 하느라 꽃박사 나무박사 곤충 동물 전문가인 아내와 함께 모처럼 주말에 가족끼리 함께 다니다보면, 아내는 꽃이며 열매를 아이에게 알려주느라 바쁘다. (참 신기하다. 나는 봐도 모르겠던데, 어떻게 그 비슷해뵈는 꽃이랑 나무를 다 알지^^;;;) 아내보다도 훨씬 큰 해바라기를 보며 제 어미가 '소은아, 니 이게 뭔지 아나?' 하자 딸내미 왈, 당당하게 '네, 계란 후라이 꽃이에요!' ^^;;;; 그래, 달걀이나 부쳐먹자...고흐께서도 아마 하늘에서 덕분에 웃으셨을것 같다;;;
2. 아이 정서에 좋으라고, 어머니가 함께 어린이집 다녀오실때마다 집 앞 손수 꾸미신 텃밭을 보여주시는 모양인데, 최근에는 애호박을 좀 심으셨더랬다. '소은아, 봐봐잉? 여 호박이 소은이 좋아하는 호박전 부치먹을때 먹는 애기 호박이여. 이거는 초록색이쟈? 인자 다 늙으먼 호박이 엄채(엄청) 커져서 노란색 돼야.' 그 말을 듣는 손녀 왈, 제 할머니를 똑바로 쳐다보면 '음...그러면 할머니도 나중에 노란색 되는거야???' 야 임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머니가 괘씸하다며 오랜만에 웃다 웃다 울면서 올라오셔서 나한테 딸 잘못 키운 탓이라며 벌금 받아가심 ㅋㅋㅋ(그리고 그 벌금은 소은이 등갈비 값으로 다시 나갔다 ㅋㅋㅋㅋ)
3. 옥상도장에서 훈련하거나, 퇴근 후 도장 다녀오면 소은이는 이제 눈치가 빨라져서 번개같이 안다. 예전처럼 희미한 발음으로 '아빠, 태꼰도?' 하지 않고, 제법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아빠, 태권도 하고 왔어요?' 라고 명확히 물어볼줄 알게 되어 감개무량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빠, 태권도는 친구랑은 하면 안되지요? 아빠랑만 해야 되지요?' '그려그려, 우리 소은이 책 읽고 태권도할 자격 있는 것이여, 태권도는 함부로 쓰면 안돼야.' 요즘 그 말은 잘 알아듣는지, 어린이집에서도 의젓하게 항상 양보하고, 나눠먹고 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4. 다만 소은이도 몇 가지 양보 안하는 먹거리가 있는데, 요즘처럼 더운 날, 시원하게 얼린 블루베리와 동네 빵집에서 조금씩 담아주는 달콤한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소은이 최대 간식. 이것만큼은 어른도 없이, 제 입에 먼저 좀 퍼넣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아까워 하는 얼굴로, '자, 아빠도 먹어봐!' 하며 아주 조금 덜어준다^^;; 지난주 소은이가 하도 자면서 땀을 흘리기에 선풍기 좀 틀어줬더니, 그예 또 가래낀 기침이 심해져서(아니, 감기 걸린것도 아니고, 어머니, 이 삼복더위에 어떻게 애 잘 때 선풍기를 안 틀어줘요ㅋㅋ 하여간 어른들은 무조건 싸고 키우는 걸 너무 좋아하셔서^^;;) 다소 걱정이었더랬다. 다행히도 열도 없고, 기운 빠지는 일도 없이 가래낀 기침만 자주 할뿐, 언제 어디서든 잘 뛰어놀아 그저 다행이었는데, 늘 기운이 넘치니 참새 방앗간 못 지나가듯 동네 빵집 앞만 지나가면, 아빠아~ 아이스크림~ 하면서 손을 잡아끈다. 나는 사실 이럴때마다 어렸을때 항상 성적이 좋아야만 밥을 잘 주셨던 어머니(농담이 아니라는게 슬프다 ㅋㅋ)가 생각나서, 아이가 뭐 먹고 싶다고 하면 배탈 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뭐든 솔직히 주고 싶다. 맛있는게 있으면 먹고 싶은게 아이지, 달리 아이겠는가. 그래도 기침을 콜록콜록 해대는데 아이스크림 먹여도 되나 싶어서 때마침 쉬는 날이라 아침 병원 갔다가 한 바퀴 산책 도는 길이기도 해서 '아빠 돈 없시야, 아빠가 돈이 워딨는가?' 했더니 아이스크림에 이미 넋이 나간 딸내미 왈, 아비 엉덩이 쪽 뒷주머니를 마구 뒤지면서 '아빠, 여기 카드 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집 사장님 및 주변 어르신들이 와그르르 웃으며 넘어지셨다. 그래서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아이는 조그마한 그릇에 늘 그렇듯 아이스크림 2천원어치 받고, 나는 팥빙수 작은 거 하나 받아서 더운 날에 부녀지간에 신나게 잘 먹었겠다. 그런데 하필 외출하다 돌아오신 어머니가 빵집에 들어오셔서, 안 그래도 남들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와 할머니로서의 품격을 다 하시기 위해 내 등을 마구 떄리면서 '야, 너는 애 애비라는 것이 애 기침을 저렇게 콜록콜록 허는디 아이스크림을 퍼멕이냐? 정신이 있어, 웂어?' '하며 매우 혼내셨다. 나도 이제 이 나이쯤 되면, 어머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아니, 그럼 어쩌요? 저것이 아빠 카드 있잖아? 험서 주머니를 뒤지디끼 우리집 대장이 소은이지 어머니여?' 하자 어머니도 '하기사 그 말도 맞다.' 하면서 징계를 멈추시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는지 그날 저녁 나란히 또 잔다고 부녀지간에 누웠을때 소은이가 느닷없이 '아빠, 오늘 빵집에서 할머니한테 혼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이 다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소은아, 기억나는가? 아빠가 왜 할머니헌티 혼났디야?' '소은이가 아쓰크림 먹어서. 그래서 할머니가 아빠 등 일케일케(등 떄리는 시늉을 함) 했지?' 그러고보니 어느틈에 이제 함무이 라고도 안하고, 할머니라고 똑바로 발음도 하고, 할머니한테 혼난 아비를 안쓰럽게 볼줄도 알게 되었다. 내 딸 많이 컸네..ㅋㅋㅋㅋ
5. 그런가 하면 할머니가 또 어디서 사오신 복국을 아침부터 수저로 퍼드시더니 '크어~ 시원~ 하다~' 해서 아침부터 배꼽잡게 만들고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38선 이남에서 흑염소 전골, 복국, 과메기, 생고기 맛 알고 찾는 애는 너밖에 없을거다, 전소은 ㅋㅋㅋ 오죽하면 동네 가게에서도 소은이 기운 좋은건 할머니가 하도 좋은것만 먹여서라고ㅋㅋㅋㅋㅋㅋ
6. 그래도 자기 먹을 건 자기가 다 벌어온다. 제 어미 출장와서 일하는 부스에서, 하여간 어딜 가나 제 애비와 함께 껌뻑껌뻑 인사하면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하니 가던 아이조차 불러서 돌려세워서 '아가, 이거 하나 가져가거라~' 하면서 어르신들뿐 아니라 농촌 처녀총각들이 별것별것 다 주었다. 소은이가 그 날 얻어온 것, 금산 인삼 한뿌리, 구기자 젤리 한 봉지, 말린 시래기 한 봉지, 임실치즈 만들기 체험(원래 유룐데 끝물이라고 무료로 한번 하게 해주셨다.), 말린 표고버섯 한 봉지, 매실청 한 개, 인삼청 2개, 순창고추장 작은 병 하나, 칫솔 하나, 텀블러 하나, USB로 충전하는 휴대용 선풍기 하나, 그 외에도 바람개비 두 개, 풍선 하나, 하여간 많이도 얻어왔다. 받을때마다 허리를 꺾으며, 고맙습니다~ 인사도 잘하고, 또 받았다고 나도 입 닦을 수 없어서 또 웬만한 건 사기도 했으나, 하여간 전소은.. 넌 어디 가서 굶지는 않을 것이야...